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인
진바람 지음 / 밥북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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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시집 제목이 눈길을 끈다.

 

『잡상인(雜想人)』

 

잡다한 생각이 많은 사람이란 뜻이겠다. 시인의 자유로운 생각들을 시집 안에 실린 시들에 담았음을 느끼게 해주는 제목이다. 시인은 말한다. 자신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보다는 생각, 그리고 생각을 글에 담는 것이 더 익숙하다고. 이런 시인의 잡다하고 많은 생각, 깊은 사유의 결과물들이 여기 이 시집에 녹아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젊은 시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젊음의 패기와 열정, 희망 가득한 설렘 등의 느낌보다는 패배주의, 절망, 좌절, 부서짐의 감정이 시에 잔뜩 녹아 있다는 점이다. 때론 염세적이기도 하고, 힘겨운 삶의 푸념, 넋두리를 만나게도 된다. 이는 아쉬움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오늘 우리 시대의 힘겨움, 특히 젊은이들을 짓누르는 박탈감을 오롯이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오늘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음을 말이다.

 

또 한편으로는 젊은 감각이 통통 튀는 시들 역시 만나게 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선녀와 사기꾼」이다. 전래동화로 어린이들이 즐겨 듣고 읽는 이야기. 하지만, 실상 그 순박한 산골 청년 사냥꾼은 결코 낭만적 주인공이 아니다. 시인은 사냥꾼이야말로 교활한 사기꾼에 불과하다 말한다. 그렇다. 사실 나무꾼은 사기꾼 정도가 아닌 여성 인권을 짓밟는 약탈혼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못된 사냥꾼을 향한 다소 유머러스하면서도 엽기적인 시를 만나는 재미도 있다.

 

세상을 향한 반항을 느낄 수 있고, 다소 해학적인 시도 만나게 된다. 어쩌면 반항이야말로 젊음의 에너지이니 말이다.

 

솔직히 시인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모르겠는 시들도 없진 않다. 하지만, 여느 시집도 모든 시들이 독자를 만족시킬 순 없다. 아무리 유명한 시인의 시집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시를 접하고 마음을 울리는 시 한 편 만나면 되지 않을까? 시인의 첫 시집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장차 시인의 걸음을 기대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시인의 시 한 편을 적어본다.

 

끝없이 펼쳐진 이 길은 // 떠나간 당신을 위한 것인가 //

혼자 남아 바보가 된 나는 // 쉬이 한 발조차 내딛지 못하네 //

사람은 어리석고 연약한 존재 // 부득이 강하다 애써 믿으며 //

고르지 않은 이 길을 가려하니 // 무소의 뿔도 혼자서 가듯 이제 //

내 상처와 같이 나아가야 할 때 // 먼 훗날 혼자 남겨진 발자국은 //

서투를지 몰라도 서두르지 않으리

< 길 > 전문

 

이 시처럼 어쩌면 시인의 시어들이 조금은 서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걸어갈 시인의 그 문학의 길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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