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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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와 동시대의 추리소설작가로 쌍벽을 이룬 요코미조 세이시, 그토록 유명한 작가임에도 그의 작품을 이제야 처음 접했다. 밤 산책이란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탐정은 일본의 국민 탐정인 긴다이치 코스케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소년 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로 소개되고 있지만, 실상, 긴다이치 코스케가 유명하기에 소년 탐정 김전일을 그 유명한 국민 탐정의 손자로 설정했으리라.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작가의 3번째 작품인 밤 산책1948년 작품이니 가히 추리소설의 고전이라 부를 만하다. 그럼에도 작품을 읽어가는 데 전혀 시대적 차이, 이질감을 느끼지 못한다.

 

본격추리소설을 표방하지만, 이 소설 밤 산책은 작가가 상당히 반칙을 범한 작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작심하고 독자들에게서 범인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정당한 페어플레이를 하며, 깐깐하고 예리한 눈을 가진 독자들이 눈치 챌 수 있는 그런 단서들을 제공하기보다는 작심하고 책 속의 책, 즉 액자소설의 형태(온전한 액자소설의 형태가 아니기에 더욱 깜빡 속게 된다.)로 작품을 풀어가며 독자의 눈을 가리고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건 반칙이라며 분개할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 그것도 좋다. 작심하고 속이는 작가에겐 모른 척 속아주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테니 말이다. 꼭 범인을 밝혀내고야 말리라는 생각보다는 적당하게 머리를 굴리다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속을 수밖에 없는 작가의 트릭에 속아 넘어갔다며 너털웃음 지으면 그만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작품 속 트릭은 고전적 장치들이 등장한다. 목 없는 시신으로 인해 범인을 감추려는 시도, 이를 위한 사전 작업, 알리바이 조작 등이 본격추리소설의 맛을 전해준다. 여기에 뭔가 의뭉스러운 느낌의 등장인물들이 사건을 더욱 미궁으로 몰아넣는다. 특히, 몽유병을 앓는 등장인물들로 인해 사건은 묘한 몽환적 느낌마저 갖게 한다. 그런데, 정말 몽유병을 믿을 수 있을까? 여기엔 트릭이 없을까?

 

전쟁 후 두각을 드러낸 꼽추 화가 하치야가 어느 날 밤 카바레 하나에서 의문의 여성에 의해 총격 사건을 당한다. 다행스럽게도 허벅지에 총상을 입은 것으로 그친 사건. 하지만, 그 사건의 범인은 미궁에 빠지기만 하는데. 바로 그 사건을 일으킨 범인은 바로 명망 있는 후루가미 가문의 외동딸 야치요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후루가미 가문의 관계자들뿐. 게다가 이 사건을 기회로 해서 야치요는 하치야와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주인공 는 이 사실을 자신의 친구이자 후루가미 가문의 실세 아들인 센고쿠 나오키에게서 듣는다. 후루가미 가문은 상당히 복잡한 상태인데, 먼저, 주군은 죽고 없는 이 가문엔 전처의 소생인 큰 아들 모리에가 있다(모리에는 꼽추다.). 모리에에겐 이복동생인 야치요가 있다. 그리고 야치요의 모친인 류 님이 가문의 대표자다. 하지만, 실제 가문을 대표하는 사람은 가문의 가신인 센고쿠 데쓰노신이다. 데쓰노신과 류는 주군이 살아 있을 때부터 불륜 관계에 있었다. 그래서 야치요의 실제 아버지가 주군인지, 데쓰노신인지 알 수 없다. 여기에 야치요의 아버지를 알 수 있는 한 단서로는 데쓰노신은 몽유병을 앓고 있는데, 야치요 역시 몽유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데쓰노신의 아들인 나오키 역시 몽유병을 앓고 있다. 그렇다면 야치요는 법적으로는 꼽추이자 가문의 상속자인 모리에의 이복동생이지만, 실상은 둘은 남남일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나오키와 야치요는 남남이지만 남매일 가능성이 있다. 이런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한 여인을 향한 애정이 시작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곳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피해자는 머리 없는 시체다. 그 몸통은 꼽추다. 그런데, 사라진 사람은 둘, 바로 두 꼽추인 하치야와 모리에가 사라졌다. 과연 시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그리고 범인은?

