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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남극 탐험기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7월
평점 :
김근우 작가는 장르소설 『바람의 마도사』시리즈로 독자층이 탄탄한 작가다. 제법 오랫동안 장르소설을 썼던 작가가 흔히 말하는 순수문학으로 멋지게 새로운 옷을 입고 등장한 것은 바로 2015년 세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통해서다. 그 후, 청소년소설인 『우수고 스트레스 클리닉』을 발표한 후, 거의 일 년 만에 새로운 소설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이번 소설은 『우리의 남극 탐험기』란 제목의 장편소설이다.
작가 특유의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물론 주인공이 처한 상황 자체는 어쩌면 그리 유쾌하지 않을 수 있지만 말이다. 독자는 재미나게 소설 속으로 몰입하게 된다.
주인공 ‘나’는 중3 시절까지 야구선수를 했다. 잘 알 듯 운동을 한다는 것은 운동을 위해 공부를 포기해야만 한다는 것과 같다(물론 운동선수 전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현실은 공부를 포기하게 만든다.). 그런 ‘나’는 고등학생이 되며 야구를 그만 뒀고, 백지 상태에서 공부를 시작하여, 지방 3류 대학에 간신히 입학했을 뿐이다. 이곳에서, ‘나’는 그의 운명을 결정지을 한 사람을 만난다. 바로 강지진이란 교수인데, 그 대학의 이사장 아내의 아들이다. 대학 이사장을 새아버지로 둔 빵빵한 배경을 가진 강지진은 국문과 교수이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 소설가다. 그리고 강지진의 조카딸을 만나게 되는데, 미모와 빵빵한 배경을 가진 조카딸은 ‘나’의 첫 사랑이 된다. 이 둘을 통해, ‘나’는 훗날 소설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중요한 캐릭터 가운데 또 한 사람은 바로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이란 사람이다. 이 사람은 그 유명한 탐험가 섀클턴과 이름이 똑같은 경제학자이다. 어려서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이자, 영국의 귀족 가문의 아들로 천재 경제학자라 불리게 된 섀클턴 박사.
소설은 ‘나’와 섀클턴 박사의 이야기들이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둘이 만나 탐험가 섀클턴이 못내 이룬 남극횡단 모험을 하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니, 소설의 분위기는 둘이 남극횡단을 하게 되는 것을 기점으로 둘로 나뉠 수 있다. 솔직히 재미있기는 전반부가 재미나다. 작가 특유의 유머를 잘 만날 수 있으며, 흥미진진 사건이 진행되니 말이다.
그리고 후반부의 남극 탐험 부분은 두 명의 주인공이 남극에서 겪는 일들과 함께 과거 남극 횡단을 꿈꾸다 위대한 실패를 했던 탐험가 섀클턴의 이야기들이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이 부분은 섀클턴의 이야기들을 잘 모르는 독자들이라면 흥미진진 읽을 수 있지만, 섀클턴의 이야기를 잘 아는 독자들이라면 어쩌면 섀클턴의 이야기부분은 지루할 수도 있겠다.
이 후반부는 어쩐지 작가의 첫 순수문학작품인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에서의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두 소설은 다르다. 하지만, 독특한 분위기가 유사하게 느껴지는데, 예를 든다면, ‘나’와 섀클턴 박사가 남극 탐험을 하며 만나게 되는 북극곰과 펭귄이 그렇다. 남극에서 북극곰을 만나게 되고, 그 북극곰은 멀쩡히 말을 하며, ‘나’와 섀클턴 박사를 도와 남극 횡단을 강행하게 된다. 게다가 펭귄들 역시 말을 하며, 하늘을 난다. 하늘을 나는 펭귄이라니. 이런 부분들이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떠올리게 한다(작가의 전작인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에 등장하는 오리가 진짜 고양이를 잡아먹었던지 아니면 고양이의 주인 할아버지의 주장에 그쳤는지에 대해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왠지 그 소설을 읽을 당시의 느낌과 유사하다는 말이다.). 참, 주인공이 잊힌 무명작가라는 점도 전작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와 같은 설정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처럼 소설은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내용이다. 여기 ‘말도 안 되는 일’이야말로 소설 속에서 작가가 거듭 언급하는 내용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말이 되는 일만 일어나고, 일어나야만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런 세상이기 때문에 도리어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 아니 어쩌면, 이는 멀쩡한 세상처럼 보이지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세상을 향한 작가의 풍자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작가 스스로 바른 소리만 해야 되는 세상에서 헛소리를 지껄인다는 식으로 소설을 진행시킨다. 하지만, 이런 헛소리가 왠지 통쾌한 이유는 뭘까?
또한 소설 속에서 거듭 반복되는 질문과 내용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이길 수 있다면 싸울 필요도 없지만 이길 수 없다면 싸워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길 수 없기에, 즉 실패할 것이기에 오히려 싸우고, 도전한다는 식의 주장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 여기가 자기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를 의식한 사람은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헤매야 했습니다. 어쩌면 여기도 우리가 있을 곳은 아닌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헤매야 했습니다.”
“너는 실패할 것이기에 도전한다고 했다. 그것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실패를 받아들였다는 뜻이 아닌가.”
“실패와 포기는 다릅니다. 우리는 실패하러 온 거지 포기하러 온 게 아닙니다.”(243쪽)
이런 작가의 주장이 마음을 건든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린 수없이 실패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그 실패를 위해 여전히 싸운다는 것, 이것이 바로 주인공들이 남극에 간 이유이며, 작가가 소설을 통해 헛소리를 늘어놓는 이유다.
온통 말이 안 되는 일들이 가득 벌어지는 세상임에도 여전히 말이 되는 일들만 벌어지고 있다 착각하며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남극에서 헤매는 북극곰, 하늘을 나는 펭귄과 함께 남극 횡단 탐험을 하는 시각장애인 노인과 한물간 소설가 주인공 ‘나’의 돈키호테 같은 남극 횡단 도전이 마음을 휘어잡는다.
작가의 이름이 반가워 집어든 소설, 다음번에도 새로운 작품으로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