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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 하자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3월
평점 :
이광재 작가의 『수요일에 하자』라는 다소 독특한 제목의 소설을 읽게 되었다. 무엇을 ‘수요일에 하자’는 걸까? 이건 소설 속 밴드의 이름을 지을 때 나온 이름이다.
나는 수요일에 하자. 아무 이유 없어. 우리 연습 날이 수요일이잖아. 그리고 직장인들에겐 수요일이 일주일의 고비 같은 날이거든. 월화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슬슬 피곤해지기 시작하는데 주말까진 좀 버텨야 하는. 그러니까 수요일엔 뭐든 하자 이거야. 섹스든 술이든 음악이든...(121쪽)
그렇다. 이 소설은 중년 밴드 이야기다. 답이 안 나오는 중년 남녀들이 모였다. ‘수요일에 하자’라는 일명 ‘수요 밴드’의 이름 아래. 이들은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어쩌면 실패자들, 루저들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이기도 하다.
밴드의 리더격인 배이수는 그의 이름처럼 베이스를 치는 것을 운명으로 알고 살고 있는 아재다. 3개월간 노가다 잡부로 외도하기도 했지만, 결국 임금을 떼이고, 다시 7080 라이브클럽 ‘낙원’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월세를 감당하기는커녕 보증금을 따 까먹고 이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털터리. 그런 배이수는 왕년 역전의 명수들을 하나하나 모아 ‘수요 밴드’를 만든다.
사업을 하겠다고 제일 먼저 전주 땅을 떠났던 박타동. 그는 이름처럼 드럼을 치던 드러머. 하지만, 지금은 사업도 망하고 빚쟁이들에게 쫓겨, 수배자의 신세에 불과하다. 그런 그가 배이수의 첫 번째 동지가 된다.
여기에 리콰자와 라피노가 함께 하게 된다. 리콰자는 라이브 맥주집이나 카페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C급 가수다. 하지만, 어느 날 세월호에 대한 노래를 만들어 부르던 고등학생 아들의 모습에 진짜 ‘소리’를 만들어보자며 ‘수요 밴드’에 함께 하게 된다. 라피노와 함께. 라피노는 피아노를 전공한 여인으로 졸부 시부모와 남편을 뒀었지만, 남편의 외도로 인해 이혼한 후 대장암 수술을 한 전력이 있는 여인. 얼마나 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친분이 있던 리콰자와 함께 수요 밴드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에 치매 걸린 노모의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니키타. 그는 유흥가에서 잘 나가던 기타리스트로 뒤늦게 ‘수요 밴드’에 참여하게 된다. 원래 배이수, 박타동과 함께 삼총사 격이었던 인물. 여기에 니키타의 돈을 떼어먹고 잠적했던 화류계 여인 김미선이 참여하게 되고. 여기에 현직 노가다 김기타 역시 초창기에 참여하였지만, 그는 니키타의 등장으로 자진하여 뒤로 물러나게 된다. 악기를 만지기에는 이미 굳어진 손을 한계를 느끼며.
이들 답이 없는 중년 밴드 ‘수요 밴드’의 열정과 아픔, 눈물과 환희를 『수요일에 하자』를 통해 만나게 된다. 이들 밴드는 드디어 ‘율도 공연’을 예정하게 된다. ‘율도 공연’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데, 과연 그 공연은 이들에게 이상적 세계를 허락하게 될까? 과연 이들 중년들은 ‘율도’를 맛보게 될까?
소설은 마지막까지 만만치 않은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여전히 실패한 인생의 모습뿐이다. 이들은 여전히 세상을 이길 수 없다. 세상은 여전히 이들에겐 잔혹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 중년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열정을 쏟아 붓는 모습은 뜨거운 것이 가슴에서 꿈틀거리게 만든다. 뿐 아니라, 이들이 공연을 하는 장면에서는 그동안 내 안에 세월의 더께로 쌓여있던 삶의 찌꺼기들이 깨끗케 배설되는 느낌도 갖게 한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율도’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뭔가,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뭔가를 하고 살아가는 시간이 바로 ‘율도’에서의 삶이 아닐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꼰대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수많은 중년들. 이젠 열정은 찾아볼 수 없이 그저 하루하루 마지못해 살아가는 중년들에게 이들 루저들이 뭔가 뜨거운 것을 지펴줄 수 있는 그런 좋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