 

이 일을 삼류 탐정소설가인 가 추적해 나가지만, 사건은 오리무중. 그러던 차 또 다시 장소를 옮긴 후루가미 가문에서 연쇄 살인이 벌어진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소설을 읽으며, 탐정 역할을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화자인 삼류탐정소설가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소설은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에 속한 작품이다. 그러면, 왜 긴다이치 코스케는 등장하지 않는 거지? 등장하긴 한다. 소설의 중반부분이 지나서야 말이다. 이렇게 주인공 탐정이 마치 단역처럼 한참이 지나서야 등장하고, 실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것이 조금은 의외였다.

 

이번 작품을 통해 만난 일본의 국민 탐정인 긴다이치 코스케는 어수룩한 외모와 말투, 게다가 뒤늦게 나타난 탐정이라니. 별로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지 않지만, 그럼에도 냉정한 추리를 선보이고 사건의 진상에 한 달음에 접근해 버리는 명탐정이다.

 

아무튼 이 소설 밤 산책은 어느 작가가 평가했듯 에도가와 란포 마저 부러워할 만큼 추리소설 작가로서 재능을 타고난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는데 의의를 두게 된다. 그렇다고 소설이 재미없는 건 절대 아님.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이 이런 느낌이구나 싶게 맛을 살짝 봤다는데 또 하나의 의의를 두며, 일본의 국민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을 살며시 엿봤음에 만족해 본다. 앞으로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찾아 읽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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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할머니 다이애나 윈 존스의 마법 책장 2
다이애나 윈 존스 지음, 사타케 미호 그림, 김시경 옮김 / 가람어린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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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원작자가 영국 작가인 줄 몰랐답니다. 별 생각 없이 일본 작가일 것이라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영국 작가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J. R. R. 톨킨의 제자로 공부한 분이라고 하네요. 다이애나 윈 존스라는 작가입니다. 톨킨의 제자답게 영국을 대표하는 판타지 작가라 합니다.

 

바로 이런 작가의 동화를 만났습니다. 네 명의 할머니라는 제목의 동화인데, 역시 마법이야기가 등장하는 동화랍니다. 동화를 읽고 든 생각은 마법이 유별나지 않단 생각입니다. 마법사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마법을 배운 것도 아닌데, 그저 아이의 순수한 상상 내지 믿음이 마법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물론, 동화 속에선 젓가락이 마법의 젓가락으로 이야기되지만 말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 젓가락은 마법의 힘을 갖게 되었는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네요. 그저 마치 당연하단 듯, 일상의 삶 속에 마법이 흘러들어, 굉장히 비일상적 삶이 그저 평범한 일상의 모습처럼 느껴지게 하는 동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우리네 일상이 이와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의 일상은 평범하고, 때론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사건들이라 할지라도 생각해보면, 그 평범한 일상 안에 마법과 같은 신비하고, 놀라운 일들이 감춰져 있음을 알려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주인공 소년 에르그에겐 몇 가지 악재가 겹치게 됩니다. 첫째 악재는 동생 같지 않은 동생의 존재입니다. 오빠보다도 훨씬 큰 덩치를 가진 동생, 오빠의 말을 듣기보다는 너무나도 당연히 오빠를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하는 동생의 존재가 주인공 소년에겐 커다란 악재입니다.

 

또 하나의 악재는 소년에겐 네 명의 할머니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죠. 엄마와 아빠가 결혼하기 전 모두 한 번씩 이혼을 했기에, 할머니가 네 분이나 된답니다. 각기 서로 다른 성향의 할머니들, 그런 네 명의 할머니가 모두 집을 찾아옵니다. 엄마 아빠가 나흘 동안 집을 비우게 되었는데, 사정이 있어 올 수 없다던 할머니들이 모두 함께 들이닥쳤습니다. 이들 할머니들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소년을 참견하죠. 소년은 자신의 발명품, 소원을 들어주는 기계를 돌려 자신의 소원을 이뤄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네 명이나 되는 할머니들 등쌀에 소년은 무사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소년이 만든 소원을 들어주는 기계는 정말 작동하는 걸까요? 만약 그 기계가 실제 작동하게 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판타지 동화 네 명의 할머니는 다소 잔잔한 느낌이 듭니다. 어쩌면 자극적인 내용전개나 흥미진진한 전개를 기대한 친구들에게는 다소 실망이 들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잔잔함 안에도 사실 살펴보면, 오싹하고, 살벌한 마법이 감춰져 있답니다. 마치 일상인 듯싶은 마법의 현장을 함께 누려볼 수 있는 동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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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반장 작은 스푼
송아주 지음, 이승연 그림 / 스푼북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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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평범하기만 하던 무진초등학교에 로봇이 등장합니다.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소년 동이를 돕기 위한 로봇입니다. 이름도 로봉이라 짓게 되고, 반 아이들은 로봉 사랑에 빠져듭니다. 로봉 때문에 그동안 외톨이던 동이 주변엔 언제나 친구들이 가득하게 되었고요.

