일명 우리말의 ‘노래’는 시에 곡을 붙인 것이라 알고 있고, 또한 이것이 널리 알려진 속설이기도 하다. 중세의 음유시인들은 즉석에서 시를 짓고 거기에 곡을 붙여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은 노발리스의 <푸른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작금의 노래 가사들(lyrics)은 격조 높은 시와는 엄격히 분리되어 노래를 위한 단순한 수단에 그치고 있다.

한국 가요를 신해철의 2집이후 거의 듣질 않는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신해철의 2집을 아우르는 가사 때문이다. 속칭 가사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심호한 내용을 담고 있어 지금 읊조려 보아도 가슴을 후려치는 뭔가가 느껴진다. 참으로 사색적이고 철학적 성찰이 담겨 있는 곡들이다. 이건 노래말이 아닌 시였다.

나에게 있어 신해철의 2집 앨범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이 앨범의 곡을 뛰어넘는 한국의 음반을 들어보질 못했다. 뭐, 참으로 대단한 가수들이 많고, 한국 100대 명반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많은 앨범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다. 한국음악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수많은 앨범들의 가사는 대부분 그렇고 그런 내용들이다. 개인적으로 결코 높게 쳐줄수가 없다.

물론 음반을 평가하는 기준에 가사가 모든 것을 대변할 수는 없다. 음색(사운드)이라든가 곡의 구성 그리고 보컬의 음악적 자질이 모두 녹아 있기에 음반을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을 지언정 전부는 아닐 것이다.

허나 개인적으로 좋은 음반은 사운드와 곡의 구성 수준이 어느 정도 된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음반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가사를 들먹일 수밖에 없다.

가수가 가사를 정확히 노래로 표현할 수 있어야 좋은 가수이고 좋은 노래라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신해철의 2집은 가사의 아우라가 음색과 보컬을 모두 미미하게 만든 단 하나의 앨범인 듯싶다. 더 이상 이 앨범을 뛰어넘는 한국 뮤지션을 만날 수 없기에 해외로 눈을 돌려 락 음악에 심취했는지도 모르겠다.

아, 서설이 너무 길었다. 왜 신해철의 2집 얘기를 꺼넸냐 하면, 바로 지금 열성적으로 듣고 있는 고딕메탈 밴드들의 가사와 사운드가 너무도 빼어나기에 그걸 좀 얘기해 보고 싶어서다.

솔직히 듣고 있는 고딕메탈의 가사들은 흡사 신해철의 2집 앨범을 들으면서 느꼈던 충격 그 이상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사에 넋을 잃고 듣는 곡이 수도 없이 많지만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두 밴드의 3곡만 살펴보고자 한다. 이들 가사들은 노래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벽한 소넷이라 할 수 있다.

하나는 독일의 고딕-프로그레시브 밴드인 L'Ame Immortelle이고, 다른 하나는 단 두 개의 앨범만 내고 해체한 그리스의 고딕메탈 밴드인 Odes of Ecstasy이다.

밴드 소개는 생략하겠다. 궁금하신 분들은 검색을 하면 쉽게 밴드의 이력과 앨범 정보를 알 수 있기에.

이 두 밴드의 가사를 쓴 사람은 정말 재능이 출중한 시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사가 얼마나 빼어난지 음미하지 않고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밴드의 보컬이 감정을 실어 노래를 부를 때면 거의 혼절할 지경이 된다.

가사를 음미해 보자. 먼저 람므 이모탈의 두 곡이다. <10 jahre>(2006)에 수록된 곡들이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반드시 찾아서 들어보길 권한다.



FIGURE IN THE MIRROR


Every time you put this mask on your face

A little piece of your soul dies away


The figure in the mirror's not me

A different reality

It's just a picture that you see

From my true self, I do flee


What I feel and what I see

I do through eyes of an enemy

Forced by powers pushing me

Resulting in fear and misery


I change myself to fit the needs....

During this Mutation my heart bleeds

Trying to adjust to Society

Not anymore I want to be free


The figure in the mirror's not me

A different reality

It's just a picture that you see

From my true self, I do flee


Only a few could break the shell

Surrounding my soul's polluted well

Drink from it and you will see

All the pain that rests in me


It's like Pandora's box

With a number of haunted locks

The one who sees deep inside

knows all the feelings I do hide


The figure in the mirror's not me

A different reality

It's just a picture that you see

From my true self, I do flee


Once you took a look inside of me

You decide between joy and misery

If you abuse the things you know


The figure in the mirror's not me

A different reality

It's just a picture that you see

From my true self, I do flee


LIFE WILL NEVER BE THE SAME AGAIN


On snow covered mountains

My soul lies to sleep

Silent crying inside

My pain is so deep


Counting the days

As time passes by

Thinking of past times

I break down and cry


Life will never be the same again


Counting timeless tears

Which I spillt for you

You are my obsession

I don't know where you're gone to

I dream a dream of Hope

Under Moonlight stars

Tortured by reality

Which has left it's scars


Life will never be the same again


In a World without feelings

My dreams are all dead

No one beside me

I know where I am at


Embracing the Silence

In my loneliness

Trying not to fear

All the things I posses


Life will never be the same again




두 곡 모두 실연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그저 그렇고 그런 실연의 아픔을 노골적으로 들이대지 않는다. 대부분의 노래들은 네가 떠나서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느니, 네가 없는 세상은 회색빛이라는 등 뻔한 내용을 듣기 좋은 멜로디로 포장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특히 한국의 가요가 그렇다~)

마이클 런투 런의 발라드나 리쳐드 막스의 발라드 곡들 대부분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람므 이모탈의 가사는 전혀 딴판이다. 외편의 FIGURE IN THE MIRROR의 경우는 들으면서 라캉의 거울 이론이 생각나기도 했다. 거울의 이미지로 이렇게도 실연을 표현해 내다니~ 정말 대단하다.

