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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평점 :
천명관 작가의 신작 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한 마디로 재미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때론 피식피식 웃다가, 때론 껄껄 웃느라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건달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조직들을 점점 하나로 모아 막판에 가서는 신나게(?) 칼부림 한 판 거하게 벌어지기도 하는 느와르 소설이다. 소설 속엔 다양한 조직들이 등장한다. 그 조직들을 나름대로 정리해 봄으로 서평을 여는 것도 좋겠다.
- 양사장 : 인천지역 암흑세계를 휘어잡고 있는 전국구 오야봉이다. 형근과 몇몇 측근들을 거느리고 있다. 잔혹한 오야봉이지만, 어쩐지 나이 탓에 조금씩 유해지는 느낌이 있는 오야봉이다. 전국구 오야봉임에도 자꾸 맞고 다닌다.
- 박감독 : 인천지역에서 삼류포르노 영화감독을 하고 있다. 원래 사체업자로 자체 세력을 거느리고 있으며 양사장의 눈치를 보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 쿠데타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 조카를 탤런트로 꽂아 놓고, 조카의 출연분량을 키우도록 작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 장다리 :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건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가운데 가장 잔혹한 캐릭터. 호시탐탐 양사장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양사장의 예전 부하.
- 손 회장 : 부산 지역의 큰 형님으로 양사장보다 더 알아주는 전국구. 자신이 아키는 종마를 도둑맞은 일로 인해 양사장의 세력을 쓸어버리기 위해 올라왔다가 족보에도 없는 논두렁들과 칼부림을 벌인다.
- 남회장 : 전남 영암 지역 유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동물원을 영암지역에 짓고자 하는데, 이 일을 위해 호랑이에 집착한다. 사기꾼 뜨끈이에게 사기당한 일로 인해 양사장과 얽히게 된다. 휘하에 논두렁 건달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건달 세계의 족보를 모르기에 가장 위험한 세력이기도 하다. 이들에게는 건달 오야봉들의 전설이 통하지 않으니까.
- 종식과 동생들 : 비정규직 건달 조직으로 양사장의 호출이 있을 때, 일을 맡아 하곤 한다. 이 가운데 울트라가 특히 여러 가지 사건을 벌이기도 한다. 울트라는 양사장의 눈에 들기 위해 애를 쓰지만 정작 자신과 교통사고를 낸 중년 꼰대가 양사장인 줄 모르고 눈이 돌아 밟아버린다. 나중엔 뜬금없이 작전을 나갔다가 말을 훔쳐오는데, 그 말이 손 회장이 아끼는 종마(35억 상당)를 훔쳐 일이 꼬이게 만든다. 울트라는 상당히 순박한 건달청년이다.
- 사기꾼 뜨끈이 : 여기저기 사기를 치고 다니는 인물로 뜨끈이로 인해 몇몇의 이해관계가 얽히게 된다. 온갖 사기행각으로 여러 조직의 위협아래 있다.
- 세 명의 대리기사 : 박감독 조직에서 끌어 쓴 사채를 갚기 위해 다이아를 훔치는 일에 끼어들었다가 모든 조직들을 얽히고 꼬이게 만든 장본인들. 언제나 초짜가 무섭다. 정말 어수룩함의 대명사격인 이들로 인해 조직이 온통 꼬이게 된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양념 노릇을 톡톡히 한다.
이렇게 여러 조직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파국을 향해 나가게 된다. 그 과정이 흥미진진할뿐더러 곳곳에 웃음 포인트가 감춰져 있어 독자들을 유쾌하게 만든다. 건달들의 이야기니 곳곳에 폭력이 난무하고 위험하다. 그런데 유쾌하다. 이런 유쾌함은 작가가 만든 캐릭터들의 어수룩함에서 기인한다. 그 앞에 서면 살이 떨릴만한 무시무시한 건달인데 하는 짓을 보면 완전 어리바리하다. 모든 건달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신화의 인물인 양사장은 왜 그리 맞고 다니는지 안쓰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호모가 되어버린 건달도 그렇고. 말과 사랑에 빠진 건달도 그렇다.
20억 상당의 다이아몬드, 그리고 35억상당의 종마, 여기에 호랑이까지. 이것들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한판 칼부림. 그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모두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올라탄 이들. 이들이 만들어가는 그림이 유쾌하다.
아울러, 왠지 씁쓸한 웃음도 짓게 한다. 건달 세계에도 비정규직의 서러움이 있으니 말이다. 집은 클수록 좋고 사무실은 작을수록 좋다는 것이 양사장의 지론이란다. 온전히 시선이 자신에게로만 향해 있는 모습이다. 가정도 이루지 않은 양사장의 집이 크면 클수록 외롭고 쓸쓸함만 커질 텐데, 손을 밖으로 뻗기보단 움켜쥐려고만 하는 인생이라니. 그리고 이런 가치관의 희생양이 바로 비정규직이다. 돈만 주면 언제든 각목 들고 달려올 비정규직 건달들이 뒷골목에 넘쳐난다는 대목은 어째 오늘 한국사회 전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란 미명 하에 오히려 노동력을 착취하겠다는 가진 자들의 논리가 사회 전반을 집어삼킨 한국사회의 모습 말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죽지 않고 살만큼만 임금을 주면, 그 일이라도 감사함으로 달려들 비정규직 노동력이 차고도 넘친다는 가진 자들의 여유를 양사장의 모습에서 보는듯하여 씁쓸하다.
그럼에도 소설은 너무나도 재미나다. 그저 책장을 펼치는 순간 아무런 생각 없이 깔깔거리며 읽고 몸에 힘을 주며 액션을 상상하게 되는 그런 재미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