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여, 나뉘어라 - 2006년 제30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정미경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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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연휴가 시작되던 날 반디문고에 가서 책구경을 하다가 이상문학상수상집 코너가  있길래 그자리에 주저 앉아 읽었던게 이 2006년 이상문학상 소설집이었습니다. 수상작들은 구광본의 <긴하루>, 함정임의 <자두>,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 김영하의 <아이스크림>, 전경린의 <야상록>, 윤성희의 <무릎>이었습니다.  

시간상 최종 대상후보에 올랐던 3작품 전경린과 정미경 김경욱의 작품만 읽었습니다. 그리고 정미경의 이 작품과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전경린의 작품은 솔직히 이 전작인 <환과 멸>과 별반 차이가 없어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게 최종까지 심사위원들에게 고심하게 만들었다는데 의아했습니다.  

하여간 전경린의 모든 작품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실망스러웠는데 말입니다. 평론가들의 취향이 수상작을 결정하는데 한몫한다는 걸 알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 대상수상작에 내 나름의 시선이 삐딱해집니다.  

이 글은 서점에서 읽은 즉시 떠오른 생각들을 매모해두었다가 다시 정리한 글입니다. 좀 삐딱하게 읽는거.. 이런 수상작들을 보는 즐거움중 하나입니다. 나는 평론가들과는 생각이 다르다..라는...나만의 읽기...하여간 관심있는 분들도 읽어보시고 나름의 평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2등은 없다는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난 2등이 좋은데...세상은 1등만을 기억한다는 그 카피는 지금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언명이다. 2등의 위치. 2등의 가치를 모르는 거 같다. 우리선수가 은메달을 따면 실망하면서도 수영에서 2등인 은메달을 따면 난리다. 경중의 차이인가..세상은 1등만을 기억하는 건 아니다. 그러면서도 대학순위나 기업순위는 뻔질나게 매긴다. 학생 석차매기듯이.. 국가순위도! 우리나라 서울대 세계대학 순위는 63위. 글로벌기업에 삼성은 10위에 들지 못한다.  우리가 그렇게도 호들갑떨었던 세계축구 4위. 2등은 저~ 위에 있는 도달할 수 없는 가치일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구나 학창시절 성적표를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그 석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노력하면 내가 어느 등수에 들어 장학금을 탈수 있을지에서부터 저녀석한테만은 뒤질수  없다는 치기어린 결심에 이르기까지..

  정미경의 <밤이여 나뉘어라>는 바로 학창시절 치기어린 경쟁심과 열등의식이 우리사회의 엘리트들의  의식속에 어떻게 각인되는지 형상화한 소설이다.(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보였다!)학창시절의 그 의식이 계속 사회속에서 성공의 단계라는 변화하는 옷을 입고 어떻게 진화하고 파멸하는지 이 소설은 보여준다. 우리사회의 엘리트라는 평론가들로부터 "주제의 진정성"이라는 찬사를 받은 이 작품은(대상 수상작으로선정된 이유가 주제의 진정성이었다) 오로지 그런 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아니 적어도 한번 쯤은 경험한 엘리트들의 열등의식의 심연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인 나는 함부르크에서 자신의 영화시사회가 열리는 것을 맞아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친구이자 평생의 우상이던 P를 만나기로 한다. P는 학창시절부터 1등만을 해온 독선적이고 천재성이 번뜩이는 그런 친구다. 뷰티풀마인드의 주인공 존 네쉬처럼 인격에 장애가 있는. 나와 P는 의대에 진학하지만 천재성에 도취된 P의 독선적인 태도로 P는 졸업과 동시에 미국행길에 오른다. 미국 유명병원에서도 그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P는 돌연 노르웨이로 거쳐를 옮겨 신약개발에 참여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집에서 머무르는 단 3일동안 P의 아내이자 한때 내가 사랑했던 M으로 부터 P가 알콜중독자가 됐다는 절규어린 소리를 듣게 된다.
 