 

동화 속 반 아이들은 시험점수가 낮은 친구들은 로봉에게 과외를 받게 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일부러 시험을 망치기도 합니다. 전교 꼴찌 반이 되어 버린 거죠. 그럼에도 아이들은 로봉과 함께 공부할 수 있어 행복해 한답니다.

 

그런 아이들의 행복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립니다. 로봉을 반장으로 뽑게 되면서부터랍니다. 로봉은 반장이 되자, 반장의 사명감이 지나쳐 아이들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 덕에 아이들의 성적은 쑥쑥 올랐지만,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로봉의 감시에 학교생활은 지쳐만 갑니다. 과연 이대로 끔찍한 학교생활을 계속 해야만 하는 걸까요?

 

송아주 작가의 신작 동화 로봇 반장에는 아이들을 돕는 로봇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로봇은 역시 감정이 없네요. 아이들을 돕는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꼼짝도 못하게 한답니다. 아이들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빡빡한 생활로 몰라갑니다. 이처럼 감정 없이 아이들을 돕는다는 생각만으로, 과도하게 아이들을 감시하고 힘들게 하는 상황이 아찔하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어쩌면 멀지 않은 때, 우리네 아이들이 겪게 될 상황을 미리 보는 것만 같아 경계하게도 됩니다. 어쩌면 어른들은 아이들의 공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동화 속 로봇 반장과 같은 역할을 로봇에게 맡길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어쩌면,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을 인간 로봇으로 몰아세우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를 말입니다. 자신의 생각대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그저 부모에 의해, 어른들에 의해 강요되는 프로그램 따라서만 행동해야 하는 인간로봇 말입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는 동화, 로봇 반장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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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세탁소 독깨비 (책콩 어린이) 57
김진 지음, 이창우 그림 / 책과콩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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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작가의 단편동화집 그림자 세탁소안엔 여섯 편의 단편 동화들이 실려 있습니다.

 

단편 동화는 스토리는 짧지만, 장편에 비해 더욱 그 메시지가 명확한 것이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 작가가 동화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려는 바를 또렷이 들을 수 있다는 점 말이에요. 이처럼 각자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들려주는 여섯 편의 동화가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동화집 제목이기도 한 첫 번째 이야기 그림자 세탁소,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인 ! 해피 봉순이 두 가지 이야기가 더욱 마음에 남았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그림자 세탁소는 자신의 마음과 반대로 움직일 때, 그림자는 혼란스러워져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경우가 있다고 하네요. 그렇게 해서 자꾸 그림자가 떨어져나가려 하고, 그 그림자를 꿰매 주는 친구의 모습 등을 재미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 아이는 왜 그리 자신의 마음과 달리 움직이는 걸까요? 그건, 부모님의 강요 때문이랍니다. 이미 아이들이 가야할 길을 미리 다 정해놓고, 부모님의 계획대로 움직여야만 하는 아이들.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삶만을 강요당한 채 행동해야만 하네요. 물론, 자기 마음대로 다 행동하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죠.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다가는 오히려 망가지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의지란 것은 전혀 무시당한 채 공부만을 위해 살아가야만 하는 아이들의 모습, 그래서 그림자마저 떨어져 나갈 그런 요즘 아이들의 모습에 먹먹해지네요.

  

  

! 해피 봉순은 자신의 개 해피를 둘러싼 모습을 통해, 아이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아이의 부모는 이혼을 결정하고 아이에게 둘 중 한 쪽을 선택할 것을 강요합니다. 어른들의 결정에 의해 이런 슬픈 현실에 내몰린 아이들. 그 아이의 모습이 마치 강아지에게 주인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오버랩 되는 동화입니다.

