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퍼 - 제14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탁경은 지음 / 사계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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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경은 장편소설 『싸이퍼』는 제14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먼저, ‘싸이퍼’란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궁금하다. 소설 속에서 이 단어를 설명하는 구절이 있어 적어본다.

 

싸이퍼는 래퍼들이 자기 이야기를 비트에 맞춰 프리스타일 랩으로 표현하는 거다. 싸이퍼는 주고받는 것이고 우정이고 존중이고 격려다. 사람들과의 교류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다.(189쪽)

 

자, 이 구절을 통해, 이 소설이 무엇을 이야기할지 조금은 알 수 있다. 먼저, 이 소설은 청소년들의 자기주장, 자기 이야기를 말 하고 있다. 타인에 의해 끌려가는 삶이 아닌 자신의 생각,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소재는 바로 힙합이다. 힙합을 통해 발산되는 젊음, 아울러 힙합에 대한 열정을 소설은 보여준다.

 

소설의 화자는 둘이다. 힙합을 위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힙합의 꿈을 키워나가는 정혁(제이제이). 작은 체구이지만 힙합을 향한 열정만은 최고인 중2 청소년 도건(공부도 제법 잘 한다.). 이 두 화자가 교차적으로 스토리를 이어나가는 방식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앞 구절의 싸이퍼에 대한 설명처럼, 싸이퍼는 자기 이야기를 표현하는 거다. 다시 말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가슴을 뛰게 하고 뜨겁게 하는 그것을 소설은 이야기한다.

 

주인공 정혁과 도건은 힙합을 사랑한다. 힙합을 할 때 뜨거워진다. 그렇기에 주변의 반대와 만류에도 힙합의 길을 걷는다. 이것이 싸이퍼다. 자신이 걷고 싶은 그 길을 걷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며, 그 길을 걷는 것이 싸이퍼다. 그 길을 걸을 때 포기할 이유가 수백 가지나 될 지라도, 여전히 가슴 뜨겁게 하는 그것을 붙잡고 걸어가는 삶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싸이퍼겠다.

 

소설은 이처럼 정혁과 도건이 힙합의 꿈을 안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힙합을 하는 것만이 젊음이고 열정이라는 말은 아니다. 자칫 힙합만이 젊음이고 열정이라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길도 있다. 소설은 이것 역시 아우른다.

 

우린 꿈이나 진로를 이야기할 때, 자신이 잘하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나아가라 말한다.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을 찾으라고. 하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정말 좋아하지만, 전혀 잘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목숨을 걸고 그 길을 걷는다 할지라도 잘 할 수 없다면. 아무리 해도 잘할 수 없고, 즐길 수 없다면. 그럼에도 그 길을 걷는 것이 젊음이고 열정이라 말할 수 있을까?

 

소설 속에서 힙합을 좋아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학을 공부하고, 시험을 치르고 직장인이 된 등장인물이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힙합을 좋아했지. 그런데 너만큼 좋아하진 않더라고. 힙합을 잘했지. 그런데 수학만큼 잘하진 않았고. 그래서 더 잘하는 걸 택한 거야... 세상엔 좋아하는 걸 기어이 해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냥 잘하는 걸 하면서 사는 게 더 나은 사람도 있는 거야. 난 너처럼 뜨겁게 랩을 사랑할 자신이 없었거든.(89-90쪽)

 

또한 주인공 도건의 절친 지욱(언제나 반에서 1등을 하지만, 전교 1등을 하지 못한다며 자신을 언제나 공부로만 몰아세우는 캐릭터.)을 향한 도건의 독백 역시 이와 유사하다.

 

지욱이가 부모에게 끌려 다닌다고 생각했어. 지욱이는 충분히 만족하는데 지욱이 부모가 만족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어. 지욱이 스스로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더 좋은 성적을 간절히 원하는 줄은 몰랐어. 공부에 목숨 거는 사람들은 노예처럼 어른들에게 끌려 다닌다고만 생각했어. 그동안 지욱이에게 내 기준과 내 생각을 강요했던 거야. 그것도 모르고 번번이 잘난 척을 했던 거야. 그런 나를 지욱이는 참고 견뎌 준 거야.(201쪽)

 

여기에서 싸이퍼의 또 다른 정의에 눈을 돌려본다. 싸이퍼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이 아니다. 다시 그 뒷부분을 적어본다. “싸이퍼는 주고받는 것이고 우정이고 존중이고 격려다. 사람들과의 교류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다.”

 

내 열정, 내 선택, 내 꿈만이 옳은 것은 아니다. 타인의 꿈, 타인의 주장, 타인의 소리도 존중하고 이해함이 싸이퍼다. 분명, 소설은 힙합을 이야기한다. 힙합을 통해, 뜨겁게 꿈을 품고 나아가는 젊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힙합을 통해, 젊음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힙합만이 젊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힙합만이 젊음이고 열정은 아니다. 어쩌면 범생이처럼 공부만 하는 것 역시 젊음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고, 또 하나의 열정일 수 있다. 이것을 알고 깨닫고, 그런 모습까지 이해하는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싸이퍼다.

 

이렇게 소설은 젊음을 이야기하고, 타인의 강요가 아닌 자신의 가슴에 따르는 젊음을 이야기한다.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과 다른 삶의 방식, 열정, 젊음을 향해서도 눈을 돌리게 한다. 물론,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 가슴 뛰게 하고 뜨겁게 하는 그것을 붙잡게 하며. 그렇기에 힙합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이라 할지라도 읽으면 좋겠다. 꿈과 열정에 몸살을 앓는 젊은이들에게도 좋은 소설이 되겠다. 아울러, 자신의 열정, 꿈에 대한 회의를 갖는 이들 역시 누구나.

 

끝으로 소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정혁의 독백을 적어본다.

 

나는 요즘 성공과 실패, 진짜와 가짜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 무엇이 진정한 성공이고 무엇이 진정한 실패일까. 사회가 내게 강요하는 성공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야. 그렇지만 남들이 아무리 하찮다고 무시해도 나에게 중요한 성공이 따로 있다면 그것 지켜 내고 싶은 거야.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미리 겁내지 않으려고. 그리고 내 젊음에 요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요구할 거야. 나다운 삶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할 거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것을 느끼느냐. 그것들이 삶을 채우도록 나 자신에게 진실할 거야.(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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