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마릴린과 두 남자 세트 - 전3권
전경일 지음 / 다빈치북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전경일 작가의 작품을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만나게 되었다. 전작인 조선남자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를 마릴린과 두 남자란 작품으로 만나게 되어 반갑니다. 이번 작품은 또 어떤 기쁨과 깨달음을 선물해줄까 하는 설렘을 안고 책을 펼쳐든다.

 

이번 소설 마릴린과 두 남자는 전3권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그 방대한 분량이 가히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1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에 빼곡한 글씨. 어지간한 독자들의 기를 누르기에 충분한 분량이다.

 

제목이 마릴린과 두 남자. 그렇다. 여기 마릴린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기적 배우 마릴린 먼로를 가리킨다. 이 작품은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어떻게 마릴린과 연결이 된다는 걸까? 소설을 읽어보면 마릴린에 대해서도 또 다른 시각을 갖게 된다. 다시 돌아가 소설은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우리 민족 최대의 아픔인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 이 전쟁을 한국인이 아닌 서양인의 눈으로 바라보며 접근한다. 그것도 가급적 객관적 시선을 지켜내려 애썼던 주인공의 눈을 통해, 작가는 한국전쟁과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향해 조금씩 접근해 나간다.

 

주인공 는 하워드라는 이름의 90세 전직 종군기자다. 2차 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 모두 종군기자로 참전한 특별한 이력을 가진 하워드는 90세 나이에 이르러 자신이 함께 했던 전쟁에 대해, 그리고 당시 과거에 대해 회상하는 방식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지금의 와 전쟁 당시의 가 무차별적으로 반복되며 회상이 소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현재의 는 국가기관의 요청에 의해 한국으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서 발견된 유해가 칼 마이어스(‘의 친구로 와는 여러 가지로 얽힌 사람. ‘의 아내, 마릴린 등으로. 그리고 한국전쟁에 함께 종군기자로 참전했다.)임을 증명하기 위해 한국으로 향하는 하워드. 과연 그곳에서 하워드는 어떤 진실을 만나게 될까(이 진실은 끝까지 가봐야 안다.)? 아울러 노령임에도 한국행을 결심한 하워드는 그곳에서 무엇을 증명하려는 걸까?

 

소설은 전쟁에 대해 말한다. 방대한 분량만큼 지난하리만큼 전쟁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접근하며, 전쟁이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솔직히 소설은 쉽게 몰입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분량도 만만찮은데, 두드리고 또 두드리고 또 두르는 식으로 거듭거듭 곱씹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다. 그래 쉬이 지루해질 수 있는 단점이 있는데, 읽다보면 이상하리만치 소설 속에 몰입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책표지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미국이 가장 불편해 할 소설 1!”란 문구가 말이다. 그렇다. 소설의 내용은 분명 미국이 불편해할 내용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특히, 전쟁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하지만, 미국뿐일까? 어쩜 이 땅에 살고 있는 한국인 가운데도 불편한 사람들이 많을 게다. 특히, 전쟁에 대한 끔찍함을 경험하여 치를 떨면서도 묘한 그리움을 품고 있는 세대들에게는 말이다. 맥아더 장군을 아무개(?)와 함께 우상시 하며, 우리 민족의 양대 구원자로 여기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럴게다.

 

소설은 전쟁에 대해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한다. 전쟁의 목적이 무엇인지. 전쟁의 발발, 출발을 떠나 전쟁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말이다. 무엇보다 전쟁을 원한 이들이 누구인지. 전쟁을 통해 각자 자신의 탐욕을 좇았던 수많은 이들의 민낯을 드러낸다. 특히, 한국전쟁을 반겼을 수많은 이들에 대해, 한국전쟁이 일어나길 희망하며, 전쟁에로 역사를 몰아간 이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목적한 바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그들의 탐욕에 장기말이 된 수많은 이들은 누구인지. 그 장기말들은 또 어떤 피해를 겪었으며, 또 어떤 폭력의 가해자가 되어갔는지를 소설은 조곤조곤 접근한다.

 

소설은 전쟁에 대해, 특히, 한국전쟁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어쩌면 인간의 민낯이 어떤 모습인지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쟁의 악마성에 대해, 전쟁의 부조리에 대해, 그리고 그 전쟁 앞에 선 이들의 부끄러운 양심과 모습에 대해,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소설은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런 전쟁 뒤에 도사린 국가라는 존재에 대해 특히, 국가 권력, 국가 기관, 국가주의에 대해서 소설은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그 안의, 또는 그 뒤의 인간들에 대해. 그래서 결국은 인간에 대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역시 작가의 통찰력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쟁에 대한 통찰력은 말할 것도 없고, 국익과 국가의 폭력성에 대해서도 그렇다. 삶에 대한 통찰력 깊은 문구 역시 소설 곳곳에서 많이 만나게 된다. 죽음에 대한, 나이 듦에 대한 통찰력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며 깊이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소설을 덮으며, 문득 내 나이에 대해 생각해본다. 20이란 숫자가 나의 것이 되었을 땐, 설렘이 가득했다. 30이란 숫자 앞에서도 나의 경우 설렘과 기대가 더 컸다. 40이란 숫자는 빠른 삶 가운데 무덤덤하게 지나갔고, 그런데, 이제 곧 채워질 50이란 숫자는 이전의 어느 숫자보다 크게 느껴진다. 어쩐지 이제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적으리라는 생각에 조급함도 느껴지고, 왠지 이 숫자가 날 누르는 기분 역시 없지 않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며 개인적인 구원을 맛본다. 90이 넘은 주인공의 말, “살아 있을 때 하는 모든 것은 의미 있다는 말이 말이다. 어쩐지 짐을 내려놓고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그래, 오늘도, 그리고 내일의 하루도 나에겐 의미 있는 삶이다. 살아있음을 향해 묵묵히 발을 내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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