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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비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정미경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9월
평점 :
정미경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큰비』는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이다. 무엇보다 세계문학상 우수상이란 타이틀이 이 책에 대해 관심을 갖게 했다(역시 문학상 타이틀은 강렬한 유혹이다.). 게다가 내용이 조선 숙종 시대에 새로운 세계를 열길 대망하던 무녀들의 항거, 그리고 미륵 대망 사상을 담고 있다 하여 재미나겠단 생각에 소설을 집어 들었다.
소설은 다소 지루하다. 소설은 어렵지 않은데, 내 경우에는 다소 가독성이 떨어졌다. 물론, 이는 모두 철저하게 나의 주관적 판단임을 밝힌다.
소설을 읽으며 많은 시간 예수를 떠올려봤다. 미륵을 기다리는 자들, 새로운 세상을 열려는 무녀들의 항거를 보며 예수라니 말할 수 있겠지만, 기독교인인 나로선 그랬다. 사실 미륵사상 자체가 재림예수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아울러 2천 년 전 예수를 통해 갈망했던 민중들의 소망 역시 새로운 세상이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세상, 억압과 착취로부터 해방되어지는 세상, 모두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세상 말이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소설 속 누군가는 그저 양반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그 자리에 앉길 원했으며. 또 누군가는 새로운 세상보다는 미륵을 통해 얻게 될 세상에서 자신들이 얻게 될 권좌에 관심이 있었다. 마치 예수가 십자가를 향해 힘겹게 걸어가던 그 길 위에서 서로 자신이 더 높은 자리에 앉겠노라 다투었던 제자들처럼 말이다.
또한 소설 속에서 누군가는 ‘미륵’을 빌미로 군중들의 마음을 얻어, 칼로 혁명을 완수 할 수 있으리라 믿고 행동하려 한다. 2천 년 전 유대 땅의 열심당원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이처럼 어쩔 수 없이 소설을 읽으며 미륵과 함께 예수를 떠올려 본다.
종교가 무엇인지를 떠나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은 와야만 한다. 신분의 차이로 인해 착취당하는 억울함이 없는 세상이 말이다.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힘과 능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아성을 자손대대로 대물림하며 남들 위에 군림하려는 그런 모습이 없는 세상 말이다. 하지만,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양반이 상놈을 짓누르는 시대다. 남성이 여성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시대다. 그랬기에 사람들은 미륵을 대망한다.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 ‘큰비’를 기대한다.
작가는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의 편집장을 지낸 이력이 있다. 그래서 일까. 소설 속에선 여성들의 한 서린 생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 특히, 설 자리 없었던 무녀들의 기막힌 생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그 무녀들이 일어선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하지만, 새로운 세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건 그들이 기대하던 ‘큰비’가 오지 않아서가 아니다. 어쩌면 함께 행동하지만, 서로 꿈꾸던 세상이 달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꿈을 꾸는 자들이 함께 이룰 세상은 다른 세상일 수밖에 없기에.
무녀들이 꿈꾸는 세상은?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민중들, 언제나 착취당하고 이용당하기만 하는 힘없는 민중들, 그들이 손 내밀 때 그 손을 잡아주며 그들을 위로하고 세워주는 것이 무녀들이 꿈꾸는 세상이자, 그들의 존재 목적이기도 하다. 이것이 결국 기독교가 말하는 샬롬이다. 그렇기에 소설 속 큰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기대할 수밖에 없다. 세상을 뒤집을 큰비, 약자들을 향해 내미는 따스한 손길로 가득 뒤덮일 큰비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