전체적으로 바이올린 음이 몽환적으로 지배하는 가운데, 남성 그로울링과 여성보컬의 주고 받는 대구가 내면의 아픔을 극적으로 갈무리하고 있다. 사랑했던 내 존재의 정체성을 문제시하는 가사가 그대로 마음에 꽂힌다.

두 번째 곡인 LIFE WILL NEVER BE THE SAME AGAIN은 전자보다 좀 더 실연의 아픔을 들이대고 있다. 하지만 내면의 아픔에 대한 외부 사물의 비유가 이 단점을 커버하고도 남는다. 진짜 절묘하다. 과거를 추억하며 흘러가버린 시간들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세어본다거나 널 위해 흘렸던 무한히 많은 눈물방울을 세어본다는 표현이 그렇다. 너무도 멋지고 참신하다.

피아노 선율이 지배하는 이 발라드 곡은 보컬의 절제미가 돋보이다. 실연의 아픔을 전달하기 위해 시작되는 여성보컬은 애수에 차 있지만 후렴구에 보이는 남성 그로울링과 여성 보컬의 대비는 마지막의 단호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외로움 속에서 침묵을 감싸 안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노력할 거야’라는.

정말 시에다가 곡을 붙인 노래라 아니할 수 없다~

람므 이모탈의 실연과는 달리 오즈 오브 엑스터시는 색다르게 절망을 노래하고 있다. 지금까지 봐온 그 어느 곡보다도 절망의 극단을 노래하고 있다. ‘빛의 완전한 소멸’속에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퇴폐미의 극치를 표현하고 있다. 두운과 각운의 호응은 미학적 완성도를 극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곡은 98년 1집인 Embossed Dream In Four Acts에 수록된 2번째 곡으로서 컨셉앨범의 1악장에 해당하는 싱글이다.




The total absence of light


I'm the cries

The cries of all the weak

I'm the lies

The lies that feed you (for) years

I'm the dreams

The dreams that fade as time pass


I'm the drug

The drug that fondles your grief

I'm the hope

The hope that never lived

I'm the storm

The storm you fear to deal with


In your minds

The death of sanity

In your lifes

The misery always reigns

In your eyes

The total absence of light


Death is my

My reason to exist

Time is my

My worst of (all) enemies

Life is my

My doom for (the) years to come


The cries of all the weak

The lies that feed you (for) years

The dreams that fade as time pass

The drug that fondles your grief

The hope that never lived

The storm you fear to deal with

The death of sanity

The misery which reigns

The total absence of light


"We are like certain senses scattered wide

That have no hope of ever reuniting

All nature in our nerves falls in confusion


We ache in both our body and recollection

All things reject us, and all poetry

Fills us with envy as our last asylum"


<국역> 빛의 완전한 소멸


나는 모든 나약한 이들로부터 터져나오는 절규.

나는 지난 몇년동안 그대를 먹여 살린 거짓.

나는 시간이 니자면서 점점 희미해져가는 꿈.


나는 그대의 슬픔을 어루만져주는 마약.

나는 한번도 살아 숨쉰적 없는 희망.

나는 그대가 처리하길 두려워하는 폭풍우


그대의 마음 속에서 광기는 사드러들었고

그대의 삶은 언제나 고통에 지배받고 있네.

그대의 눈동자 속에서 모든 밝은 빛은 사라져버렸네.


죽음은 나의 존재의 이유.

시간은 내 적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존재.

생명은 세월이 흘러간 후 내게 찾아올 파멸


모든 나약한 자들의 절규

몇 년간 그대를 먹여살린 거짓

시간이 지나갈수록 희미해져가는 꿈

그대의 슬픔을 어루만져주는 마약

한번도 살아숨쉰적 없는 희망

사그라든 광기

지배하는 고통

모든 밝은 빛은 사라졌네.


우리의 육신과 추억 모두가 아파오네

모든 것이 우릴 거부하고

모든 시의 운율은

마치 우리게게 남겨진 마지막 수용소와도 같이 질투를 채워넣네.




지금까지 들어온 앨범 곡 중에서 가장 절망의 미학에 근접한 멋진 가사다. 하나의 완벽한 시로도 손색이 없는 이 곡은 귀로 들으면 환상 그 자체다. 남성 그로울링과 여성 소프라노의 극적 대비는 절규, 거짓, 마약, 고통, 파멸이라는 절망의 키워드를 몽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삶 속에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죽는 바로 그 순간이라고 한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대로 절망은 그 죽음의 순간이 영원토록 계속되는 시간이다. 이 곡은 절망이라는 것을 음악적으로 가장 완성도 있게 표현한 불후의 명곡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사를 보고 들으면 혀을 내 두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곡들을 익스트림 메탈을 듣는 사람이 아니면 접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 통탄스러울 뿐이다~

세곡 모두 격조높은 시라고해도 손색이 없는 미학적 완성도를 갖고 있다. 이런 시에 걸맞는 음악을 듣을 수 있다는 자체가 하나의 행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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