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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 Halloween ㅣ K-픽션 17
정한아 지음, 스텔라 김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2월
평점 :
한국문학의 젊은 상상력임을 자부하는 <K-픽션> 시리즈는 짧은 단편이기에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리즈다. 그 17번째 이야기는 정한아 작가의 『할로윈』이란 작품이다.
‘군’과 함께 사랑의 도피를 했지만,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버린 ‘군’. 이렇게 홀로 P도시에 남아 있던 세희는 그곳에서 할머니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된다.
할머니의 유언은 세 가지다.
- 장례식을 10월 넷째 주 금요일에 집에서 치를 것(할머니의 임종과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때.)
- 집과 토지를 네 명의 자녀들에게 나눠줄 것
- 가게를 정리하여 세희에게 넘길 것
이 세 가지 유언으로 인해, 할머니의 죽음 뒤에 남은 가족은 혼란에 빠진다. 할머니의 자녀는 네 명이 아닌 세 명이기에. 그런데, 할머니는 왜 네 명이라 했을까? 임종 직전 정신이 혼미했던 걸까? 아님 또 다른 자식이 있는 걸까? 그리고 장례식을 자신의 죽음 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치르도록 한 이유는 뭘까? 할머니 홀로 남겨두고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인 손녀 세희에게 가게를 넘긴 이유는 또 뭘까?
이런 모든 질문에는 마땅한 답이 있다. 소설을 읽어 나가는 가운데 그 답은 금세 찾게 되고. 아울러, 이런 할머니의 죽음과 소설의 제목 『할로윈』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그 궁금증 역시.
할로윈은 사실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서양의 풍습에 불과하다. 그 할로윈이 제목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할머니의 네 번째 자녀, 그리고 장례일을 늦게 잡은 이유 등과 모두 연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런 제목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싶다. 바로 우리네 삶이란 게 결국엔 삶과 죽음,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말을 말이다. 서양의 풍습에 의하면 모든 성인들의 날인 11월 1일 바로 전날은 죽은 자들의 날이다. 죽은 영혼들이 삶의 공간에 침범하게 된다는 날.
짧은 단편소설 『할로윈』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어쩌면 오늘 우리의 삶은 할로윈과 같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죽음과 삶은 단절이면서도 연속성을 갖는다. 소설 속에서도 할머니의 죽음이 오히려 세희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아무런 삶의 목적도 의욕도 없던 상태의 세희를 P시에서 다시 삶의 자리로 불러들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할머니의 죽음이다. 죽음이 삶을 되살려 낸다. 살아 있으되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상태의 세희를 치열한 삶으로 다시 끌어낸 것은 죽음이다. 이것이 ‘할로윈’이란 단어가 갖는 의미가 아닐까?
죽은 자가 산 자에게 영향을 끼치고, 산 자는 죽음의 공간에서 또 치열한 시장통으로 발을 들여놓는. 결국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은 구별된 듯하면서도 결국엔 하나라는. 물론, 누군가에게는 쓸데없는 분장으로 즐기는 날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