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복음 현대시 기획선 5
김은상 지음 / 한국문연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시집의 제목이 유다복음이다. 기독교인의 눈으로 본다면 다소 불경스럽다. 과연 어떤 노래를 들려줄까?

 

시집은 어렵다. 아니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나에게 어려웠다. 어느 시집처럼 시인의 암호문으로 가득하여 어렵다기보다는 시인의 정서를 오롯이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집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둡다. 암울함, 우울, 슬픔, 막막함, 염세적, 그리고 불온(? 기독교인의 입장에선 이 단어가 가장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등의 단어로 시집의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겠다. 이는 시인의 삶의 자리가 그랬기 때문이다. 가난이 그의 첫 번째 신이었다는 해설을 읽고, 그랬구나 싶다.

 

삶의 버거움이 오롯이 시들에 가득하다. 단지, 버거움이 전부인 듯 느껴져 개인적으로는 힘겨웠다. 그래서 어려웠다. 물론, “구석에서 꽃처럼 앉아 울어본 사람은 안다.// 희망이나 행복, 사랑 같은 말들이 얼마나 연약하게 화들짝 지는지를.//”(<추문> 일부) 라는 시인의 시구처럼, 희망, 행복, 사랑 이란 단어들이 어떻게 거짓 사용되어지고 악용되어져 왔는지를 우린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실한 희망, 행복, 사랑 이란 단어의 접근 역시 필요함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조금은 시인의 시들이 가슴을 무겁게만 하여 힘겨웠다.

 

시인의 시를 접하며, 시인은 성경에 상당한 조예가 있음을 느꼈다. 혹시?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아니나 다를까, 해설을 읽으며, 시인이 신학을 공부했음을 알게 되었다. 신학을 공부한 만큼 시인은 성경에 능통하다. 이런 능통함은 성경의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 냈다. 이는 후반부에 실린 긴 분량의 <유다복음>에서 두드러진다.

 

물론, 이 부분이야말로 어쩌면 독실한 기독교인들에게는 불편한 부분이며, 불온한 세력으로 느껴질 게다. 나 역시 조금은 불편함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유다에 대한 희생적 접근은 상당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단순히 예수의 십자가 완성을 위해 유다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접근에 그치지 않기에 더욱 그랬다. 이런 접근의 맹점은 유다의 탐욕적 배신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십자가 완성을 위해 누군가 유다가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탐욕에 넘어져 스스로 그 역할을 감당한 유다에게 돌아갈 돌팔매는 정당하기에.

 

하지만, 시인은 단순히 십자가 완성을 위한 유다의 역할이 아닌, 예수의 십자가 완성을 위해 스스로를 배신자의 낙인에 기꺼이 내어놓은 희생이라 해석한 점은 상당히 흥미로운 해석이었다(물론, 이 역시 누군가에겐 불온함의 극치일 수 있겠지만.).

 

아무튼 불경스럽다는 접근만 하진 말자. 복음이 변주의 대상, 풍자와 해학의 대상이 되고 있다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먼저 생각하자. 이미 힘을 잃어버린 종교, 아니 힘은 더 많이 가졌지만, 본질을 상실한 종교의 모습, 알맹이는 사라지고 겉껍질만 화려한 종교의 모습, 정권과 자본주의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종교를 발견하고, 반성하는 것이 먼저 되어야 할 테니 말이다.

 

아무튼 시인의 다음 시집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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