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로로 히야, 그리는 대로 신나는 책읽기 46
차나무 지음, 노준구 그림 / 창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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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책읽기에 있습니다. 바우는 책을 잘 읽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이 책읽기를 시키실 때가 제일 싫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에도 이런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꼭 책읽기를 시키셨죠. 어디까지 읽고 있는지 함께 잘 보고 있어야 다음을 이어서 읽을 수 있고요. 그래서 책읽기는 책을 잘 읽을 수 있어도 긴장되는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몇몇 친구들은 책읽는 것이 어려워 한자 한자 떠듬떠듬 읽곤 했죠. 그리고 그런 친구들은 어쩐지 바보 같이 여겨지곤 했고요.

    

바로 이런 문제를 작가는 끄집어냅니다. 선생님은 물론 아이들에게 책읽기를 훈련시키려는 좋은 의도이겠지만, 바우처럼 책을 잘 못 읽는 친구에게 이 시간은 정말 피하고 싶은 악몽 같은 시간이겠죠. 그런데도 선생님은 계속하여 이렇게 책읽기를 시켜요. 그래서 바우는 책읽기뿐 아니라 학교생활 전체에서 문제가 있는 아이처럼 되어버리고요. 단지 책을 조금 못 읽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런, 바우에게 하루 장터에서 만난 어떤 아이가 낡은 크레파스를 팝니다. 이 크레파스로 뭐든 그리면 그대로 된다나 어쩐다나. 바우는 믿지 못했지만, 그 아이가 하도 사라고 조르는 바람에 자신에게 있는 장터 돈을 모두 털어 삽니다. 이렇게 낡은 크레파스를 산 바우. 바우는 아무런 생각 없이 망태 할아버지가 선생님을 잡아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언제나 책읽기만 시켜 바우를 바보 만드는 선생님. 바우의 마음도 몰라주는 선생님이 미웠거든요.

    

그런데, 다음날 선생님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다섯 살 된 아들 준서가 울며 학교로 찾아왔고요. 엄마가 갑자기 사라졌다고요. 정말 바우의 그림대로 된 겁니다. 선생님이 사라졌다고 해서 바우의 마음이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 때문에 사라졌다는 자책을 하게 되죠.

 

그럼 사라진 선생님을 어떻게 되찾게 될까요? 물론 바우가 다시 선생님이 오는 그림을 그리면 되겠죠. 하지만, 바우는 이 크레파스를 이미 버렸거든요. 과연 바우는 사라진 선생님을 되찾게 될까요?

 

동화는 어린 시절 책읽기에 대한 부담감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담감에 힘들어 하는 아이의 심리를 잘 묘사합니다. 게다가 이렇게 책을 조금 읽지 못할 뿐인데, 이 일로 문제아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을 그려냅니다.

 

뿐 아니라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장치도 있고요. 정말 이런 크레파스 있다면 어떨까요? 물론, 좋은 일들만 생기는 것은 아니겠죠. 동화 속에서도 이런 전능한 장치로 인해 오히려 큰 위기를 맞게 되니까 말입니다. 이처럼 동화는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장치의 매력과 함께 그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고합니다.

 

아울러, 선생님이 사라지게 그린 그림, 그 마음은 진심이 아니었음도 동화는 이야기 합니다. 그저 너무 미운 마음에 한 번 그림을 그린 것뿐입니다. 이처럼 누군가를 향한 미움조차 악하지 않고 예쁘게 느껴지는 것도 동화의 매력인 것 같네요.

 

또한 자신이 벌여놓은 일을 되돌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 역시 동화 속에서 발견하는 보물이고요.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동화 속에 감춰진 가장 소중한 보물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끝내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로 인해 온 국민이 힘겨워하는 시기이기에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기보다는 여전히 남 탓만 하는 못된 어른보다는 이처럼 자신이 벌여놓은 일을 되돌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아이의 모습이 훨씬 더 커 보이는 동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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