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평면에 구현해 보고자하는 게 내 작업의 요체다. 대표적인 것이 시간. 사람의 몸은 시간을 통과하는데 그때 몸과 정신에 쌓이는 게 기억이다. H.베르그손은 인간의 전 생애기억을 ‘순수기억’이라고 명명했고, 순간순간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을 ‘이미지-기억’이라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순수기억은 무의식의 영역이라 사람이 만날 수 없지만 집중하면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매우 어렵지만 순수기억(무의식)은 이미지 기억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고 상호 중첩되는 과정을 통해 발현될 수밖에 없기에, 나는 순수기억이 발현되는 그 찰나적 ‘이미지-기억’을 평면에 표현해 보고자 했다.
(헌데, 사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좀 무모한 시도였다. 이게 아마도 내 첫 전국공모 응모작이다. 도대체 시대상을 담을 수가 없었고, 이걸 낼 당시에는 대상과 주제 탐구에 급급했던 때다.ㅎㅎ 같은 주제를 표현을 약간 다르게 하여 2개 대회에 냈는데, 아래 20호는 창작미술대회 입상작이다.)
(순수기억의 발현; 이미지-기억1, 종이보드에 아크릴혼합, 72.7×50cm, 2023)
순수기억은 전 생애에 축적되어 온 기억이기에, 우리가 일상에서 이미지로 기억해 낼 수 없다. 일종의 무의식의 영역이다. 그래서 나는 전 생애에 축적되어 온 무의식의 영역을 푸른색의 그라데이션을 통해 거칠게 표현했다. 그 위에 관입된 거친 갈색 층은 우리가 기억할 수는 없지만 과거의 잠재적 기억들이 불규칙하게 축적되어 있는 상태를 구현해 본 것. 오른편 상단의 선명한 3개의 사각형은 아주 특정한 상황에서 ‘이미지-기억’을 통해 발현되는 ‘순수기억’이다. 베르그손이 집중하면 아주 예외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고 한 바로 그 순간을 조형적으로 구성해 본 작품이다.
덧. 아마도 이걸 올 5월에 그렸을 거다. 시대성을 담보하지 못해 본상 수상에 실패했지만, 그래도 표출된 전경 자체는 만족하는 편이다. 사실 11월까지 창작한 작품 중에서 지인들에게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고, 실제로도 팔렸던 작품이다. 지인들 왈 이걸 주력으로 그리라는데, 개인적으로는 참 망설여진다. 난 4작품 그리고 이 시리즈를 더 이상 그리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