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대동여지도
이재운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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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한 가지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 지 우리는 잘 안다. 하지만, 알면서도 쉽게 몰입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흔히 말하듯 뭔가에 미치는 것이 쉽지마는 않다. 개인적인 나태함 때문일 수도 있겠고,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내몰려 그럴 수도 있겠다. 물론 누군가는 열정보다 눈앞에 보이는 유익이 더 크게 보여, 가슴 뛰게 만드는 그것을 내몰아 버릴 수도 있겠고. 하지만,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뭔가에 미쳤던 사람들, 자신이 꿈꾸는 바를 향해 끝내 나아갔던 사람들의 족적이야말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역사 속에 남기게 마련이다.

 

여기 그런 한 사람이 있다. 지도에 미쳤던 사람.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 일로 인해 뭔가 커다란 유익을 얻는 것도 없었건만(오히려 이 일은 그와 그의 가정에 커다란 상처만을 안겨준다.). 제대로 된 지도가 없어 삶 속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다양한 모습에 자신의 일생을 지도 만드는 일로 내몰았던 사람. 바로 고산자 김정호다.

 

이재운 작가의 신작소설 『김정호 대동여지도』는 고산자 김정호의 지도 제작을 향한 열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재운 작가의 소설은 술술 읽혀 좋다. 아울러 한 인물을 오롯이 만나게 해주기에 설렘이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고산자 김정호란 인물을 알아가게 되고, 만나게 되는 행복이 있다.

 

중인의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학문에 대한 목마름은 그러한 신분의 한계마저 뛰어넘었던 사람. 진정한 학문이란 그저 방 안에 들어 앉아 하는 것이 아니라, 널리 백성들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며 그 부족한 것을 메워나가는 것이라 생각하며 실학을 붙잡았던 사람. 지도는 발로 그리는 것임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발로 조선팔도 한반도의 지도를 완성한 사람. 국가의 어떤 도움도 없이, 아니 때론 첩자라는 오해를 사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를 맞아 가면서도 조선의 지도를 꿈꿨던 사람. 바로 그 고산자 김정호의 열정을 물씬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다.

 

공자왈 맹자왈 하면서 양반 상놈 찾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나 할까요? 진정으로 학문을 하는 사람은 상투 틀고 방 안에만 들어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널리 백성들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일까 살피어 그 부족한 것을 메워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159쪽)

 

이 나라 땅덩어리를 직접 답사하고 발로 지도를 그리는 작업은 그야말로 산 공부였다. 정호는 다니면 다닐수록 지도란 단지 땅의 모양을 그리는 것만이 아니라, 이 나라의 역사와 백성의 삶이 녹아있는 생생한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164쪽)

 

고산자의 삶은 한계에 매어있던 삶이 아닌, 한계를 뛰어넘는 삶이기에 위대하다. 홀로 그 길을 걸어갔던 길이기에 위대하다. 자신의 유익이 아닌, 백성의 유익을 품고 이루어낸 업적이기에 위대하다. 물론, 그 길을 감으로 인해 가족의 힘겨움을 돌보지 못한 아픔이 있지만(가족을 희생으로 한 꿈이 옳은지는 차치하고.), 어쩌면 이런 아픔마저 감당한 길이었기에 더욱 위대할 수 있다. 이런 멋진 고산자를 일부나마 만나게 해준 작가에게 고맙다.

 

고산자 김정호처럼 뭔가 아름다운 일, 건강한 일에 미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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