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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주
이정연 지음 / 고즈넉 / 2017년 3월
평점 :
이정연 작가의 장편소설 『밀주』는 조선 영조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스릴러 소설이다. 금주령이 내려졌던 시대. 마치 미국의 금주령 시대를 배경으로 한 갱스터 무비들을 보는 느낌을 갖게 하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는 검계란 조직이 나온다. 이들은 금주령 시대를 통해 오히려 방대한 조직을 이룬 밀주 조직이다. 이들은 포청뿐 아니라 고급 관료들의 비호를 받으며 술을 팔아 엄청난 부를 축적해 나간다. 검계의 군사력이 국가 어느 조직의 군사력보다 더 우월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의 막강한 조직.
이런 조직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고 이들을 잡아들이기 위한 이들이 있다. 바로 포졸 장붕익을 위시로 한 5명의 무리, 오궤신이 그들이다. 장붕익은 검계를 잡기 위해 금란방에 들어간다. 금주령을 어기는 이들을 단속하기 위한 금란방이지만, 실상 금란방 역시 검계의 하부조직처럼 되어 버린 지 오래. 이런 상황에서 검계를 잡아들이겠다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오궤신은 당시의 눈으로 본다면 상 돌아이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들은 검계 조직을 허물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검계 상위 조직을 추적해 갈뿐더러, 이들을 비호하는 관료들은 누구인지 추적해나간다. 과연 그 비호세력의 가장 위엔 누가 있을까?
사실 장포졸의 이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보다 더 힘겨운 싸움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다 적이기 때문.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뿐 아니라, 금주령을 단속하는 자들 역시 믿을 수 없다. 조정안에서 서로 물고 뜯는 관계에 있는 자들 역시 이익 앞에선 하나다. 이들 모두 어쩌면 한 통속이다.
소설은 흡입력이 대단하다. 게다가 이들 범죄 조직의 끝까지 올라가다 보면 그 실체를 알아갈수록 경악을 넘어 황당함마저 들게 된다. “조선시대판 언터처블스”란 선전문구가 딱인 재미난 갱스터소설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벌일 수 있는 자들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뿐 아니라, 모든 힘의 근원이 돈이라 믿는 국가통치자까지. 돈이야말로 왕권을 지켜주는 강력한 무기라 여기며, 백성들의 눈물과 한숨, 고난은 돌아보지 않는 벼슬아치들의 모습은 참 한심하기도 하고.
조선시대의 금주령에 대해 찾아보니, 이런 글귀가 눈에 띤다. “금주령은 지방에서는 비교적 엄격하게 준행되었으나, 서울의 사대부·관료사회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고 단속도 사실상 어려웠다. 다만, 공·사의 연회가 금지되고 과도한 음주·주정 등의 행위가 제재되는 정도였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소설 속에서의 관료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나 보다. 금주령이란 것이 극심한 기근으로 인해 내려지는 것인데, 지방의 민중들은 먹고 죽으려 해도 사실 먹을 것이 없었을 것이기에 술을 마실 수나 있었겠나. 하지만, 곁에서 민중들이 굶어 죽어나가건 말건 상관치 않는 벼슬아치들은 이런 금주령에서 자유함을 누릴뿐더러 이를 이용해 자신들의 배를 더욱 채워나갔다니. 이런 못된 녀석들이 다 있을까? 그런데, 이런 못된 녀석들이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우릴 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참, 소설의 제목은 『밀주』다. 당연하게도 이 밀주는 密酒일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소설 속에서 바로 금주령 속에서 밀주를 사고파는 조직들과의 한판 승부를 다루고 있으니까. 소설을 다 읽은 후에도 마땅히 그렇다고 여겼다.
그런데, 다시 보니 아니다. 밀주의 한자는 密主다. 바로 감춰진 주인. 과연 감춰진 주인은 누구일까? 이 密主를 만나게 되는 것이 소설 속에선 커다란 반전으로 다가올뿐더러, 하나의 메시지로 다가온다. 어쩌면, 密主라고 하면 마땅히 감춰진 비선실세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니다. 진짜 실세다. 겉으로 드러나기에도 최고통솔권자이면서 뒤로는 온갖 못된 짓을 하는. 소설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재미 이면으론 씁쓸함을 품게 된다. 현실을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