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의 기담 -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옛이야기
오정희 지음, 이보름 그림 / 책읽는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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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의 기담에는 옛 이야기 8편이 실려 있다. 서문에서 강원설화집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강원도 지방에 내려오는 설화 8편을 작가의 목소리로 재탄생시켰음을 추측케 한다.

 

마치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의 분위기를 풍기는 이야기들.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읽은 내용인 듯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이런 기시감은 우리의 설화가 갖고 있는 보편성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옛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은데, 그렇지 않다. 옛 이야기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가치 있는 건, 이야기에는 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힘은 우리 자신을 생각게 하는 힘이기도 하고,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기도 하며, 우리를 새롭게 다짐케 하는 힘이기도 하다.

 

왕따 이야기를 만나기도 하고, 사악한 계모와 어리석은 친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가련한 소녀의 이야기를 만나기도 한다. 가문에 대한 명예가 가족 구성원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갖는 이상한 세계와도 만나기도 한다. 이별의 아픔을 지나 기다림의 먹먹함, 그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행복을 만나기도 한다. 반대로 기다림에 지쳐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선택을 하는 안타까움을 만나기도 한다. 1등 지상주의로 만연한 모습 속에 드러난 탐욕이라는 민낯, 그럼에도 여전히 1등의 가치가 드러나는 반전의 이야기도 만나게 된다. 모호한 선의 경계, 과연 어느 편이 선인지 망설이게 하는 이야기도 만나게 되고. 성실하지만 여전히 가난의 무거움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허덕이다 결국엔 보상받게 되는 이야기를 만나기도 한다. 위기 앞에서 보여주는 용기가 낳게 되는 행복을 만나기도 하고.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데, 물론, 때론 오늘 우리의 가치로 판단할 때, 꺼려질만한 가치를 이야기 속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대적 한계를 보지 말고, 그 시대적 한계 안에 담겨 있는 정신 또는 메시지를 읽게 된다면 여전히 옛 이야기는 지금도 살아 있는 오늘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당시 민중들이 처한 현실, 그 속에 품던 소망을 만나게 되는 기쁨이 있다.

 

8편의 이야기에서 그치게 됨이 아쉽게 다가올 만큼 이야기가 주는 행복이 컸다. 작가가 또 다른 다양한 기담으로 독자들을 행복하게 해주길 기다릴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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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새소설 1
배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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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꺽꺽거리며 웃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딸아이가 내 방문을 열어볼 만큼 한참을 웃었다. 딸아이의 궁금함과 황당함이 섞인 표정의 눈초리를 맞으면서도 또 한참을 웃었다. 그만큼 재미난 소설이 배준 작가의 시트콤이다.

 

소설 시트콤은 제1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우선 재미나다. 한달음에 끝까지 읽게 된다. 부작용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누군가 책 있는 내 모습을 이상한 눈초리로 볼 수 있으니 조심하자.

 

솔직히 별로 특별한 내용은 아니다. 언젠가 어느 코믹 영화에서 봤던 내용 아닌가 싶은 장면들을 제법 많이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절묘하게 모여 작가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신나게 웃고, 그리고 나선 뭔가 묵직한 메시지가 가슴을 콕콕 찌른다. 오늘 이 땅의 청소년들의 무게를 살짝 짊어져봤던 것 마냥 느껴져 먹먹하기도 하고,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연민의 마음을 품어보게도 된다. 이것 역시 작가의 이야기가 갖는 힘이다.

 

무더운 여름, 학교 내 평소 사용하지 않던 교실에 수상쩍은 두 학생이 은밀하게 스며들어온다. 중학생처럼 보이는 앳된 남학생과 누나처럼 보이지만 같은 학년 여학생. 이들 고1 커플이 평소 사용하지 않던 교실에 들어온 건 둘만의 발칙한 사랑을 나누기 위한 것. , 무모하리만치 용감하다. 사랑이 이런 무모함을 선물하는 걸까? 아무튼 서툴지만 사랑의 행위에 목마른 어린 커플은 그들만의 공간에서 서툰 거사를 치르기 위해 나름 분투한다.

 

하지만, 이 분투는 또 다른 엄청난 분투를 낳게 된다. 누군가 자신들만의 공간에 침입하기 때문. 이에 둘은 엉거주춤한 행색으로 테이블 밑에 숨게 되고. 4명의 교사들이 에어컨이 고장 난 교무실을 피해, 이곳에 들어와 에어컨 바람을 쐬다 나간다. 그리곤 잠시 후, 또 다른 수상한 커플이 들어오게 되는데. 바로 조금 전 4명의 교사들 가운데 젊은 남녀 교사들. 이들 역시 수상쩍은 행동을 하려 자신들만의(?) 공간으로 스며들었던 것.

