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의 날개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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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도서출판 재인에서 번역 출간된 기린의 날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몇 되지 않는 캐릭터가 이어지는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가가 형사 시리즈> 8번째 책으로 2011년 작품이다.

 

도쿄 한 복판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칼에 찔린 피해자는 사건이 벌어진 장소에서 제법 떨어진 니혼바시 다리의 기린상까지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는 것도 아니다. 피해자는 파출소 앞도 그냥 지나쳤으니 말이다. 얼마 후 용의자가 검거된다. 하지만, 용의자는 경찰의 불심검문에 도망치다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의 상태. 과연 용의자는 진짜 범인인 걸까?

 

이 사건을 가가 형사와 사촌동생 마쓰미야 형사가 함께 해결해 나간다(실제로는 가가 형사가 해결해 나가지만 말이다.). 사건을 추적하는 가운데 드는 의심은 과연 범인이 누구일까 라는 것만이 아니다(끝까지 소설은 범인이 누구일지 궁금함을 품게 한다.). 무엇보다 피해자는 왜 굳이 날개달린 기린상까지 가야만 했을까 라는 점이다.

 

소설 기린의 날개는 역시 어느덧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자리매김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게 세상을 향해 들려줄 외침과 메시지가 담겨 있다. 아울러 그 안에 커다란 울림까지.

 

먼저, 소설의 제목을 생각해본다. 제목이 기린의 날개. 여기 기린은 목이 긴 동물, 아프리카의 기린이 아닌 동양 전설 속 기린이다. 주로 중국의 전설을 이야기하지만, 우리 전설이기도 하다. 단군이 기린을 타고 다녔다고 말하기도 한다.

 

봉황이 봉은 수컷, 황은 암컷을 가리키듯, 기린 역시 기는 수컷, 린은 암컷을 가리킨다. 기린은 몸은 큰 사슴에 용의 머리, 소의 꼬리를 가진 전설상의 동물이다. 전설 속 기린은 날개가 없다. 날개가 없어도 날 수 있는 전설의 동물이다. 마치, 용이 날개가 없이 날 수 있는 것과 같다. 물론, 서양의 드래곤은 날개가 있지만. 어쩌면, 용이 드래곤으로 둔갑해 날개가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처럼, 니혼바시 다리의 기린 상에 날개가 생긴 것은 아닐까?

 

아무튼 이런 기린에 부여된 의미는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바람이 담겨 있으며, 물의 성질을 갖고 있고, 아들의 잉태와 출산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고 한다. 사실, 이런 내용이 소설 속에서 드러나진 않지만, 소설 속에서 신사에서의 기도하는 내용과 일치하기도 한다. 출산과 물이란 의미로 말이다.

 

소설 속 기린상이 갖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니혼바시 다리의 기린상은 살인사건의 용의자인 후유키와 동거녀 가오리, 이 둘이 도쿄에 처음 도착한 장소로서 그들에겐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는 곳이다. 아울러, 그곳에 실제 도로 원점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새 출발의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 말 가운데, ‘기린아란 말이 있다. 재주가 남달리 뛰어나고 총명해 촉망받는 젊은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바로 여기 전설의 동물 기린에서 유래한 말이다. 원래 없던 기린에게 날개를 단 니혼바시 다리의 기린상이 꿈꾸는 것은 바로 이것일 게다. 우리의 자녀가 그리고 우리가 이 땅의 기린아가 되어 훨훨 날아오르길 꿈꾸는 것 말이다.

 

후유키와 가오리 역시 그랬다. 하지만, 그들은 그럴 수 없었다. 이미 이 세상은 청년들이 살아가기 힘겨운 시대가 되어버렸기에. 청년 일자리 문제는 일본도 우리 한국도 이미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어 버렸다. 여기 작가가 들려주는 가오리의 고백을 들어보자.

 

가오리도 새삼스러운 눈길로 기린 조각상을 올려다보았다. 그 당시 꿈에 부풀었던 자신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시골을 떠나 히치하이크로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그곳이 골인 지점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여기서부터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가슴 한 가득 꿈을 품고 있었다. 자신들에게는 날개가 있다고, 빛나는 미래로 날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결국 날지 못했다.(277)

 

어쩜,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바로 이 기린의 날개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빛나는 미래를 꿈꾸며 다시 날아보려는 몸부림, 그 용기가. 지금까지의 힘겨움과 지난함을 뒤로 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말이다. “그러나 결국 날지 못했다.”가 아닌, “그들은 결국 날아올랐다.”란 결말이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서 써질 수 있다면 좋겠다.

 

또 하나 기린의 날개가 갖는 의미는 피해자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마지막 음성이다. 그 음성을 들려주기 위해 칼에 찔려 죽어가면서도 기린의 날개를 향해 힘겹게 걸어갔던 것이다. 아버지에게는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보다 아들이 다시 시작하길 바랐다. 아버지는 아무도 모르는 아들의 과오, 아들의 고민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비틀거리며 기린상까지 갔던 것이다. 자신의 아들이 진정한 기린아가 되길 꿈꾸며. 이를 위해선 과오를 감추고, 덮으려 해선 안 된다. 진정한 새 출발을 위해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진심어린 사죄를 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게다(‘기린의 날개가 아들에게 어떻게 이런 의미, 이런 메시지가 되는지는 소설을 읽어보자.).

 

요즘 우린 이런 원점으로 돌아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동안 자신들이 쌓아놓았던 아성이 아무리 견고하고 높다 하지라도, 그걸 죄악의 재료로 쌓았다면 다시 허물어야 할 용기가 요구되어진다. 잘못을 범했을 때는 즉각 수정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있길 바란다. 지금 우린 그 용기를 요구한다. 도망치고, 발뺌하고, 변명하고, 감추려는 노력,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덮으려는 그런 또 다른 죄가 아닌.

 

소설을 통해, 또 하나 생각하게 되는 건 가족 간의 무관심이다. 가장이 죽었는데, 가족 가운데 아무도 가장의 삶에 대해 알지 못한다. 회사에서 무엇을 하는지. 요즘 어떤 고민이 있으며, 어떤 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가장은 그저 가정을 이끌어가는 수입원에 불과했던 것이다. 오늘 많은 가정의 씁쓸한 자화상이 아닐까? 가장 역시 관심이 필요하다. 책임감만이 아니라 가족에게 기대고 싶어 한다. 진정 서로를 보듬어 안고, 기댈 수 있는 공간 그러한 가정을 꿈꿔본다. 어쩌면, 이것 역시 소설이 말하는 기린의 날개가 아닐까? 전설 속 동물 기린에는 우리의 삶을 지켜주고 평화를 허락하는 힘이 있다고 여겼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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