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읽었다. 한마디로 대실망이었다. 근데, 이게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가 되어가고 있어 심히 의아스럽다. 

욕심많은 칸과 등신같은 인조가 답답한 전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냥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는....그냥 무참하게 읽은 작품이다. 역사소설이라는 탈을 쓰고 있지만 결코 역사소설일수 없고, 그렇다고 역사에세이도 아닌, 한마디로 이도저도 아닌 글이 되버렸다는.. 

아름다운 문체로 살아 생동해야할 캐리터를 죽여버렸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다. 역사교과서에 길어야 한 페이지 분량 정도 인것을 한 권으로 보여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서날쇠로 대변되는 민중의식의 싹을 보여주기에는 너무 약했다.  

한국 문학계에서 문체하면 떠오르는 작가 중 한사람이 김훈이다. 김훈이라는 브랜드는 언제나 간결한 문체의 미학과 함께 간다. 그런데, 이 소설은 김훈 브랜드가 맞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물론 읽어보면 김훈 브랜드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가 지향하는 스타카토식 글쓰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이게 과연 김훈식 글쓰기인지 의아스러웠다.

문장으로 발신한 대신들의 말은 기름진 뱀과 같았고, 흐린 날의 산맥과 같았다. 말로서 말을 건드리면 말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빠르게 꿈틀거리며 새로운 대열을 갖추었고, 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켜들어 혀를 내밀었다. 혀들은 맹렬한 불꽃으로 편전의 밤을 밝혔다. 묘당에 쌓인 말들은 대가리와 꼬리를 서로 엇물면서 떼뱀으로 뒤엉켰고, 보이지 않는산맥으로치솟아 시야를 가로막고 출렁거렷다. 말들의 산맥 너머는 겨울이었는데, 임금의 시야는 그 겨울 들판에 닿을 수 없었다. (9페이지) 

책의 처음 시작하는 부분에 나온 이 묘사가 이 책 전체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보여지는 이 아름다운 문장들...무생물을 생물에 비유하는 이러한 비유는 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짜증을 유발한다. 급기야 중간을 넘어서도 계속되는 이런 문체가 살아 움직여야할 캐릭터의 역동성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두는 구실을 하게 되었다. 김훈의 문체에 갇힌 캐리터들은 한 없이 평면적이었고 답답했다.

파주를 막아낼 수 있다면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서울을 버려야 할 일이 없을 터이지만, 그 말이 옳은지 아닌지를 물을 수 없는 까닭은 적들이 이미 임진강을 건넜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죽을 무기를 쥔 군사들은 반드시 죽을 싸움에 나아가 적의 말발굽 아래서 죽고, 신하는 임금의 몸을 막아서서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 살아남은 백성들이 농장기를 들고 일어서서 아비는 아들을 죽인 적을 베고, 아들은 누이를 간음한 적을 찢어서 마침내 사직을 회복하리라는 말은 크고 낲았다. 하지만 적들은 아미 임진강을 건넜으므로 그 말의 크기와 높이는 보이지 않았다. (18-19페이지)

보기 드물게 긴 문장이다. 스타카토식으로 짧은 문체를 구사하는 김훈의 문체와는 좀 멀어 보인다. 내용은 마지막 문장인 적들이 이미 임진강을 건넜으므로 급박하다는 거. 그 상황을 이렇게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김훈의 장황한 문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고의 압권은 35-36페이지에 나열되어 있다. "성의 지세가 물을 두르고 산에 기댄 장풍국이라고하나~시간과 더불어 말라가니 버틸수록 약해져서 우밎ㄱ이지 않아도 해롭고, 버티고 견디려면 트인 곳을 막아야 하는데 트인 곳을 막으면 안이 또 막혀서, 적을 막으면 내가 나에게 막히게 되니 막으면 갇히고, 갇혀서 마르며, 말라서 시들고, 적이 강을 차지하니 물이 적의 쪽으로 흐르고, 안이 먼저 마르니 시간이 적의 편으로 흐르는 땅이 바로 여기라고 말하는..(중간생략)..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려 한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한 문장으로 내리 썼다. 이런 만연체의 문장은 한 문장을 길게 써야 미덕이라는 판사들의 글쓰기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바로 김훈의 소설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것두 스타카토식의 문장을 구사하는 대명사로 이름을 날리는 작가에게서 볼 수 있다는 거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런 만연체 문장은 소설 곳곳에 넘쳐난다. 캐릭터가 문체에 갇힌 소설은 무참하게 읽을 수밖에 없다.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실망을 달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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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0-04-1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을 참 편협하게 읽으시네요 무조건 짧고 간결해야 미학이라는 개... 평생 독서하실일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