 

그러고 보니 두 이야기 모두 어른들의 결정이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 상황이네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미리 결정해놓는 부모가 아닌, 아이들이 멋진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부모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외에도 결혼문화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초딩 결혼식. 장애를 가진 누나를 바라보는 시선의 동화 누나의 껌딱지. 주변 사람들에 대해 좋은 점을 찾아가고 표현하는 일을 통해 펼쳐지는 아름다운 일상을 이야기하는 고맙습니다 편지. 그리고 뚱뚱한 외모로 인해 놀림을 받고,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생각에 당연하게도 다른 친구들의 우유를 먹어줘야만 하는 아이, 먹기 싫어도 먹길 강요당하는 아이의 심정을 그려내는 슈퍼 울트라 우유맨이 실려 있습니다.

 

단편동화의 특별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단편동화집 그림자 세탁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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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를 만나다 푸른도서관 82
유니게 지음 / 푸른책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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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게 작가의 청소년성장소설 그 애를 만나다를 통해, 아파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먼저 민정이란 아이를 만나게 된다. 민정은 아빠의 사업 실패로 언제나 돈은 무한정 있는 줄만 알던 부잣집 공주님에서 갑자기 재개발예정지인 낡은 집들이 옹기종이 모여 있는 골목에 있는 할머니 집에 신세를 지게 된다. 아빠는 어디에 있는지 연락도 되지 않는 상황. 명문대에 입학한 오빠는 군대에 있고, 역시 명문대에 입학한 언니는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친구와 함께 생활하고, 엄마는 매일 잠만 잔다. 이처럼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뒤흔들려 버린 상황에서의 민정의 아픔이 어떨지 쉬이 상상이 된다.

 

그런 민정은 그곳 죽은 거리에서 또 한 소녀를 만난다. 초등학생 조그마한 소녀인데, 삼류가수 생활을 하던 엄마가 멕시코 남자를 만나 결혼하며 멕시코로 건너가며 치매 걸린 할머니와 날마다 술만 마시는 할아버지 아래 맡겨진 아이다. 그 아이를 통해, 민정은 함께 지켜주며 돌봐주며 살아야만 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물론, 이것을 배우기엔 시행착오가 많지만 말이다.

 

민정은 그곳 죽은 거리에서 또 한 소년을 만난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민정은 당연히 미대에 진학하는 것이 자신의 길로 알고 고액 과외를 하는 화실까지 다니며 미대 진학을 위해 공부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림 그리는 것이 재미있지 않다. 그런 민정 앞에 나타난 소년은 그림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은하라는 소년이다. 은하의 그림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파격적 접근이기에 더욱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파격적 그림 안에는 은하만의 그림이 담겨져 있다. 은하의 그림을 접한 후 점점 자신에겐 재능이 없음을 알게 되고, 그림마저 포기하려 하는데, 과연 민정은 그림을 포기하는 것이 정답일까?

 

민정이 죽은 거리에서 만나는 건 이들 소녀와 소년만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엄마의 과거를 만나게 된다. 자녀들을 명문대에 입학시키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알고 살아가는 엄마. 하지만, 엄마가 그렇게 속물엄마의 모습으로 명문대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민정은 그 상처 입은 소녀 시절의 엄마 역시 만나게 되고, 그로 인해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이젠 가난을 벗 삼아 살아가야만 하는, 결코 정 붙일 수 없을 것만 같은 골목길, 허름한 집, 그곳에서의 할머니와의 생활, 하지만, 그곳은 결코 삶의 밑바닥만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삶의 밑바닥이기에 그전에 알지 못했던 또 다른 것들을 만나기도 하고, 새로운 자신을 만나기도 한다. 민정이 만나게 되는 또 다른 그 애는 바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자신이다. 그리고 이제 고통이 허락해준 선물처럼 그 시절의 그 애로 돌아가려 한다. 더욱 건강한 방식으로.

 

이 땅의 수많은 민정들에게 숨죽인 응원과 격려를 보내게 되는 청소년성장소설, 그 애를 만나다는 먹먹하고 안타깝고 아픔이 있는 상황이지만, 도리어 그 가운데서 피어나는 희망과 설렘을 품게 만드는 예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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