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의 뜰
탁현규 지음 / 안그라픽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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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야 아파트가 보편화되면서 집에 뜰이란 것이 사라졌지만, 예전엔 크건 작건 집 안에 뜰이 있었다. 이런 뜰은 바깥의 넓은 세상에 비한다면 극히 좁은 공간에 불과하지만, 사회적 활동에 제한이 많았던 여성, 특히 양반가 여성들에게 뜰은 어쩌면 그녀들의 우주였을는지 모르겠다.

 

뜰은 마당으로 들어온 작은 산수이다. 유람이 자유로웠던 남성들이 산수를 화폭에 담았다면 여성들은 뜰을 화폭에 담았다. 이렇게 해서 사임당은 자연스레 뜰을 화폭에 담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임당이 자신의 뜰을 그림으로 남겼기 때문에 우리는 조선 시대의 뜰을 경험할 수 있다. 사임당의 뜰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사임당의 그림 속 뜰에 들어가 풀을 만져보고 꽃향기를 맡아보자. 그리고 벌과 나비의 날갯짓을 바라보며, 흙을 밟는 상상을 해보자(12)

 

이 책, 사임당의 뜰은 사임당의 작품 해설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저자는 간송미술관 연구원으로 재직 중에 있다. 그러니, 사임당의 작품을 어느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접하는 전문가다. 그런 전문가의 음성으로 들려주는 사임당의 작품 해설을 듣게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책은 바로 그런 행복을 독자들에게 배달한다.

 

사임당 초충도를 마치 도록을 보듯 좋은 화질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전문가의 설명 내지 감상을 듣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겠다.

 

사임당의 작품 뿐 아니라, 사임당의 딸인 매창의 작품 역시 네 점을 소개하고 있다. 책 뒤편에서는 매창과의 대화, 율곡과의 대화, 사임당과의 대화라고 해서 가상 문답을 수록하고 있기도 하다.

 

책을 통해, 사임당의 초충도 안에 담겨진 곤충, , 식물 등에 담겨진 의미, 이것들을 그린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뿐 아니라, 그런 의미를 알아감으로 그림을 그리던 사임당의 소망이 무엇인지 느껴보는 것 역시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아울러, 사임당이 누렸던 자연의 향기를 오늘 이 시대에 다시 맡게 된다는 즐거움도 있다.

 

저자가 여러 차례 반복하는 말 가운데 하나는 아스팔트 시대에 사임당의 초충도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이미 우린 아스팔트에 익숙해 자연에 대한 앎이 그만큼 미약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전에 다양한 책들에서 사임당의 초충도를 해석하는 부분에서 잘못된 정보가 있었음을 저자는 말한다. 이렇게 잘못된 정보를 지적해 주는 것이 고맙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정작 저자 역시 아스팔트에 익숙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는 점이다. 저자의 설명 가운데 여러 부분에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어 본다면 이런 것들이 있다(저자에게 대단히 죄송하지만 몇 부분을 지적해본다. 물론 나의 지적 역시 틀린 것일 수 있다.).

사마귀가 딸기를 따서 배를 채울 것이라 말하는데, 사마귀는 육식성이다.

<가지와 방아깨비>에 등장하는 식물을 쇠뜨기로 말하고 있지만, 갈퀴덩굴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 같다.

<여뀌와 사마귀>에 등장하는 잠자리의 날개가 검은 색인 것은 다른 사물과 색의 어울림을 위해 투명한 날개를 검게 칠한 것이라기보다는 처음부터 검은 날개를 가진 잠자리(물잠자리나 검은물잠자리와 같은)를 그린 것이라 보는 것이 합당하겠다.

<오이와 개구리>에 등장하는 땅강아지 역시 땅강아지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앞발이 극히 작은 것을 볼 때, 앞발이 발달된 땅강아지라고 보기엔 무리다. 아울러 뒷다리의 위치 역시 땅강아지라고 보기엔 너무 앞에 붙어 있다.).

<민들레와 땅꽈리>, <봉선화와 잠자리>에 등장하는 파란 민들레 역시 민들레의 색을 파란색으로 바꾼 것이라기보다는 뻐꾹채로 본다면 어떨까 싶다(결정적으로 민들레가 아닌 이유는 꽃의 색이 문제가 아니라, 꽃대 중간에 잎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민들레는 꽃대 중간에 잎이 나지 않기에. 대신 뻐꾹채는 잎이 있다. 뻐꾹채의 꽃은 보라색이지만, 보기에 따라선 파란 색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점들은 어쩌면 신사임당의 관찰과 표현력의 부족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보다는 오늘 우리가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그런 측면에서 사임당의 작품에 대해 연구하시는 분들이라면 곤충이나 식물에 대한 깊은 연구가 뒤따랐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요청을 해본다.

 

이러한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사임당의 작품을 마치 도록을 보듯 감상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해설과 감상 설명을 들을 수 있음은 여전히 행복한 일임에 분명하다. 책을 통해 500여 년 전의 뜰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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