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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메레르 1 - 왕의 용 ㅣ 판타 빌리지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평점 :
이 책을 아침마다 지하철에서만 읽었다. 꾸준히. 너무 재미있어서 거리가 없어져 버렸다. 2호선 잠실에서 내가 내릴 역까지 10개가 넘는 역이 버티고 있었지만 책장이 넘어가면서 어느 순간 내가 내려야할 역에 와 있었다. 이 책은 그렇게 나에게 봉사했다. 출퇴근 시간의 지루함을 날려 보내주고 시간과 거리개념을 없애 주었다. 그만큼 이 책은 재미있었다!
판타지 소설에는 별로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었던 내가 판타지 소설에 푹 빠져 있는 게 신기했다. 해리포터시리즈가 그렇게 재미있다는데, 첨에 보다가 재미을 못 느껴 던져버렸고, 반지의 제왕은 끝까지 읽어 낼 수는 있었지만 중간에 너무 지루했다. 반지의 제왕은 91년도판으로 두꺼운 1권의 책으루 출판된 거라서 3권으로 됐으면 중간에 포기했을 거다.
서점이나 대여점에서 판타지 소설시리즈가 있어도 다~~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왠지 가볍고 싸구려틱한 선입견이랄까. 차라리 환타지 소설을 읽느니 김용 대하역사소설...일명 무협지를 보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지배적었다. 환타지 만화는 읽어도 절대 판타지 소설은 읽지 않았다. 빌어먹을 싸구려 소설로 치부해 버리고 멀리해 왔다.
그런데, 모 매체의 광고카피에 홀라당 빠져서 <테메레르>라는 황당무계한 역사판타지 소설 한 권이 내 손에 들어왔다. 나폴레옹와 넬슨이 자웅을 겨루던 19세기에 전설상에나 등장하는 용이 각국의 공군으로 전쟁에 활약한다는 내용이었다. 솔직히 책을 처음 펼치고 읽어가면서 그래, 니까짓게 재미있으면 얼마나 재미있냐 어디 함 봐보자~ 라는 약간 냉소적으로 책을 대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피턱 잭슨 감독이 영화화하기로 결심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소설가의 데뷔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용과 그 용을 타는 비행사 간의 감동적인 우정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끌렸다. 용이 말하는 광경에는 경악했다. 이건 판타지라도 넘 한거 아닌가 라는 실소도 나긴 했지만 뻥을 뻥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지금 읽는게 판타지라는 사실에 집중하고 보니 대수롭지 않았다. 오히려 말하는 용들과 용들의 온순함에 애정까지 생길정도~^^;;
용을 등장시킨 영화와 소설은 많이 봐왔다. 주로 싸구려틱한 판타지소설에 단골로 등장하하는 아이템이다. 영화에서는 주로 악당으로 자주 묘사되었다. 반지의 제왕시리즈에서 나오는 용을 생각해봐도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용들은 인간 친화적이고 온순하면서도 용맹한 것으로 그려진다. 19세기 비행기가 없던 시절에 용들에 의해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 싸우는 제국주의 국가들을 생각해보면, 아~ 그럴수도 있겠다는 개연성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나폴레옹과 넬슨을 직접 등장시키지 않고 소설속의 캐릭터들에 의해 간접적으로 언급만 되는 게 불만이었고, 무엇보다 트라팔가르 해전이라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한 설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재해석하여 실제해전과 용들의 공중전을 결합시켜 전개한 부분은 정말 엉성했다. 좀 더 세밀하고 역사적인 고찰로 내용을 풍부하게 할 수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용에 초점을 두어 내용을 전게시킨 게 흠이었다. 대체역사소설이라고 하려면 좀 더 철저하고 그럴듯하게 써야했는데 너무 가볍게 재미위주의 스토리 전게에만 급급했다는 인상이다.
그리고 이 책의 최대 실수 한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거대한 용이 엄청난 먹거리를 먹어치우는 동안 어떻게 배설물이 하나도 없다는 게 요상했다. 지상요원의 임무 중에도 용의 배설물을 담당하는 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아~ 용은 배설을 안하는 동물인가? 먹으면 나오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체온도 따듯하고 소화도 잘 시키는 것이 배설을 안한다? 거참 요상한 설정이다. 아무래도 작가가 너무 바쁘게 집필하는 나머지 배설물에 관한 설정을 안하고 집필한 거 같다.
뭐, 그래도 그건 애교로 봐주자. 참을 수 없는 건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를수록 오탈자가 심각하게 눈에 띤다는 사실이다. 로렌스라는 이름도 로렌은...으로 스자를 빼먹지 않나 맞춤법을 틀리지 않나 하여간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었다. 급기야 471페이지 부분에서 그 부르스는 폭발을 했다. “비행사들 중에도 그런 능력에 대해 들어본 적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테메레르의 ‘신의 바람’으로 프랑스 공군을 물리치고 나서 용 전문가 하우 경과 로렌스와의 대화부분이다. 그대로 옮겨 본 것이다. 이게 도대체 뭔가? 교정을 제대로 본 건지. 한심스럽다.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라고 해야 겠지. 이런 심각한 오류가 맨 마지막장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너무 빠를 출간으로 교정을 대충대충 봤다는 인상이다. 끝에서 이런 점이 발견되니 재미있게 읽고 나서도 출판사의 성의 없음에 약간은 실망감도 들었다. 하지만 처음 찍은 책이라는 위안을 삼아본다.
6권으로 예정되어 있는 첫 권이라서 그런지 주요 용에 대한 설명과 캐릭터 묘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 거 같다. 앞으로는 훨씬 더 스토리가 강화된 내용으로 2권과 3권을 만날 수 있을 거 같다. 해리포터 씨리즈와 반지의 제왕 씨리즈에 버금가는 역사판타지물이 될 거 같은 예감이다. 한 권씩 나올 때 마다 영화와 맞물려 광적인 팬들을 형성할 거란 예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해리포터와 반지에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는 재미와 캐릭터가 있기에. 누가 알겠는가. 얼마 후 어린 아이들이 리걸 코퍼 품종의 용과 셀레스티얼 품종의 용의 프라모델을 갖고 놀면서 누가 센지 내기하는...지금 포켓몬 카드게임과 같은 놀이를 하고 있을지..
(내가 이 책을 본 것은 초판 1쇄. 재작년 여름에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읽었던 건데....지금은 5권이 나온 걸 보니...시간이 참으로 빨리도 간다는 생각이 든다. 5권 아니 6권을 언제 다 본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