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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떨어진다 ㅣ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9
제임스 프렐러 지음, 서애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6년 12월
평점 :
제임스 프렐러의 『누구나 떨어진다』란 제목의 소설은 청소년들의 왕따, 그리고 자살을 다루고 있는 무거운 주제의 소설이다.
모건이란 소녀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소녀다. 특별히 학교에서 폭력을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도 모건과 친구하지 않는다. 게다가 모건을 향한 언어폭력이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진다. 익명이라는 안전장치 뒤에 숨어서 말이다. 한 아이의 주도하에 학교 아이들은 돌아가며 모건에 대한 온갖 괴롭히는 글귀를 모건의 sns 계정에 올린다.
우리에게 왕따 게임은 장난이었다. 나도 그랬다.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지구에서 가장 멍청한 바보천치 같다는 걸 알지만, 진짜 처음엔 장난이었다. 우리가 올린 글을 보면서 낄낄댔다. 우리는 최대한 추잡하고 더럽고 험악한 글을 쓰려고 했다. 우리에겐 도전이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또 어떤 말도 안 되는 글이 올라올까 모두 손꼽아 기다렸다.(17-8쪽)
이렇게 모건은 다른 아이들에게는 피해야 할 괴물, 온갖 험담을 퍼부어야 할 괴물로 만들어졌고, 모건은 철저하게 혼자가 된다.
그런데, 모건이 숲 가장자리 급수탑에서 몸을 던졌다. 이런 모건의 죽음 이후 한 소년의 후회와 반성, 그리고 사죄와 용서 등을 소설은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 샘은 모건의 죽음 이후 자신의 행동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아울러 모건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는지도. 사실 샘은 모건과 친구관계였다. 다른 아이들에게 그런 관계가 들통 날까 두려웠지만, 둘은 조금씩 우정을 쌓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왕따인 모건 편에 서지 못했던 비겁한 사내아이.
샘은 모건의 죽음 이후 용기를 내어 모건과의 일들을 떠올리고 기억하려 할뿐더러 모건의 가족에게 사죄한다. 자신도 똑같은 가해자였음을 말이다.
내가 그날 한 일이라곤 모건을 외면한 것뿐이었다. 그게 내가 한 일의 전부다.
일이 너무 심각해질 때까지 난 그저 내버려두었다. 그 일을 멈추려고 애썼어야 했다. 그랬어야 했는데...(68,70쪽)
소설은 샘의 시선을 통해, 남은 자들의 모습들을 그려내고 있다. 어떤 이들은 후회하고 자책한다. 또 어떤 이들은 이 일로 인해 비난 받게 되고, 또 어떤 이는 왕따 주동자란 꼬리표가 붙게 된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이 일을 또 하나의 장난처럼 접근하는 자들도 없지 않다.
젠장, 모건이 우리 놀이터를 망쳐버렸잖아. 왕짜증!(42쪽)
소설은 이들 모두가 가해자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를 정죄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왕따의 주동자였던 소녀마저.
왜 그럴까? 어쩌면 소설 제목에 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떨어진다.” 원제는 그냥 The Fall 이지만, 어쩐지 『누구나 떨어진다』란 제목이 더 좋다. 모건 뿐 아니라, 샘도, 그리고 왕따의 주도자였던 아이도, 그리고 익명의 방패 뒤에서 함께 동조하고 살인의 언어를 생산해 낸 아이들도. 모건의 죽음조차 조롱의 재료로 삼는 아이들조차도. 어쩌면 모두 떨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독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랬기에 소설은 진실을 드러내지만, 정죄하지는 않는가 보다.
어쩌면 오늘 우리 사회 역시 이처럼, ‘누구나 떨어지’고 있진 않을까?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사회정의가 땅에 떨어졌음에도 깨닫지 못하는 시대는 아닌가. 아니 사회정의보다는 자신의 유익이 우선이고 진리인 시대. 부정과 부패, 온갖 비리가 드러나도, 시인과 사죄보다는 부정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시대. 오히려 힘을 모아 죄를 덮으려 하는 시대.
이러한 시대이기에 도리어 소설 속 주동가해자가 그립다. 적어도 소설 속 그 아이는 자신의 죄를 스스로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아이는 아무도 자신을 정죄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정죄하며 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파할 줄 아는 악인이기에 말이다. 어쩌면 작가는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누구나 떨어지는 이 시대, 더 이상 폭력의 희생, 그 떨어짐은 없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