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세르크 (고급 검정벨벳 케이스) + 엽서세트 + 화보집 - 초회 특별판 (Berserk Box Set / 劍風傳奇)
매니아 엔터테인먼트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만화로도 봤어던 건데..어제 베르세르크라는 애니메이션의 완결을 보았습니다. 하루에 한편씩 조금씩 봤는데...아~ 정말 감동적이더군요. 뭐, 잔인하다란 평이 지배적인 작품이었습니다만...무엇보다  예전에 읽었던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를 계속들춰보게 만들었다는 겁니다...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거기에 맞는 느낌의 책을 읽고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는거...정말 가슴뛰는 일인거 같습니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어떤 사람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겠죠. 베르세르크에 관한 여러 평론을 읽었습니다만...역시 그런것과는 영~ 멀군요..

 

 

이 세계에는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무언가의 초월적인 [율]
신의 손이 존재하는 것인가?
적어도 인간은.. 자신의 의지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다

 

 비운의 시지프를 아십니까가? 적어도 그리스 신화를 한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시지프의 신화를 알고 있을 겁이다. 그리고 부조리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산문집 <신지프의 신화>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시지프의 비애를 더욱 더 잘 이해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신들의 비밀을 누설했다는 죄로 시지프는 신들로부터 끊임없이 바위를 굴려 어떤 산의 정상에까지 밀어올리는 형벌을 받았는데, 일단 산 정상까지 도달한 바위는 그 자체의 무게로 인해 언제나 땅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시지프는 다시 똑 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무수히 바위를 굴려 산 정상에 올려놓는 일을 반복 또 반복 해야 하는 시지프의 형벌이었기에. 

 갑자기 왜 카뮈를 들먹거리며 시지프의 신화를 찾느냐고요? <베르세르크>가 바로 카뮈가 그린 시지프스적 고뇌를 간직한 채 살아가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베르세르크>를 보면서 시지프의 운명을 답습하고 있는 가츠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가츠는 시지프의 새로운 변형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카뮈가 시지프를 부조리한 영웅으로 그렸다면, 나는 가츠를 부조리한 것에 맞서는 검풍 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다.

"부조리한 영웅이라는 그 정렬에 의해 또한 마찬가지로 그 괴로움에 의해 그는 부조리한 영웅인 것이다. "신들에 대한 그의 모멸, 죽음에의 증오, 삶에의 정렬이, 온 몸과 영혼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성취되지 않는다고 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형벌을 그에게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 지상에서 정렬을 위해 지불하지 않으면 안될 代償인 것이다."(카뮈,<시지프의 신화>,p197)

시지프의 운명이 그의 손에 속해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의 바위는 그의 소유물이며 그의 일부분인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츠의 운명은 '인과 율'에 의해 정해져 있는 대상이 아닌 그 자신에게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의 손에 있는 커다란 칼 드래곤 슬레이어가 그의 일부분인 것처럼 말입니다.

"꼭대기로 바위를 밀어 올리기 위해  잔뜩 일그러진 시지프의 얼굴. 볼을 바위에 밀착시킨 채 진흙으로 덮힌 거대한 덩어리를 한쪽 거깨로 단단히 받아내고 한발을 쐐기처럼 뻗어 그 거대한 덩어리를 지탱하며 두 팔을 뻗어 또다시 밀기 시작하는 모습. 흑 투성이가 된 양손.하늘이 없는 공간과 깊이가 없는 시간에 의해 측정되는 이 긴 노력 끝에 마침내 목적은 달성되지만 돌은 또다시 지상으로 굴러떨어진다."(카뮈,<시지프의 신화>,p200)

한쪽 눈 없는 얼굴, 의수할 수 밖에 없는 한쪽 팔, 상처투성이인 온 몸, 그리고 항상 긴장된 모습. 이 작품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시지프가 형벌을 받는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굴러 떨어지는 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지프. 그는 또다시 지상으로부터 정상까지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아래로 터벅터벅 내려갑니다. 나는 이 사나이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형벌을 향해 또다시 무겁지만 흐트러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내려가는 것을 떠올려 봅니다. 내려가는 순간은 그에게 있어서 숨돌릴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일겁니다. 그의 불행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돌아오는 시간. 이 시간은 의식이 팽팽하게 긴장된 시간입니다.

 가츠도 시지프의 발자국을 되짚습니다. 하나의 악귀를 물리치면 더 강한 악귀의 공격을 받고, 피투성이가 된 만신창이의 몸으로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악귀를 쓰러뜨립니다. 또 다시 더 강한 악귀가 나타날 터이지만 악귀를 물리친 순간의 고요함은 가츠가 유일하게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역시 시지프와 마찬가지로 그의 불행과 함께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시간이지만 이 시간은 또 다른 악귀의 출현을 위한, 팽팽히 긴장된 시간이 됩니다.
 

 가츠의 시지프스적인 삶의 궤적이 이 작품의 전부라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시지프의 삶은 무한히 반복되는 고뇌의 삶이라할수있습니다. 가츠 또한 생존해 있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하는 고난의 삶입니다. 시지프의 삶, 가츠의 삶 모두 현실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바로 우리의 삶이 아닐까요...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말입니다. 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하루하루를 힘들게 고생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우리 자신말입다. 만신창이가 되서 잠자리에 드는 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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