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지음, 송병선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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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작가가 쓴 송나라 배경의 역사추리소설이란 조합이 조금은 어색하다. 중국 작가가 쓴 송나라 배경의 역사추리소설이어야 고개를 끄덕일 텐데 말이다. 조금 양보하여 우리 작가가 쓴 송나라 배경의 역사추리소설이라고 하여도 어색할 텐데, 스페인 작가라니. 그런데, 소설을 읽어가며 그런 어색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됨에 놀라게 된다.

 

『시체 읽는 남자』는 스페인 작가 안토니오 가리도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역사추리소설, 역사와 추리가 만나면 언제나 재미나다. 물론, 현대추리소설도 재미나지만 역사추리소설은 왠지 1+1의 느낌이라고 할까? 여기에 더하여 법의학까지. 1+1인데, 덤으로 또 다른 상품이 묶여 있는 느낌. 완전 수지맞은 기분이다.

 

장르만 수지맞은 것이 아니라, 소설 자체가 재미나다.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툼한 분량이지만, 언제 이걸 다 읽지? 란 생각보단 재미난 내용이 금세 끝나버리지 않은 안도감과 함께 다 읽은 후엔 언제 이걸 다 읽었지 하는 아쉬움을 갖게 하는 소설이다. 내용이 재미나기에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어야 직성이 풀릴 책이기도 하다.

 

주인공 송자(역사속 실존 인물이다.)는 판관이 되길 꿈꾸는 청년이다. 실제 판관이 되는 공부도 하였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고향으로 내려온 아버지를 따라 고향에 내려와 눌러 앉고 만다. 망나니 같은 형에게 온갖 구박을 받으며 농사를 짓지만 형에게 인정받지 못할뿐더러 다시 수도 린안으로 돌아가자고 해도 아버지는 끝내 거절한다. 그런 아버지를 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어느 날 자는 농사를 짓다가 논에 잠겨 있던 시체를 발견하는데, 그 시체는 다름 아닌 예비 장인. 그리고 그 범인은 자의 형으로 밝혀지고. 게다가 불행은 연달아 온다던가. 벼락을 맞고 자의 집과 주변집들이 타버려, 자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병든 어린 여동생과 자만 남게 된다.

 

여기에 더하여 살인자가 된 형을 살려보겠다고 땅을 팔아 판관에게 뒤를 데지만 도리어 그들의 농간에 돈도 빼앗기고 범죄자가 되어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이때부터 자의 고생이 시작된다. 이 고생의 연속이 참 눈물겹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고생의 과정이 길게 나오기에 문득 추리소설이 아닌가 하는 의아함도 들게 한다. 소설의 전반부는 자의 고향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과 그 추리과정. 그리고 그 이후에 도망자가 되고 어린 동생과 함께 힘겹게 살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제 후반부에서는 어린 동생마저 죽게 되고, 홀로 남은 송자가 판관 양성학교에 우여곡절 끝에 입학하여 공부하는 과정. 그리고 그를 무시하고 미워하는 자들과의 갈등. 여기에 황궁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수사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 등이 손에 땀을 쥐게 이어진다.

 

소설은 마치 전반부과 후반부가 별개의 스토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이 두 부분이 결코 별개의 이야기가 아닌 고향에서의 사건부터 모두가 다 하나의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추리소설을 엮어내는 작가의 내공이 대단하다. 무엇보다 많은 분량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속도감 있게 읽혀지도록 써내려간 내공도 대단하고. 유럽인으로서 중국 남송 시대의 송자라는 실제 인물을 꼼꼼한 자료조사와 탁월한 상상력을 통해 소설 속에 살려낸 그 손길이 부럽기까지 하다.

 

세계적인 법의학의 선구자라는 역사 속 실존인물 송자. 그의 새롭게 창조된 이야기를 통해, 신나는 추리의 세계를 맛보게 해주는 소설이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모든 소설은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로 나뉘게 된다는 말을 인용한다. 그럼, 이 소설은 어디에 속할까? 좋은 소설이나 나쁜 소설보다는 재미난 소설이다. 대개의 추리소설이 그렇듯이 말이다. 아울러 좋은 소설이라 말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소설을 읽는 내내 인간의 탐욕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고, 권력자들의 부패함에 분개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선한 분노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테니 말이다. 게다가 죄악의 어두움, 그 민낯이 결국에는 드러나게 됨이야말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권력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들의 죄가 감춰지지 않고 드러나게 된다는 희망을 말이다. 이만하면 좋은 소설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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