 

둘 역시 질척거리는 거사를 치르려던 순간, 누군가 또 다시 비밀의 공간, 그 문을 열어젖힌다. 두 교사가 숨을 공간은 테이블보로 은폐된 테이블 아래. 요상한 상태로 급히 들어가 보니, 아뿔싸! 그곳엔 선객이 있었다. 이렇게 넷은 또 다시 야릇한 자세로 벌을 서게 된다. 은밀하고 야릇한 일들이 반복해서 벌어지는 이 공간에 찾아온 후래자는 누구일까? 이들은 무슨 용무로 이곳을 찾은 걸까? 그리고 숨어 있는 네 사람은 얼마나 그 안에서 벌을 서야만 하는 걸까?

 

그 뒤로 펼쳐지는 별개의 사건들처럼 여겨지는 몇 편의 에피소드. 그들 에피소드는 모두 절묘하게 하나로 이어지게 되고, 돌고 돌아 다시 요상한 공간의 교실에서 막장 드라마를 그려낸다.

 

중간의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참 재미나다. 전교1등의 가출이야기, 고등학생의 무면허운전(실제는 면허증이 있다. 면허증을 집에 놓고 왔을 뿐.) 이야기, 원조교제가 시체 유기로까지 이어지는 이야기, 바바리맨이 아닌 빤스맨의 등장 등등 여러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상야릇하고 코믹한 공간에서 갑자기 장면이 바뀌어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땐, 웬 딴소리들을 늘어놓나 싶었지만, 이 이야기들 하나하나는 절묘하게 서로를 감싸며 엮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막장 드라마는 숨 막혀 하는 주인공이 자신의 숨통을 보장받기 위해 가정의 해체를 향해 나아가게 되는 막장 드라마가 그려진다. 하지만, 이런 막장 드라마는 도리어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고 가정의 회복으로 나아감도 절묘하다. 때로는 막장 드라마로 흘러버리는 것 같아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불안한 마음에 다음 이야기를 읽게 되지만, 결국엔 멋지게 봉합되는 순간이란, 경탄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재미나다. 그 재미난 이야기들 속에 가슴을 콕콕 찌르는 메시지들이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게 감춰져 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다려질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재미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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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0분 근대 속의 대한제국을 읽다 - 개항부터 한일합병까지 한국사 이면 엿보기
이수광 지음 / 북오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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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국사과목을 공부할 때, 근대사 부분에서 어김없이 외우게 되는 사건들이 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임오군란, 갑신정변, 갑오개혁, 아관파천, 을사늑약(물론 당시에는 을사조약으로 배웠을 게다.) 등등의 단어들. ‘이들을 시대 순으로 바르게 열거한 것은?’ 이란 식의 문제들.... 그렇다. 이들 단어들은 우리들에겐 숫자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 용어 속에 일어난 내용을 암기하고, 그 연도를 암기하는 것이 우리들이 할 일이었다.

 

그랬기에 그 역사적 사건들이 우리에겐 외워야 할 대상이었지, 그 사건을 들여다보며, 그 사건,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부침을 겪었던 사람을 들여다보며, 때론 분개하고, 때론 슬퍼하며, 때론 뭔가를 결단케 하는 살아있는 역사로서가 아닌, 그저 암기해야 할, 단어와 숫자에 불과한 죽어있는 역사였던 기억이다.

 

그렇게 죽어있는 역사, 말 그대로 이미 지나가버려 그저 단어와 숫자로 만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아닌, 사건들 이면에 담겨진 살아있는 이야기로 만나게 하는 책이 여기 있다. 역사 소설로 유명한 이수광 작가의 하루 30분 근대 속의 대한제국을 읽다란 제목의 책이다. 이 책은 개화의 물결이 밀려와 다양한 모습으로 개항을 요구하던 때부터, 을사늑약이라는 국치 사건까지 한국사의 이면을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엿보게 되는 책이다. 그래서 책의 부제는 개항부터 한일합병까지 한국사 이면 엿보기이다.

