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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마르탱 파주 지음, 김주경 옮김 / 열림원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프랑스 작가 마르탱 파주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란 제목의 소설집. 이 안엔 7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져 있다. 표지부터 다소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만나게 되는데, 소설에 삽입되어 있는 그림들 역시 대다수 그로테스크하다. 그림만 그런가? 아니다. 소설 내용들 역시 대체로 묘하다. 정말 기괴한 분위기인데, 묘한 매력이 있다. 분명 기괴하지만, 잔잔하다. 기괴함 가운데 유머가 담겨 있고, 기괴함 가운데 안정감이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아무튼 묘하다. 그리고 재미있다.
첫 번째 소설인 「대벌레의 죽음」을 접하면서부터 ‘허걱!’ 하게 된다. 이게 뭐지? 뭐 이런 소설이 있지? 싶으면서도 재미나다. 주인공은 집에서 일어나보니 자신이 살인 피해자가 되어 있다. 형사가 현장 조사를 하며, 멀쩡히 살아 있는 주인공을 살인 피해자로 몰아세운다. 시체가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둥. 당신이 살해당한 증인이 있고, 범인도 자백했기에 당신은 살해당한 게 틀림없다는 둥. 아무리 자신이 살아있음을 이야기하지만, 형사는 꿈쩍도 하지 않고,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이야기하며 살해당한 피해자임을 이야기한다. 멀쩡히 살아 말을 하는데도 여전히 살해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니.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이 시체라 주장될 수 있는 그럴 듯한 근거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 마치 커다란 코끼리를 작은 생쥐라 우김으로 냉장고 속에 집어넣는 경우와 같다. 문제는 실제 그렇게 우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냉장고 속에 들어가게 될 상황이라는 것.
끝내 말이 통하지 않는 형사.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말이 안 통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작가에게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단지 꽉 막힌 형사 한 사람의 문제일까? 어쩌면 이게 공권력의 폭력임을 말하려는 건 아닐까?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이미 소설은 주인인 독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공권력의 폭력을 발견하게 된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조차 시체로 몰아세울 수 있는 뻔뻔함과 실행능력은 어쩌면 오늘 우리 주변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책 제목과 동명인 단편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에서는 자신의 이름, 자신이란 존재에 대한 책임보다는 익명의 존재로 살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게 된다. 「멸종 위기에 처한 남자」에서는 심각한 사회적 아이러니는 발견하게 된다.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이 호모사피엔스가 아닌 멸종된 줄 알았던 종족이라는 생물학계 권위자들. 이로 인해 하루아침에 정부의 보호대상이 된 주인공. 멸종위기의 희귀종의 인간을 보호한다면서 오히려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강요하게 되는 정부. 여기에 자유를 되찾아 준다며, 주인공을 보호의 감옥으로부터 탈출시켜 무인도에 유배시켜버리는 자들. 어디 하나 정상적이지 않다. 어쩜 오늘 우리 사회 군상이 이와 같은 것은 아닐지. 본질을 잊고 주변의 것들에 집착하는 비정상적인 군상들 말이다.
「평생직장에 어울리는 후보」는 학벌 좋은 한 사람이 직업소개소 상담실에 찾아와 범죄자가 되길 원하는 이야기다. 상담자는 끝내 범죄자가 될 자질이 없다며 반려하고. 주인공은 끝내 범죄자가 되겠노라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고. 그런데, 왜 이렇게 범죄자가 되려는 걸까? 그건 한번 범죄자가 되면 영원한 범죄자가 되기 때문. 다시 말해 평생직장을 갖기 위한 것.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비꼬는 것이 아니겠나. 백세 시대를 맞으며, 평생직장을 찾아 기웃거리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범죄자를 꿈꾸는 이 사람의 모습 속에 투영되어 있지 않을까.
「내 집 마련하기」는 관계의 단절 속에서 오히려 자유함을 누리고, 자신의 내면 속으로 함몰되어 가는 자발적 사회적 외톨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함께’보다는 나 ‘혼자’가 더 행복한 현대인의 모습을.
「벌레가 사라진 도시」는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사라졌다. 처음엔 모두 환호했다. 더럽고 귀찮은 벌레들이 사라졌으니, 하지만, 점차 심각해진다. 벌레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 동물들이 사라진다. 결국 도시에 심각한 위기가 초래할 것이라 여긴 사람들도 빠져나가고. 동물들이 사라진 이유는 뭘까? 작가는 말한다.
동물들이 우리를 버리고 떠난 까닭은 그들이 보기에 인간이 사귀어선 안 될 존재가 되었기 때문임을 알았다. 동물들이 미리 감지하고 피해 달아났던 그 위험,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는 그 위험은 바로 우리 자신, 곧 인간이었던 것이다.(171쪽)
오늘 우리는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위험, 무서움은 바로 내가 만들고 있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벌레마저 그 위험성을 감지하고 피할 위험한 인간들이 되어버렸음에 부끄럽다.
마지막 이야기 「실업자가 된 알베르」 역시 괴상하며 재미나다. 실업자가 되어 버린 알베르는 혼자 집안에서만 살아가다가 몸만 비대해지는 폐인이 되어간다. 그러던 알베르는 어느 날 이상한 생각을 한다. 이 세상은 온통 위험으로 가득하다고. 세상엔 온통 살인의 위협이 가득하다고. 그 모든 위험과 자신이 싸워 이겨야겠노라고. 다소 싸이코와 같은 접근을 하며, 집안의 모든 위험 요소들과 싸워 제거해나가며 승리한다. 그리곤 그런 장면들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남겨놓고. 이제 집안의 위험을 모두 해체한 그는 밖으로 나간다. 밖으로 나간 그를 맞은 위험 요소는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대형 트럭. 이 괴물이야말로 살인과 위험의 대명사. 알베르는 결국 이 괴물과 싸워 승리한다. 무려 네 시간에 걸쳐 괴물을 모두 해체한 것. 물론, 그 현장 앞에 승리자의 모습으로 사진을 남기고. 이렇게 그는 정신병자가 되어 간다.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만들어 놓은 사진들이 전시회에서 놀라운 반향을 일으키고. 그는 이제 세상의 모든 위험 요소를 해체하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수많은 위험 요소들을 해체하고 사진을 찍으며.
7편의 단편 하나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다. 아니 평범한 내용이 없다고 해야 할까? 때론 괴기스럽고 때론 황당한 이야기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을 읽어가는 가운데 묘한 매력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어쩌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야말로 이처럼 괴상한 모습임을 작가는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마르탱 파주라는 작가의 매력을 물씬 느끼게 해준 단편소설집이다. 작은 단편소설집이지만, 그 안에 담겨진 기괴함은 결코 작지 않다. 아울러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독특한 소설집. 강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