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마리오네뜨
권지예 지음 / 창비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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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소설집을 읽는다는 것은 소설가의 스타일을 확인하는 일종의 작업이다. 일단 그 소설집이 마음에 들면 무조건 그 작가는 나의 리스트 목록에 올라 내 컬렉션속으로 편입된다. 그렇게 해서 취사 선택된 이가 배수아, 전경린, 하성란, 김승우, 김영하, 복거일 박상륭, 양귀자, 김미현 등이다.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여행가처럼 낯선 이의 작품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다. 왜냐면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누구나 회소자원을 가장 잘 활용할 경제의 법칙을 따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낯선 작가의 소설집을 보면서 이건 아니라고 생각되면 그 즉시 책을 던져버려야 한다. 매몰비용이 가까워 계속 읽는다면 역시 실망도 커지기 때문이다.(경험상 지루한 책을 끝까지 읽어서 좋은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버려진 작가들이 조경란, 공지영, 김형경, 김인숙, 최일남, 은희경 등이다.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뭐 어쩌겠는가..내가 읽기 싫다는데...이런 일련의 작업가운데 권지예의 소설집이 걸려들었다. 단지 표지가 이쁘다는 이유하나만으로...(전경린의 열정의 습관과 비스무리한 흰 바탕의 붉은 계통의 그림..) 하여간 표지 디자인은 나날이 좋아지는거 같다. 책값 비싸지는 주범 중 하나지만...

소설집은 그저 그런 주제들의 여덟 작품들을 늘어놓고 있다. (그 제목은 다음과 같다; 고요한 나날, 꿈꾸는 마리오네뜨, 정육점 여자, 섬, 나무물고기, 상자속의 푸른 칼, 투우, 사라짐 마녀) 작가의 유학생활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공간에 프랑스 생활 체험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읽히고 작가의 분신과 같은 캐릭터들이 소설 도처에서 입체적으로 움직인다. 한마디로 재미가 있다!  

헌데, 재미를 느끼게 하는 그 본질이 작가의 글빨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평범하고 진부한 소재...(이 소설집의 단편들은 주로 불륜을 그리고 있다)와 그저그런 주제들에게 권지예는 정말 참신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작가가 너무 프랑스 지향적인 것에 약간은 거부감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각 단편의 내용이 그 거부감을 상쇄하고도 남을 재미를 준다.  

불륜속에서(이 소설집은 주로 불륜을 그리고 있다) 여자들의 아픔을 얘기하지도 속박과 굴레를 얘기하지도 않는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으로 미화하지도 않는다. 단지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으며(결혼 유무는 중요치 않다), 자연스럽게 그 둘은 섹스한다.(남편의 친구건 유부남이 유부녀와의 관계이건 문제될게 없다) 자연스럽게! 후회나 회한 체념..그런 건 없다. 단지 남녀가 만나 섹스하고 헤어지는게 단편들의 내용 다다.  

그런데 그 배경과 캐릭터의 독특함, 사건의 빠른 전개가 어울어져 색다른 재미를 생산해 내고 있다.(그 속에서 약간의 인간 통찰의 무게는 느낄 수 있다) 이게 이 소설집의 가장 큰 매력인거 같다. 읽으면서 내내 '이 여자 글 잘쓰네~'를 수십번 되네였다. 

(그리 무거운 소설은 아니다. 권지예자체가 무거운 거하고는 거리가 있는 듯 하다. 아마 무거운 주제를 갖고 다른 소설을 쓰더라도 전혀 무거울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참신함을 이야기 하는 시대이다.  어디서 본 듯한 드라마는 시청자들도 외면한다. 하물며 소설에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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