 

책을 통해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게 되고, 다양한 사건들을 만나게 된다. 익히 많이 듣고 알던 인물이나 사건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이런 인물이 격동의 시기 속에서 나름의 역할(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을 했구나 싶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때론 잘 알지 못하던 이야기를 만나 눈을 반짝이던 때도 있었고. 때론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책장을 덮어두고 분을 삭이던 때도 있었다. 때론 만약이런 인물이 없었더라면, ‘만약이 일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이런 무의미한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때론, 이 인물을 이렇게도 바라볼 수 있구나 싶어 흥미로울 때도 있었다.

 

작가는 대체로 어떤 사건에 대해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려 하지는 않는 듯 하다. 그저 29개의 역사적 사건들을 드러내며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가운데 각자 판단하게 하고, 각자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밀정이 되어 민족 반역의 길을 걸었던 배정자라는 인물, 친일파란 오해 속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김홍집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김정호의 딸 이야기도 인상적이었고. 어쩔 수 없이 울분을 느낄 수밖에 없는 역사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전혀 어렵지 않은 쉽게 쓰인 역사 이야기를 통해, 개화의 물결 속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고민하던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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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명자 리틀씨앤톡 모두의 동화 4
장경선 지음, 강창권 그림 / 리틀씨앤톡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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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 명자는 아빠가 없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셨기 때문이 아니라, 아빠가 강제징용으로 먼 곳으로 끌려갔기에 곁에 없는 겁니다. 아빠와 오빠는 일제강제 징용으로 사할린으로 가 광부가 되었답니다. 보고 싶은 아빠, 그리운 아빠를 찾아 가족은 경주에서 사할린으로 먼 길을 떠나게 됩니다. 이렇게 명자의 사연 많은 사할린 생활이 시작됩니다. 과연 그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명자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안녕, 명자란 제목의 동화는 일제 강점기 사할린으로 강제징용 되어 끌려갔던 이들의 아픔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사할린에서 90일 가량 생활할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인연이 되어 만났던 한 할머니가 전채련 할머니입니다. 해방되기 1년 전, 아버지와 오빠를 따라 사할린으로 와서, 해방이 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하는 할머니가 동화 속 명자의 모델이라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되어 끌려간 사람의 수가 15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낯선 땅에 끌려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힘겨운 노동을 해야만 했던 이들. 일한 대가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설움을 삭혀야만 했던 이들. 그들은 일본에 의해 기계처럼 사용되어지곤, 해방이 되자 일본에 의해 버려집니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으로 자신들이 버려졌단 생각보단 조국으로 돌아갈 생각에 희망 가득했을 겁니다. 그런 그들은 해방 후에도 조국이 불러주지 않아 돌아올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분들의 멍울진 가슴을 누가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우리에게 이들은 이미 잊힌 존재들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 우린 그네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러시아인일 뿐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는지 반성해봅니다.

  

  

그분들의 아픈 가슴을 살며시 어루만져줄 동화가 바로 안녕, 명자입니다. 아니, 동화는 여전히 그분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기보다는 도리어 그 아픔을 살며시 드러낼 뿐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아픔을 알고, 함께 아파하는 독자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분들의 아픔은 녹아내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화는 사할린에서 살며 지금도 고향을 그리워할 교포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여겨집니다.

 

동화를 읽고 사할린에 대해 검색을 해보며, 이런저런 내용을 찾아 읽다보니, 마침 올해(2018) “사할린 한인 추모관이 개관을 했더라고요. 사할린으로 여행을 계획할 땐, 이곳을 꼭 일정에 넣어 방문함으로 강제 징용되어 고향을 그리워하다 그곳에서 세상을 떠난 분들을 추모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물론, 안녕, 명자를 함께 읽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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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1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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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리 소설 마니아들 가운데 히가시가와 도쿠야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적진 않으리라 싶다. 나의 경우, 작가의 마니아 독자라고 부르기엔 턱 없이 부족하다. 그저 그의 작품을 몇 권 접해 본 적이 있다 뿐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들을 언젠가 한 권 한 권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란 이 책은 그런 마음에 구입해 놓고는 책꽂이에서 잠자던 책 가운데 한 권이다.

 

옮긴이가 설명해주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작가를 본격적으로 알린 대표적이라고 한다. 2010년에 발간된 작품인데, 발간 초기엔 주목받지 못했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발간 다음해인 2011년도에 판매 부수가 100만부를 넘겼다는 작품이다(~ 대단하다. 1년 만에 100만부라니.). 바로 그 해(2011)에 우리말로 번역 출간된 작품이다.

 

도합 6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연작단편소설집이다. 주인공은 두 명의 형사와 한 명의 집사가 그들이다.

