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아버지를 유괴했어요
안드레아스 슈타인회펠 지음, 넬레 팜탁 그림, 김희상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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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란 병이 무서운 가장 큰 이유는 기억이 사라진다는 점 때문일 겁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쌓았던 기억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대단히 슬픈 일입니다. 함께 슬퍼하던 시간도, 함께 즐거워하며 행복했던 추억도, 소소한 행복의 기억들이 이제 사라져버린다는 점이 슬픈 일이죠.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는데, 저희 어머니 역시 이상한 증상을 보이신 적이 있습니다. 당시로부터 5-6년가량의 기억이 순간적으로 사라진 겁니다. 그래서 5-6년 전의 상황으로 이야기를 하고, 곁에 있는 손녀도 못 알아보시는 겁니다(5-6년 전의 시점엔 손녀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순간 저희 가족이 얼마나 놀랐던지 모릅니다.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의료진 역시 정확하진 않지만, 뇌빈혈이란 다소 모호한 진단을 하시더라고요. 정밀검진 결과 치매는 아니라는 말에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릅니다. 지금껏 어머님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게 되지만, 감사하게도 아직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계신답니다.

 

함께 겪었던 기억을 잃는다는 건, 그 시간이 사라져버리고 무의미해져버리기에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치매가 무섭다고 하는 거겠죠.

 

여기 치매에 대한 동화가 있습니다. 안드레아스 슈타인회펠이란 독일 작가의 내가 할아버지를 유괴했어요란 동화입니다. ‘유괴란 단어가 다소 끔찍하게 느껴지지만, 설마 아니겠지? 하는 심정으로 동화책을 펼치게 됩니다. 동화 속 주인공 소년의 할아버지는 치매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화가 슬프거나 먹먹하겠구나 싶은데, 실상 동화는 그런 분위기만은 아닙니다. 도리어 따뜻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치매에 대한 동화임에도 밝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게 됩니다.

  

  

주인공인 막스는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할아버지를 탈출시키려는 계획을 품습니다. 왜냐하면, 막스는 요양원이야말로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언제나 굳게 닫힌 문 안에서 비밀번호도 모른 채 갇혀 있어야만 하는 신세는 더 이상 내몰릴 수 없는 세상의 끝이라고 여깁니다.

 

막스는 할아버지를 데리고 유유히 요양원에서 탈출합니다. 유괴 아닌 유괴를 한 겁니다. 이때, 요양원에 있던 또 다른 할머니, 슈나이더 선생님도 따라 나서게 됩니다. 젊은 시절 무용선생님이었던 할머니죠.

 

이렇게 막스와 할아버지, 그리고 슈나이더 선생님은 요양원을 탈출하여 꽃 계곡이란 곳에서 자유와 자연, 그리고 춤을 누리며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 시간은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와의 멋진 작별의 시간이며, 막스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는 소풍의 시간이 됩니다.

  

  

물론, 시간이 더 지나면 할아버지는 막스에 대해서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이게 치매란 병의 무서움이니까요. 하지만, 그것을 걱정하는 막스에게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할아버지에게 기억나요?’하고 물으면 언젠가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를 거잖아요. 그리고 언젠가는... 나를 사랑한 것도 잊어버릴 거고요.”

막스, 걱정하지 마라. 너는 무서워할 것이 없어. 달은 볼 수는 없지만 항상 있다는 걸 너도 이제 알잖아? 좋아, 더는 알지 않아도 돼. 정말이지 그 이상은 알 필요가 없단다, 알았지?”(60-1)

 

비록 할아버지가 막스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여전히 할아버지는 막스 곁에 있다는 겁니다. 어쩌면 훗날 할아버지의 기억이 깡그리 사라지게 될지라도, 지금 당장 막스와 할아버지가 함께 한 이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아울러 막스에 대한 할아버지의 기억은 사라졌을지라도,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쌓았던 아름다운 추억, 그 시간들에 대한 기억은 막스에게 남아 있을 겁니다. 그러니, 여전히 할아버지는 막스의 기억속에서 살아 있는 거죠.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을 생각해봅니다. 때론 서로를 아프게 하고, 때론 서로를 힘들게 할 수도 있지만, 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들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설령, 나중에 기억의 상실과 같은 큰 슬픔이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지금 여기에서 사랑하고 함께 추억의 시간들을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소중한 것임을 떠올려보게 하는 동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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