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장의 소년 한빛문고 19
염상섭 지음, 유기훈 그림 / 다림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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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번 도서출판 다림에서 출간된 장편동화 채석장의 소년은 한국근대문학의 한 획을 그은 염상섭의 유일한 장편동화라고 한다. 염상섭이란 이름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만났던 반가운 이름이다. 표본실의 청개구리삼대가 언뜻 떠오르는 작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을 알만한 근대문학의 대표적 작가다. 그런 작가의 유일한 장편동화라는 타이틀, 그리고 오랜 세월 어둠 속에 묻혀 있다가 63년 만에 다시 빛을 본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책을 들 때, 설렘이 있다.

 

이야기는 해방 이후 만주 등 외국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귀환동포들의 애환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0% 가량이 귀환동포였다고 한다. 이처럼 갑자기 늘어난 인구로 인해 겪게 되는 구인난. 게다가 타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던 터전을 뒤로 하고 아무런 기반도 없는 고국에서의 힘겨운 삶이 이야기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주인공 완식 가정도 그렇다. 만주에서 국민학교 선생님을 하던 엄마는 고국에 돌아와 채석장에서 돌을 깨는 일을 하며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집도 없어 방공굴에서 생활하는 완식네 가정. 누나는 방공굴 앞에서 참외 등을 벌려놓고 장사를 하고, 완식 역시 다시 학교에 갈 돈을 모으기 위해 채석장에서 엄마와 함께 돌을 깬다. 한 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그러다 그곳에서 축구를 하던 또래 아이들이 찬 공에 맞아 넘어지고. 쇠약한 몸 탓에 이 일로 며칠을 앓아눕게 된다.

 

한편 자신들 때문에 완식이 넘어진 것을 미안하게 여긴 규상(부잣집 아들)은 완식을 마을까지 데려다주는 가운데 완식의 품성이 바르다는 것을 알고 호감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완식과 규상의 우정은 과연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채석장의 소년을 읽으며 무엇보다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언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70년 가까이 된 작품이기에 지금의 언어와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책은 현행 맞춤법 규정에 따라 약간의 수정을 가했지만, 원문을 최대한 살렸기에 예스러움이 가득하다. 이런 부분이 처음엔 조금 어색하지만 읽다보면 오히려 이런 예스러움이 자연스럽고 당시대를 느끼게 해주기에 더욱 좋게 여겨진다.

 

게다가 잘 알지 못했던 순우리말이 책 본문 속엔 가득하다. 우리말이 자리를 잃어가는 시대이기에 이런 부분도 더욱 의미가 있지 않은가 싶다. 요즘 작품들을 보면, 작가들이 이런 우리말을 일부러 작품 속에 넣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솔직히 자연스럽지 않고 오히려 문맥과 동떨어진 느낌을 받곤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순우리말의 엄청난 향연이 펼쳐지고 있음에도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고전만이 갖는 힘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처럼 예스러운 언어들로 써내려간 해방 이후 귀환동포들의 모습은 힘겨운 삶의 무게가 가득 느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힘겹고 고단한 이야기가 결코 답답하게 읽혀지지 않는 이유는 훈훈한 정과 사랑, 이웃을 향한 돌봄의 모습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남의 일에 나 몰라라 외면하기보다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걷어붙이고 나서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돈이 있다고 뽐내거나 멋대로 행하지 않는 모습. 가난하다고 기죽거나 비굴해지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는 모습. 자신의 잘못에 이런저런 변명을 대기보다는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비는 모습. 등이 동화 속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내용들이야말로 이 작품 채석장의 소년이 갖고 있는 힘일 것이다. 이런 힘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작품을 통해 공급되길, 우리의 삶 속에 이런 진정한 삶의 품격이 되살아나길 기대하게 한다.

 

아울러, 오늘의 시대는 작품 속과는 비교할 수 없이 엄청나게 풍요로운 시대가 되어버렸지만, 작품 속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아름다운 모습, 정신들을 오늘 우리는 오히려 상실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게도 되고.

 

염상섭이란 그 이름의 무게로 인해 갖게 되는 기대를 외면하지 않는 좋은 작품이다. 이런 작품을 출간하여 독자들에게 읽을 기회를 준 출판사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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