 

호쇼 레이코는 평범한 여형사인데, 사실 평범하지만은 않다. 그녀는 호쇼 그룹의 총수인 호쇼 세이타로의 외동딸로 출퇴근을 전속기사가 운전하는 리무진으로 하지만, 경찰서에선 몇 사람만이 그 신분을 알고 있는 평범한 척 하는 형사이다. 온갖 명품으로 몸을 두르고 있음에도 누군가 물어보면, 백화점에 누워 있는 녀석들을 특별 할인하여 구입했다고 말하곤 한다. 이렇게 여전히 평범함을 드러내려 하는데, 무딘 남정네들은 쉽게 속아 넘어간다. 그런 레이코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은 바로 어마무시한 저택의 공주님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이런 특별한 배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자신의 배경은 철저하게 비밀에 붙인다. 자신의 배경으로 성공하는 형사가 아니라 형사로서의 유능함으로 성공하길 바라기 때문. 하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 어쩐지 그녀에게선 명탐정의 기질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녀에게는 아니꼽지만 절대적인 도움이 되는 이가 있으니 그게 바로 호쇼 가문의 젊은 집사인 가게야마다. 나중에는 레이코로 하여금 가게야마의 특출한 추리실력을 닮고픈 마음에 가게야마처럼 안경을 쓰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는데. 과연 레이코는 유능한 형사가 될 수 있을까?

 

또 한 사람 가자마쓰리 경부가 등장하는데, 이 친구는 32살 독신 남성으로 유명 자동차 회사인 가자마쓰리 모터스의 도련님이다. 자신의 은색 재규어에 경광들을 얹고 거리를 질주하는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일부러 경찰관이 되었다는 괴짜 경부로서 언제나 자신의 부를 자랑하지만, 실상 레이코 앞에서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다(물론 본인은 여전히 모르지만 말이다.). 이런 설정도 소설의 소소한 재미를 더해주는 부분이다. 또한 가자마쓰리 경부는 자신의 추리 솜씨가 뛰어난 듯 발언을 일삼지만, 그가 하는 추리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식선에 불과하다. 아니, 때론 상식선에도 도달하지 못해, 누군가가 상식적인 말을 하면, 자신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음에도 당연히 자신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양 떠벌이는 헛다리 철부지 형사. 하지만, 묘하게 레이코 형사와 어울리는 귀여운 캐릭터의 주임 형사다. 이 가자마쓰리 경부에 대해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한 것을 마치 자신이 발견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가자마쓰리 경부의 특기다.(66)

 

여기에 또 한 사람 사건 해결을 위해 절대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 호쇼 가문의 젊은 집사이자 레이코의 운전기사이기도 한 가게야마 란 인물이다. 가게야마는 원래는 프로야구 선수나 사립 탐정이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호쇼 가문의 집사로 취직한 상태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었던 만큼 운동신경이 좋다. 아울러 사립 탐정이 되고 싶었던 만큼 두뇌도 좋고. 이처럼 지력과 체력,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완벽한 캐릭터가 가게야마다. 하지만, 갖추지 못한 게 있으니 그건 바로 싸가지다(아가씨의 입장에서 볼 때.). ‘실례되는 말씀을 자주 하기 때문.

 

마침 모시는 아가씨가 형사인지라 미궁에 빠진 사건들을 레이코에게서 듣고, 사건을 해결해준다. 사건을 해결할 때엔, 레이코를 마음껏 깔아뭉갠다. 이 정도 사건의 진상도 모른다니 멍청이냐는 둥, 눈은 멋으로 달고 다니느냐는 둥, 이런 간단한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니 그러고도 프로 형사냐는 둥, 발칙한 발언을 일삼는 집사인데, 레이코는 이런 발칙한 집사를 어쩌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뛰어난 추리력이 필요하기에. 그래서 비위를 살살 맞춰가며 사건의 진상을 듣곤 한다.

 

이 세 사람이 풀어나가는 사건들은 때론 만담을 보는 것처럼 가볍고 유쾌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물론, 묵직한 메시지를 주로 던지는 사회파 미스터리 마냥 무거운 느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다양한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들, 그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본격추리소설의 탄탄함이 있다. 때론 묵직한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도 좋지만, 이처럼 가볍고 유쾌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추리의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본격추리소설도 좋다.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는 후자의 맛을 잘 느끼고 누릴 수 있는 재미난 추리소설이다. 유쾌한 분위기의 추리소설, 이 책을 읽고 난 후엔 작가의 또 다른 책으론 어떤 책들이 있는지 찾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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