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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깎는 소년 ㅣ 파란자전거 역사동화 5
장은영 지음, 박지윤 그림 / 파란자전거 / 2018년 1월
평점 :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조선시대에도 책을 찍어내서 만들었다고 해요. 왠지 당시에는 필사하여 책을 엮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책을 찍어내서 사람들에게 판매했다고 하니 신기했답니다. 그 이야기를 장은영 작가의 신작 장편동화 『책 깎는 소년』을 통해 만나게 되었답니다.
이야기를 새긴 목각판을 종이에 찍어 책으로 만들어 판매했던 이야기를 동화는 들려줍니다. 이런 책들 가운데 전주에서 만들던 목각판을 완판본이라고 부른대요. 전주의 완판본 가운데 ‘서계서포’에서 만든 <열녀춘향수절가>는 스토리와 소리를 함께 담아낸 조선의 대표적 베스트셀러였대요. 요즘으로 말하면, 베스트셀러 책을 출간한 출판사인 셈이죠.
동화는 바로 그 완판본을 만든 소년의 꿈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어요. 봉운이란 아이 이야기랍니다. 봉운에게 가난은 너무나도 익숙하답니다. 흔히 자녀가 부모의 골칫거리인 경우는 많지만, 봉운의 집은 아빠가 아들의 골칫거리랍니다. 노름을 좋아하고, 힘들게 저축한 돈을 귀신처럼 찾아 내빼는, 가정은 나 몰라라 하는 아빠. 여기에 아픈 엄마와 어린 여동생. 봉운의 가정은 시들어가기만 갑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지긋지긋한 가난이지만, 그 가운데서 봉운은 한 가닥 꿈을 품게 됩니다. 바로 각수가 되는 꿈을 말입니다. 책방에 일자리를 얻게 되고, 일을 하는 가운데 각수가 되어 목각판을 새기는 날을 꿈꾸는 봉운. 하지만 꿈을 이루는 길은 멀기만 합니다. 과연 여러 갈등과 위기의 순간을 통과하여 자신의 꿈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요?

500여 년 전 책을 만드는 이야기라는 소재가 흥미로웠답니다. 당시에도 책을 만드는 이들, 그 책을 손꼽아 기다리던 독자들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이야기의 장소가 전주라는 점도 개인적으론 반가웠답니다. 지금의 남부시장 근처가 동화의 실제 배경이라는데, 저 역시 전주에서 10년가량을 살았답니다. 남부시장과 멀지 않은 곳에서 말입니다. 우리 부부의 예쁜 딸이 태어난 곳이 바로 동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와는 전주천을 사이에 둔 가까운 곳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답니다.
딸아이도 자신이 태어나 아기 때 살던 곳과 동화 속 장소가 바로 옆이라는 말에 신기해하며 동화에 애착을 느끼더라고요.

동화를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일을 해도 어떤 마음, 어떤 목적을 품고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일이 된다는 것을 말이에요. 동화 속 주인공 봉운과 또래아이 장호는 모두 ‘서계서포’에서 일하던 아이들로 둘 다 ‘책을 깎는 소년’이 되길 꿈꾸거든요. 하지만, 둘의 꿈은 같은 꿈이면서, 전혀 다른 꿈이랍니다. 장호에게 책판은 돈을 벌어주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반면 주인공 봉운에게는 독자가 좋아하고 가슴 속에 오랫동안 품게 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책판입니다. 그러니 봉운이 책판을 깎아나가는 순간은 독자들이 행복해할 행복을 깎는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책을 통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고, 그 가슴에 오래 남을 이야기를 깎아내려는 봉운의 모습, 그런 모습으로 만들고 깎아낸 책이기에 당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아울러 과연 오늘 나는 어떤 자세로 내가 하는 일 앞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기도 했고요.
또한 동화는 가난하지만 그 가난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일으켜 세워나가는 아이의 이야기이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어린이 독자들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힘을 갖고 있다 생각했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봉운처럼 단단하게 성장하면 좋겠다는 바람, 봉운처럼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꿈을 가슴 한 자락에 품고, 그 꿈을 한 조각 한 조각 정성껏 새겨나가는 인생이 되길 말입니다.
아무래도 봄방학 때 전주를 한 번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나무판에 꿈을 새기던 봉운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우리 딸아이도 그런 나무판 하나 가슴에 품길 바라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