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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1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추리 소설 마니아들 가운데 히가시가와 도쿠야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적진 않으리라 싶다. 나의 경우, 작가의 마니아 독자라고 부르기엔 턱 없이 부족하다. 그저 그의 작품을 몇 권 접해 본 적이 있다 뿐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들을 언젠가 한 권 한 권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란 이 책은 그런 마음에 구입해 놓고는 책꽂이에서 잠자던 책 가운데 한 권이다.
옮긴이가 설명해주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작가를 본격적으로 알린 대표적이라고 한다. 2010년에 발간된 작품인데, 발간 초기엔 주목받지 못했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발간 다음해인 2011년도에 판매 부수가 100만부를 넘겼다는 작품이다(와~ 대단하다. 1년 만에 100만부라니.). 바로 그 해(2011년)에 우리말로 번역 출간된 작품이다.
도합 6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연작단편소설집이다. 주인공은 두 명의 형사와 한 명의 집사가 그들이다.
호쇼 레이코는 평범한 여형사인데, 사실 평범하지만은 않다. 그녀는 호쇼 그룹의 총수인 호쇼 세이타로의 외동딸로 출퇴근을 전속기사가 운전하는 리무진으로 하지만, 경찰서에선 몇 사람만이 그 신분을 알고 있는 평범한 척 하는 형사이다. 온갖 명품으로 몸을 두르고 있음에도 누군가 물어보면, 백화점에 누워 있는 녀석들을 특별 할인하여 구입했다고 말하곤 한다. 이렇게 여전히 평범함을 드러내려 하는데, 무딘 남정네들은 쉽게 속아 넘어간다. 그런 레이코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은 바로 어마무시한 저택의 공주님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이런 특별한 배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자신의 배경은 철저하게 비밀에 붙인다. 자신의 배경으로 성공하는 형사가 아니라 형사로서의 유능함으로 성공하길 바라기 때문. 하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 어쩐지 그녀에게선 명탐정의 기질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녀에게는 아니꼽지만 절대적인 도움이 되는 이가 있으니 그게 바로 호쇼 가문의 젊은 집사인 가게야마다. 나중에는 레이코로 하여금 가게야마의 특출한 추리실력을 닮고픈 마음에 가게야마처럼 안경을 쓰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는데. 과연 레이코는 유능한 형사가 될 수 있을까?
또 한 사람 가자마쓰리 경부가 등장하는데, 이 친구는 32살 독신 남성으로 유명 자동차 회사인 ‘가자마쓰리 모터스’의 도련님이다. 자신의 은색 재규어에 경광들을 얹고 거리를 질주하는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일부러 경찰관이 되었다는 괴짜 경부로서 언제나 자신의 부를 자랑하지만, 실상 레이코 앞에서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다(물론 본인은 여전히 모르지만 말이다.). 이런 설정도 소설의 소소한 재미를 더해주는 부분이다. 또한 가자마쓰리 경부는 자신의 추리 솜씨가 뛰어난 듯 발언을 일삼지만, 그가 하는 추리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식선에 불과하다. 아니, 때론 상식선에도 도달하지 못해, 누군가가 상식적인 말을 하면, 자신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음에도 당연히 자신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양 떠벌이는 헛다리 철부지 형사. 하지만, 묘하게 레이코 형사와 어울리는 귀여운 캐릭터의 주임 형사다. 이 가자마쓰리 경부에 대해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한 것을 마치 자신이 발견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가자마쓰리 경부의 특기다.(66쪽)
여기에 또 한 사람 사건 해결을 위해 절대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 호쇼 가문의 젊은 집사이자 레이코의 운전기사이기도 한 가게야마 란 인물이다. 가게야마는 원래는 프로야구 선수나 사립 탐정이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호쇼 가문의 집사로 취직한 상태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었던 만큼 운동신경이 좋다. 아울러 사립 탐정이 되고 싶었던 만큼 두뇌도 좋고. 이처럼 지력과 체력,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완벽한 캐릭터가 가게야마다. 하지만, 갖추지 못한 게 있으니 그건 바로 싸가지다(아가씨의 입장에서 볼 때.). ‘실례되는 말씀’을 자주 하기 때문.
마침 모시는 ‘아가씨’가 형사인지라 미궁에 빠진 사건들을 레이코에게서 듣고, 사건을 해결해준다. 사건을 해결할 때엔, 레이코를 마음껏 깔아뭉갠다. 이 정도 사건의 진상도 모른다니 멍청이냐는 둥, 눈은 멋으로 달고 다니느냐는 둥, 이런 간단한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니 그러고도 프로 형사냐는 둥, 발칙한 발언을 일삼는 집사인데, 레이코는 이런 발칙한 집사를 어쩌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뛰어난 추리력이 필요하기에. 그래서 비위를 살살 맞춰가며 사건의 진상을 듣곤 한다.
이 세 사람이 풀어나가는 사건들은 때론 만담을 보는 것처럼 가볍고 유쾌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물론, 묵직한 메시지를 주로 던지는 사회파 미스터리 마냥 무거운 느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다양한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들, 그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본격추리소설의 탄탄함이 있다. 때론 묵직한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도 좋지만, 이처럼 가볍고 유쾌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추리의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본격추리소설도 좋다.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는 후자의 맛을 잘 느끼고 누릴 수 있는 재미난 추리소설이다. 유쾌한 분위기의 추리소설, 이 책을 읽고 난 후엔 작가의 또 다른 책으론 어떤 책들이 있는지 찾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