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자책] 브루투스의 심장 - 완전범죄 살인릴레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4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브루투스의 심장』은 작가의 초기 작품으로(1989년 작품), 작가의 몇몇 읽어본 작품 가운데 대표작으로 뽑아도 좋을 작품이다. 책을 옮긴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꽉 짜인 트릭으로 정통 추리물의 재미를 한껏 뽐낸다. 또한 운명을 이겨내려는 인간의 발버둥과 그들의 파멸을 그림으로써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세계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옮긴이의 말 중에서)
옮긴이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세계의 원형을 운명을 이겨내려는 발버둥, 그리고 그들의 파멸로 보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등장인물들은 이런 도식에 부합한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 스에나가 다쿠야가 그렇고, 다쿠야와 함께 살인을 계획했던 실장 나오키(전무의 아들이자 회사의 상속 예정자다.)가 그렇고, 이들의 살인의 표적이 되었던 여인 야스코도 그렇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운명을 이겨내려 발버둥 치던 이들의 모습은 도리어 살인이라는 사건들을 양산해내고, 이런 살인으로 인해 점차 그들의 삶은 파멸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아울러 이런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 이면에는 각자의 상처가 있다. 무엇보다 상실의 상처가. 이런 상실의 상처는 앞에서 언급한 세 사람 외에도 또 다른 등장인물들 역시 이런 상실의 상처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고, 이런 상실의 상처가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범죄다. 이것이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원형인가 보다.
무엇보다 이 소설 『브루투스의 심장』이 재미난 것은 처음 시작하면서 등장인물들이 계획하고 있는 사건의 트릭을 설명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이것을 ‘도서형 추리소설’이라 한다고 책은 말한다.). 이게 바로 책의 부제이기도 한 「완전범죄 살인릴레이」다. 세 사람이 완전범죄를 꿈꾸며, 오사카에서 살인을 벌여 시체를 릴레이로 운반하여 도쿄에 운반하고, 각자는 최대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음으로 접촉점이 없는 세 남자의 한 사건에 연관되어 있으리라 생각할 수 없게 한다는 ‘살인릴레이 트릭’. 이렇게 소설은 ‘살인릴레이 트릭’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사건은 꼬인다. 두 번째 릴레이 주자가 첫 번째 주자에게서 전달받아 운반했다고 믿었던 시체는 알고 보니 첫 번째 주자였던 것. 과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소설은 이렇게 두 번째 주자인 다쿠야가 사건을 추리해나가는 형국이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쿠야가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죄를 덮고, 또 다른 범죄를 행하기 위해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형국이다. 또 한편으로는, 형사들이 등장하고 사건을 추리해 나가면서 범인인 다쿠야를 추격해 오고.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며 이에 대해 추리하고 묻게 된다. 과연 나오키를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 살인의 대상자였던 야스코일까, 아니면 또 다른 제 삼의 인물인가? 이렇게 이 살인자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또한 야스코 뱃속에 들어 있는 태아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하는 질문 역시 소설의 재미를 더해 준다. 이 역시 소설을 읽는 내내 추리하게 만든다.
아울러 죽은 시체가 되어버린 나오키 역시 다쿠야에게 감추고 있던 속셈이 있었는데, 그것은 무엇인지를 묻는 작업도 재미나다. 또한 제 삼의 세력의 등장 역시 소설을 더욱 재미나게 만들어 주고.
소설은 여러 의도와 속셈이 뒤죽박죽으로 엉켜 있다. 이런 복잡하게 엉켜있는 실타래가 풀려나가는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야말로 이 소설 『브루투스의 심장』의 재미다.
아울러 소설의 내용으로서 부각되기보다는 제목으로 부각되어 있는 ‘브루투스의 심장’이 무엇일지를 찾아가는 작업도 흥미롭다. 어쩌면, 이 안에 작가의 또 다른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모든 것을 자동화로 해 나갈 수 있다는 과학의 만용, 그 안에 담겨진 함정, 인간의 탐욕과 물고물리는 감정의 고리 등을 고려하지 않은 과학인 ‘브루투스의 심장’은 결국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 소설 『브루투스의 심장』은 재미나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구나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