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무엇인가 -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빌리 그래함 지음, 지상우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죽음이란 무엇일까? 두려운 것, 알 수 없는 것, 부정적인 것들의 언표일까? 일차적으로 죽음은 생명의 소멸이다. 소멸하지 않는 생명체를 없다. 죽음은 한계적 개념이다. 그래서 인간을 특징지운다. 인간의 굴레란 다름 아닌 죽음이기에. 죽음이 없다면 그 존재는 인간이 아닌 柛일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존재란 하이데거의 표현처럼 ‘죽음을 위한 존재’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죽음의 개념’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죽음을 신학적 차원으로 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방대한 신학적이고 실증적인 보고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수많은 예화와 교훈적 경구, 통찰적이고 적절한 성경의 인용들로 가득차있다. 자살이 왜 죄가 되는지, 믿는 사람들의 병과 갑작스런 죽음, 빨리 죽는 것과 늦게 죽는 것의 차이, 안락사 문제등 죽음과 관계된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그레헴 목사는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의연히 받아들여야만 될 하나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죽음은 삶과 떨어질레야 떨어질 수 없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고 삶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의 편견일 뿐이다. 죽음은 삶을 전제로 하고 삶은 죽음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서 죽는 다는 것을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주님의 친절한 팔에 안기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기차가 종착역을 향하여 앞으로 달려가는 것처럼, 인간의 삶의 여정도 끝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이다. 곧 살아간다는 것은 생명의 끝을 향해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의 삶이 마지막 날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 이 책에서는 그 과정을 성경적으로 검토하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회개와 구원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부대끼면서 살아가야할 일상의 생활을 간과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죽음을 준비하는 기본적 생활 태도는 아마도 우리에게 내일이 없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내일이 없다는 생각은 오늘이 생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오늘 떠오르는 태양을 내일 다시 볼 수 있다는 암묵적 전제는 오늘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죽음을 언도받은 사람만이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끼며 어제의 일상이 새로운 의미가 되어 다가오는 것처럼, 유예된 시간이 얼마 없다는 마음가짐은 사소한 것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사소한 일상의 일들과 인간의 문제들에 좀 더 너그러워지며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죽음에 대해서는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한계상황이 있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인 훌륭한 그레헴 목사조차도 그가 죽음에 직면 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완전한 평화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현실사이에서 갈등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아무리 주님의 품에 안긴다 하더라도 죽음에 대한 슬픔만은 남게 된다.

 죽음에는 1인칭 죽음, 2인칭 죽음, 3인칭 죽음이 있다고 한다. 1인칭 죽음인 자신의 죽음은 지각될 수 없다. 죽고 난 뒤 어떤 감정인지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3인칭 죽음은 이러저런 아무개의 죽음이다.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닌 3인칭의 죽음도 전혀 슬픔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인 2인칭의 죽음은 차원이 달라진다. 이 2인칭의 죽음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슬프게 한다. 이는 우리의 부모, 형제 ,친구가 죽는 것이다. 이들 속에 있는 내가 죽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억제할 수 없는 슬픔의 눈물, 죽음의 공포, 죽음의 비극성을 인식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2인칭 죽음을 경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슬픔과 비극성 때문에 실의에 빠지고 좌절한다고 하면서 그들을 빨리 일상의 생활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그 역할을 호스피스들이 떠맡아야 할 사명으로 보고, 호스피스제도를 바람직한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해야할 봉사정신으로 보고 있다. 그는 호스피스 활동으로 인해 죽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죽을 것인가?’는 곧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물음과 같다. 모든 생명체가 다 죽음을 맞이하지만 오직 인간만이 그 죽음의 존재가 필연적 사실임을 인식하면서 살고 있다.

 죽음은 인간을 인간이게끔 조건지워주는 대전제이다. 그것은 시작과 끝이다. 언젠가 우리는 죽은 사람들의 환영의 모습만을 갖고 살아가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다음 세대의 기억 속에만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죽음은 남아있는 사람과의 필연적 이별을 수반하는 하나의 여정의 끝이지만, 그것은 단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재회를 위한 또 하나의 새로운 여정의 시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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