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살아남았지 -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선집 에프 클래식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옥용 옮김 / F(에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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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정권에 의해 모든 저서가 불태워졌다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집을 만났다. , 살아남았지란 제목의 시선집이다. 이 시집에는 그의 초창기 작품부터 시작하여, 중기, 후기의 모든 작품들이 망라되어 있다.

 

무엇보다 나치 정권에 의해 그가 집필한 모든 책들이 불태워졌다니, 어떤 내용이기에 그럴까 하는 궁금증이 먼저 생겼다. 시인의 시는 어렵지 않다. 어떤 시들은 마치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은 느낌도 갖게 한다. 솔직히 어떤 시는 이거, 시라고 말해도 돼?’싶을 정도로 쉬운 것들도 있다(어려워야 시인 줄 아는 시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다.). 그 이유를 시집 뒤편에 실린 역자 해설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시인은 자신의 책상에서 보이는 창가에 언제나 조그만 나무 당나귀를 올려놓았다고 한다. 그 당나귀의 목에는 나도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문학은 특정층만의 고유물이 아닌 문학 작품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게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자 시인(극작가로 더욱 유명하지만, 시집을 만났으니 시인이라 부르자.)이 더욱 멋져 보인다.

 

시인의 시를 접하며, 지성인이 역사 앞에 어떤 자세로 서야 하는지를 생각해본다. 우리민족 역시 수많은 질고의 역사를 겪으며, 소위 지성인이라는 문학인들이 일제에 동조하는 글을 쓰고, 독제 정권을 찬양하는 글을 쓰는 과오를 범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끝내 역사 앞에 바로 선 지성인의 모습을 지켜낸 이들 역시 많지만 말이다. 시인은 끝내 참된 지성인의 모습으로 역사 앞에 바로 섰던 이다. 그런 이였기에 그의 시는 더욱 힘이 있지 않나 싶다.

 

가장 훌륭한 작가 중 하나인 어떤 추방된 작가는

태워 버린 책들의 목록을 살펴보다가

자신의 책들이 누락된 사실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불같이 화가 난 그는 후닥닥 책상으로 달려가 권력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제 것도 불태우세요! 그는 단숨에 써내려갔다. 제 것도 태워요!

그렇게 해 주세요! 제 것들을 남겨 놓지 마세요!

< 분서(焚書) > 일부

 

나치 정권에서 홍보되어지고 찬양받는 시란 무엇일까? 우리 역사 가운데 독재정권에서 인정받고 승승장구했던 시를 우린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분서 목록에 자신의 책이 누락된 사실을 알고 화들짝 놀랄 만한 깨어있는 양심과 지성을 가진 시인이 과연 지금 얼마나 있을까?

 

시인의 시들은 많은 경우 어둡고 암울하며, 때론 허무적이기도 하고, 때론 자학적인 느낌을 갖게도 한다. 때론 비판적이고, 때론 풍자적이기도 하다. 이런 어두운 느낌은 시인이 살아낸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되지 않을까 싶다. 어두운 시대에 거짓 희망, 거짓 밝음만을 양산해 내지 않은 시인의 선택이 또한 멋스럽다.

 

많은 독자들에게 존경받던 한 시인의 몰락을 지켜보며 실망과 분노를 느껴야 하는 현 시점이기에 더욱 베르톨트 브레히트 이 시인의 시들이 힘이 있게 느껴진다.

 

좋은 시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 <어린이 십자군> 이란 시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전쟁으로 인해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영원한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들, 전쟁은 결국 이들만을 남겨 놓는다. 그리고 그들은 점점 하나로 뭉쳐 자신들만의 세상을 찾아 길을 떠난다. 이들에겐 민족의 장벽, 사상의 장벽, 종교의 장벽도 없다. 나치당원의 아들과 유대인의 아들이 함께 어우러져 길을 걷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자신들의 가정과 삶, 그리고 미래를 파괴해버린 전쟁이란 괴물을 떠나 평화로운 세상을 찾아 떠난다. 이들에겐 여전히 그 평화로운 세상, 이상적 공간은 멀기만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끝내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희망을 품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는 그 여정 자체가 이미 이상적인 상태가 아닐까? 극한 결핍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 가장 부끄러운 역사 중 하나인 십자군 전쟁에서의 어린이 십자군을 풍자한 이들의 걸음이야말로 진정한 새 하늘 새 땅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 걸음이야말로 시인이 역사 앞에 바라는 소망이었으리라 생각하자 어쩐지 가슴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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