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의 에스카플로네 TV보급판 박스 세트 - 아웃박스 없음
조이온엔터테인먼트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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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로스>의 가와모리 쇼지, <마신영웅전>의 와타루 감독, 야다테 하지메가 원안을 내고 <마크로스플러스>와 <카우보이비밥>의 칸노 요코가 음악을 맡는 등 화려한 스탭들로 구성된 선라이즈의 야심작. SBS가 98년 선보인바 있다.


 호화 스탭 탓인지 화려한 영상과 탄탄한 시나리오가 압권이다. 이 작품의 독창성은 가이아라는 공간 설정과 가이메레프라는 메카라 할 수 있다. 로봇도 아니고 생체병기도 아닌 일종의 수동식 갑옷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상당히 독특한 디자인 이었다. 

 


 

 전편에 흐르는 그로테스크한 음악과 함께 이야기를 끌어가는 핵심은 마리(히토미)의 점괘와 드룬커크의 운명개변장치와의 대결구도이다.


마리의 점괘는 마리 자신의 억제된 무의식속의 바람을 대변해 주는 것으로서, 마리가 바라는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드룬커크의 운명개변장치 또한 ‘미래는 필연적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라는 전제아래, 그 운명을 통해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마리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드룬커크는 신적인 결정론적 세계관을 대변한다는 사실이다. 마리의 점괘는 마리의 바람이며 그것은 마리의 자유의지이다. 반면 드룬커크의 운명개변장치는 이러한 마리의 자유의지조차 운명개변장치 속에서 움직인다고 본다.


 결국 마리의 자유의지는 드룬커크의 운명개변장치를 돌리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운명개변장치 속에서 마리의 자유의지는 부인될 수밖에 없다.


 사실 개연성의 문제와 함께 마리가 바라는 바와 드룬커크가 바라는 바는 동전의 양면처럼 운명개변장치 속에서 동일하게 움직인다. 따라서 마리가 아무리 우연적 상황을 상정하더라도 운명개변장치 속에서는 필연이 될 수밖에 없다.


 절대행운권속에서 사람들의 우연적 상황과 사건들은 점차 필연적이 되어간다. 이것은 우연과 필연의 문제,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문제로 귀결된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신봉하면 결정론적 세계관은 무의미해지며, 결정론을 지지하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결정론자인 드룬커크는 절대행운권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폴켄에게 죽을 운명인 것도 알고 있었고, 모든 ‘사람이 바라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도래하리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변수가 있었지만, 드룬커크는 그 변수를 간과하는 실수를 했다. 마리의 반에 대한 사랑과 반의 마리에 대한 사랑이었다. 비록 유한한 인간의 순간적 사랑이지만, 그 순간만큼의 진실한 힘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는지 드룬커크는 전혀 알지 못했다. 단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도래한다’는 결과만을 볼 뿐이었다.

 

 


 인간의 고귀한 사랑은 운명의 결정론적 세계관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더 이상 가아아에는 역사의 필연적 미래란 없어진다. 오직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현재적 삶’만이 중요하게 될 뿐이다. 이것이 드룬커크가 본 미래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도래’이다.


 <에스카플로네>는 마크로스의 새로운 변주곡이라 일컬어진다. 그것은 다름 아닌 초월적인 힘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정해져있다 하더라도 인간은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역사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짧지만) 진정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요컨대 <에스카플로네>는 자유의지와 결정론, 우연과 필연이라는 딜레마를 사랑의 방정식으로 절묘하게 풀어낸 수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에스카에서 최고로 멋졌다고 생각한 폴켄.

한국 성우 분, 완전 쩔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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