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 사랑아 - 나태주 용혜원 이정하 시인의 시와 짧은 글
나태주.용혜원.이정하 지음 / 미래타임즈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흔히 요즘을 시가 사라진 시대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오히려 더 많은 시가 양산되고 넘쳐나는 시대는 아닐까? 누구든 자작시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고, sns를 통해 타인에게 쉽게 오픈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누구나 시인이 되어버린 시대임에도, 왜 시가 사라졌다는 말을 할까? 아니 정확히는 시가 외면 받는 시대, 시집이 팔리지 않는 시대라고 말해야 정확하지 않을까? 그럼, 왜 시집이 팔리지 않을까? 대학 시절, 문학청년을 꿈꾸지 않는다 할지라도 시집 한 권쯤 책가방에 넣고 다니던 우리가 어쩌다 시집 한권 사는 것마저 망설이게 되었을까?

 

그건, 시인들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지 않을까? 시란 시인의 손을 떠나 독자에게 가면 독자의 것이 되어 마땅하건만 독자는 당초 무슨 말을 하는 지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와 다름없는 시어 때문은 아닐까? 그런 시를 접할 때마다 과연 시인은 자신이 쓴 시를 이해하긴 할까? 하는 궁금증이 들 때도 있다(물론, 나의 무지 역시 탓하게 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너무 가벼워진 시 역시 시를 외면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의 공감을 이끌어내긴 하지만, 어쩐지 시인의 삶의 무게나 진실, 삶의 고민이나 시대적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 가벼움이 가득한 시가 각광받는 것 역시 좋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리 풍요로운 시대라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의 영혼은 궁핍하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로. 그렇다면, 여전히 시가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우리의 영혼을 위로해줄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과연 시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시에 대한 정의는 정의를 내린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하다. 그뿐 아니라 내가 시의 정의를 내릴 수준도 아니다. 그럼, 질문을 바꿔본다. 좋은 시란 무엇인가? 잠깐, 이것 역시 내가 정의 내릴 게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시란 무엇인가? 이 질문이면 적당하겠다. 내가 좋아하는 시란 무엇일까?

 

그건, 운율 속에 담긴 절제된 언어를 통해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정신을 깨어나게 하는 시어들이다. 무엇보다 시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어야 좋다. 무슨 소리인지 당초 알 수 없는, 그래서 전공하지 않은 다른 분야의 박사학위 논문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는 수수께끼 암호문은 사양한다. 쉽고 가벼운 듯싶지만 그 안에 시인의 삶의 자리의 무게가 담겨 있고, 시인의 정신과 시인의 진실의 무게가 녹아 있는 언어. 그러면서도 때론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주며, 때론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들고, 삶을 꾸짖는 힘도 있는 언어라면 좋겠다.

 

서두가 길어졌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 사랑아는 좋아할 수밖에 없고, 좋은 시집이라 꼽을 수밖에 없는 시집이다. 이 시집은 나태주, 용혜원, 이정하, 이렇게 세 시인의 합작품이다. 시인의 이름만 들어도, 이 시대의 대표적 감성시인들을 모아놨구나 싶다. 그런 시인들이 자신의 시 가운데 선별한 시가 시집에 담겨 있다. 그러니, 시집 속의 시들은 하나같이 마음을 만져준다. 시집 속의 시를 자그맣게 읊조릴 때, 그 소리는 그저 소멸되어 버리지 않고 내 가슴과 정신을 살며시 만져준다.

 

시인들이 직접 선별한 시뿐 아니라, 이 시집의 또 하나의 장점은 시인이 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를 쓰게 된 동기나 배경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자신의 손을 떠났던 시가 독자들을 통해 어떻게 재탄생되었는지를 말하기도 한다. 또는 시 내용과 연관되는 짧은 에세이 글이 함께 하기도 한다.

 

이처럼 시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은 이 시집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시를 만나는 시간 마음이 맑아지고, 말랑말랑해지며, 뜨거워진다. 때론 결단의 시간을 갖게도 되고. 언제나 곁에 두고 싶은 좋은 시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