  <밤이여 나뉘어라>는 바로 학창시절부터 계속된 치기어린 경쟁심과 열등의식이 이후의 생활에도 나와 P의 관계에 끊임없이 계속되는 그 관계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천재성을 가진 P를 노력파인 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내면의 열등의식을 표출시키면서 한 천재의 인간적 파멸을 그리고 있다. 천재이고 모든것을 갖춘 P가 알콜중독자로 밝혀지는 과정을 통해 내가 나의 생을 살지 못하고 타인을 의식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소설은 얘기해 주고 있었다.
 
  주인공 나는 2등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P로 인해 열등감에 사로잡힌 삶을 살고있다. (그가 유명 영화감독이 된 지금도!) 2등은 1등 뒤로 숨을 수도 있고 따라가야 할 분명한 목표 1등이 있기에 공허하지 않다. 계속 앞에 있는 목표가 있으니 그 목표가 도달할 수 없을 만큼의 천재라면 2등의 성장은 웬만한 1등 부럽지 않게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는 주인공처럼 좌절하는 엘리트들이 훨씬 더 많은 거 같다. 그래서 평론가 이어령은 "이루지 못할 꿈을 쫓는 인간 존재의 허무" "인간의식의 파멸과정"이라 평한지도 모르겠다. 이런 문제의식은 엘리트일수록 더 깊게 느끼고 그것이 이 작품을 대상수상작으로 선정한 이유일 듯 하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평범한 주제인데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이 뜻을 공유했다라는 건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내면적으론 비록 엘리트는 아니라하더라도 자기나름의 그런 열등의식을 갖고 있다는 의식의 보편화를 염두해 두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이 작품을 삐딱하게 읽는 나로서는 왜 이작품이 이상문학상 대상에 선정되었는지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이 작품이 그토록 높게 평가받으려면 다음과 같은 보편적인 전제가 뒷받침되야 한다.

 "우리는 모두 우리를 뛰어넘을 수 없는 어떤것에 우리의 생을 투사하며 그것으로부터 끊임없이 인정받으려하고 그것으로인해 끊임없이 열등한 실체임을 자각해야하는 비극을 지닌 존재라고"

  2등에 아파하는 자 이 소설의 대상 이유인 주제의 진정성에 동의할 것이다. 2등에 만족하고 자기 앞의 생에 만족하는 사람에게 이 소설은 그리 큰 무거움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서의 성적과 사회의 성공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어찌 이런 것에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겠는가?

 
 나와 P의 관계에서 만족과 행복은 없다. 오직 보여주기와 인정받기 위한 애씀만 있다. 다름 사람의 평가는 다 무시하고(이 작품의 주인공은 영화감독이다. 대중의 평가와 지지가 가치있을!) 오로지 내 우상의 평가만을 맹목적으로 갈구하는 "나"에게 자유와 행복이 어찌 공존할 수 있을까. 성공한 영화감독인 나를 있게한 것도 P에 대한 열등감이며 P를 만나러 오슬로에 가는 것도 결국은 P에 대한 열등감의 발로다.

  M의 절규와 P의 파멸과정으로 인해 나를 괴롭히던(적어도 지금의 "나"를 있게한) 그 열등감은 어떻게 되었는가? 없어졌는가? 상대에 대한 열등감은 없어지지 않는다. 2등으로 괴로워한자 1등이 없어졌다고 1등이 돼지 않는다. 적어도 그 자신의 자아는 안다. 그는 1등이 아니라고. 1등이 없어져버리길 간절히 소망하지만 1등이 없어져도 쾌재를 부르지도 않는다. 

 그래서 소설가 서영은은 대상수상작 평에서 이 사실을 "내가 P에게 씌운 자기욕망의 신기루가 걷힌 뒤에도 깨달음으로 바뀌지 않는다. 존재의 자기증명이 가장 극명해지는 것은 무엇을 이루었느냐하는 결과로서보다 긴장감을 사는 바로 그때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비범함은 이 메시지에 있다"라고 썼다.

 
 나도 평론가들이 흔히 평하는 걸 흉내내서 이 소설을 평해 보겠다. 이 소설은 엘리트만이 느낄 수 있는  치기어린 열등감이 인간의식의 파멸과정에서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 평론가인 엘리트의식속에 성공적으로 각인시켜 주제의 진정성을 획득한 작가의 비범한 선취의식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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