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의 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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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일본 미스터리 작가 가운데 단연코 히가시노 게이고는 손가락에 꼽힐 게다. 그만큼 고정 독자들을 가지고 있는, 한 마디로 믿고 볼 수 있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 작가의 신작(?) 『천공의 벌』이 나왔다. 사실 신작은 아니다. 1995년 작품이니 말이다. 암튼 이번에 새롭게 번역 출간되었다. 번역 역시 믿고 볼 수 있는 김난주 번역가의 번역이다.

 

소설이 더욱 관심을 끄는 이유 중에 하나는 소재가 핵발전소에 대한 테러 위협이기 때문이다. 마치 십 수 년 후인 2011년 일본 대지진을 예고하기라도 했듯이 말이다.

 

어느 날 니스키 중공업에서 군사용으로 개발한 신형 헬기가 도난당하게 된다. 그리고 잠시 후 헬기는 ‘신양’ 원자력 발전소 위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헬기를 훔친 범인은 ‘천공의 벌’이라는 이름으로 각계에 팩스를 보낸다. 바로 이런 문구의 팩스를.

 

- 현재 가동 중이거나 점검 중인 원전을 모두 사용 불능 상태로 만들 것. 구체적으로 가압수형 원전은 증기 발생기를, 비등수형 원전은 재순환 펌프를 파괴할 것.

- 현재 건설 중인 원전은 건설을 중지할 것.

- 상기 작업 상황을 전국 네트워크의 텔레비전 방송으로 중계할 것.(66쪽)

 

한 마디로 일본 내에 있는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폐기 처분하라는 것. 만약 그렇지 않으면 헬기를 발전소 위에 추락시키겠단다. 그리고 이 헬기는 원격 조정되고 있다. 헬기에 실린 연료는 앞으로 10시간. 길어도 10시간 후엔 헬기는 자동으로 원자력 발전소 위에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헬기에는 폭탄을 싣고 있단다. 만약 헬기가 떨어지게 된다면 엄청난 피해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뿐 아니라 범인은 헬기가 떠 있는 ‘신양’ 원자력 발전소는 결코 정지시켜서는 안 된다고 한다. 피해를 더욱 키우기 위해.

 

과연 이런 절체절명의 시간 동안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할까? 선택의 순간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헬기 안에는 니스키 중공업 한 연구원의 아들이 타고 있다. 이에 연구원은 ‘신양’으로 가게 된다. 과연 아빠는 아들을 구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할리우드 가족주의 영웅의 탄생을 기대하진 마시길. 소설은 전형적인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소설을 읽는 가운데, 범인이 누구인지는 밝혀진다. 그러니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기보다는 범인은 왜 이런 일을 벌여야만 했는가? 어떻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관심해야 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선 원자력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친다. 과연 원자력이 안전한가? 물론 정부당국은 안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럴까? 작가는 소설을 통해 말한다. 원전 정책은 이미 수많은 작업인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아울러서 이런 위험이 절대 없을 것이라 말하고, 당사자들 역시 믿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고 말이다. 이것은 이미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 원전의 위험을 알고 원전을 모두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작가가 하는 걸까? 아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첫 번째는 원전은 나와 상관없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원전의 안전도 그렇고, 원전으로 인해 우리가 전기의 편리함을 누리고 있는 것도 그렇다. 그러니 누구도 원전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말하고 있다.

 

여기에 이런 테러를 통해, 원전의 ‘절대’안전은 존재하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울러 그렇다고 해서 원전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의 노력마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됨을 작가는 이야기한다. 바른 정책을 꾸려나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지, 자신이 서 있는 땅 위에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세상에는 없으면 곤란하지만 똑바로 바라보기는 싫은 것들이 있다고. 원전 역시 그와 같은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물론, 이 책 『천공의 벌』은 이처럼 사회적 문제를 미스터리 소설의 형식을 통해 독자들에게 던져주는 사회파 추리소설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심각하게 접근할 것만은 아니다. 그저 재미있게 읽으면 된다. 675페이지에 이르는 다소 방대한 분량이 쉽게 읽혀지니 말이다. 게다가 엄청난 재앙을 앞두고 있는 그 위기감이 주는 서스펜스 역시 소설의 큰 재미중에 하나다. 그러니, 그저 소설에 몰입하여 미스터리가 선사하는 선물을 누리면 된다.

 

책의 띠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이 소설을 아베 총리가 읽었더라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없었을지 모른다.”

 

정말 읽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게다. 이 책을 읽었더라도 여전히 원전 사고는 일어났을 게다. 세상을 향한 건강한 통찰력과 견고한 윤리성을 잃어버린 관료제의 생태가 그렇기 때문이다. 효율만을 좇을 게 분명하니 말이다. 그러니 아베 총리가 이 소설을 읽을 필요는 없다. 문제는 많은 독자들이 읽고 무관심에서 깨어나는 거다. 이것이야말로 작가가 헬기를 원자력 발전소 위에 띄운 목적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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