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
존 켄드릭 뱅스 지음, 윤경미 옮김 / 책읽는귀족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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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켄드릭 뱅스(1862-1922)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내가 만난 유령』(고양: 책읽는 귀족, 2016)을 통해서였다. 아마도 이 책이 그의 저작이 국내에 소개된 첫 번째 책이었을 게다. 『내가 만난 유령』을 읽으며, 독특한 유머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분이구나 싶었다. 소설 아닌 듯 소설이면서도 인문학 서적인 듯싶으면서도 아닌 듯 느껴지는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제 그의 책을 두 번째 만나게 되었다.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란 책이다.

 

어째 이 책은 첫 번째 만남보다 더 독특한 만남이 될 것이란 예감이 든다. 아닌 게 아니라 책은 온통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하다. 게다가 책이 패러디하고 있는 작품인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마냥 언어유희가 가득하다. 언어유희 역시 풍자적이다. 물론 이 언어유희로 인해 책의 가독성은 다소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언어유희 단어에 대한 각주를 읽어야 하니 말이다.

 

이 책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는 이미 110년 전의 책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오늘 우리의 세태를 향한 풍자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세월은 흘러 세상이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여전히 권력을 가진 자들의 세태는 달라지지 않아서는 아닐까? 특히, 오늘의 세태, 오늘의 대한민국이야말로 ‘엉망진창 나라’라고 부를 만하지 않은가? 오늘 우리들 역시 앨리스처럼 환상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깨어나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현실임에 오늘 우리의 아픔이 있고, 답답함이 있겠다. 그럼에도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오늘 우리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되겠다.

 

먼저, 작가가 이런 풍자를 하게 된 것은 공산주의의 시작과 맞물려 있다. 공산주의가 세상을 구원할 것 같지만,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사상에 있다기보다는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 있다. 아무리 좋은 이상을 가지고 시작할지라도 그 이념 안에 담겨진 사람들의 탐욕 앞에 공산주의는 더욱 엉망진창의 모습을 연출하게 될 테니 말이다. 작가는 바로 이런 점을 통찰력을 가지고 예언하듯 쓴 글이 본 서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예언은 결과로 드러났다. 공산주의건 민주주의건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겨진 사람이다. 특히,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이 어떤 모습이냐에 따라 엉망진창 나라가 될 수도 있고, 파라다이스가 될 수도 있다.

 

그럼, 책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이상한 나라’와 ‘거울 나라’를 모두 여행하고 돌아온 앨리스는 또 다시 새로운 나라로의 여행을 하게 된다. 그곳은 바로 ‘엉망진창 나라’다.

 

정말 그곳은 엉망진창 나라다. 모든 것을 개인 소유가 아닌 시가 소유한다면서 심지어 사람들의 이빨마저 시가 소유한다. 이가 튼튼한 사람도, 부실한 사람도, 모두 평등한 혜택을 누려야 한다며 말이다. 시 뿐 아니다. 아이들도 시가 소유하고, 문학 예술 역시 모두 시가 소유한다. 사회적 평등주의에 대한 풍자가 가득 담겨 있다.

 

앨리스는 그곳에서 커다란 철도를 만나게 된다. 시 전체를 휘두르고 있는 기다란 철도,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철도다. 이 철도가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이유는 나름 타당하다(물론, 시장인 모자 장수의 입장에서 타당한 이유지만.). 이렇게 열차가 움직이지 않으니, 사고의 위험성이 사라졌다. 항상 서 있으니 열차를 놓치는 사람도 없다. 열차가 덜컹거릴 걱정도 없다. 그러니 가장 좋은 결과란다. 어쩐지 이런 엉망진창 나라를 보며, 파울로 코엘료의 말이 생각난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왜 이들 나라가 엉망진창 나라일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된다. 그뿐 아니다. 가스공장에서 가스의 냄새가 난다고, 가스를 향수로 바꿔버렸다. 이제 가스의 악취가 나지 않고, 가스폭발의 염려마저 사라졌다고 자랑하는 모자 장수의 모습은 정말 어이없을 뿐이다.

 

시의 모든 아이들은 시가 소유하여 시 당국이 기르게 된다. 그런데, 그 책임자는 다름 아닌 공작부인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아기가 운다고 때리고 버렸던 그 공작부인이 시의 모든 아이들을 맡아 기르는 책임자요, 엄마가 된다. 인재기용 능력이 참 대단하다. 그러니 엉망진창나라일 수밖에.

 

(詩)를 관장하는 부서가 있어, 시를 마치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찍어낸다. 그러면서 그 시스템이 얼마나 유익한지 떠벌리는 모자 장수라니.

 

그 외에도 말할 수 없을 만큼 온통 엉망진창인 나라. 그곳의 앨리스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어쩌면 앨리스의 기분을 알 것 같다. 왜냐하면, 오늘 대한민국의 대다수 국민들이 느끼는 기분이 바로 ‘엉망진창 나라’ 속의 앨리스가 느끼는 기분이기에 말이다.

 

모자 장수가 낯설지 않은 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알고 있어서만은 아닐 게다. 그나마 소설 속에서 존재하는 그들은 위험하지 않다. 소설 속에만 존재하기에. 하지만,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이 시대의 모자 장수들의 전횡은 어찌해야 할까? 110년 전에 썼던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가 오늘 현실에도 여전하다는 것, 너무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것이 현실인 것을. 결국엔 이 꿈같은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 아니 현실을 변혁시켜나가야 한다. ‘엉망진창 나라’에서 말이다.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 오늘 우리 시대를 풍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촌철살인 같은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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