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의 한국 현대사 - 이완용에서 노덕술까지, 나라를 팔아먹고 독립운동가를 때려잡은 악질 매국노 44인 이야기
정운현 지음 / 인문서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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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 청산되어야 할 역사는 여전히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친일의 역사 아닐까? 하지만, 그 청산이 쉽지마는 않다. 여전히 친일하였던 자들 후손들이 한국사회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 땅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방송매체만 보더라도, 보수 신문 메이저 삼사가 모두 친일의 당사자가 세우고 여전히 그 후손들이 운영하고 있으며, 국영방송국 이사장이 친일의 후손이다. 그러니 방송매체가 이런 친일의 역사 청산에 기사 한 줄 제대로 쓰지 않으리란 것은 명확하다. 교육계 역시 만만찮다. 친일 당사자가 세운 대학교가 민족주의 대학으로 탈바꿈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이기도 하며, 수많은 여성들을 위안부로 몰아세운 대표 친일파가 여전히 여자대학을 대표하는 대학에 버젓이 동상이 세워져 있으니 말이다. 정치인들 가운데도 많다(이 부분은 많을뿐더러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 국가 최고 책임자들 역시 친일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말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깜짝 놀랄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여전히 한국 사회는 친일의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친일 당사자의 후손들은 여전히 친일의 허울을 벗어던지지 못해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에겐 친일논란이 그저 불편할 뿐이다. 우리 역시 여전히 친일문제를 온전히 청산하지 못했기에 자유롭지 못하다. 친일의 잔재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무능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하고.

 

여기 우리를 조금은 자유롭게 할 책이 있다. 정운현 작가의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는 이러한 우리에게 친일파 44인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1999년에 나온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개정판으로, 다섯 사람의 이야기를 더 추가하였으며, 그간 새롭게 달라진 내용들이 개정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아니면 모두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어느 친일파 후손의 논리 주장처럼 우리 모두 어쩌면 크고 작은 친일의 행위를 보였던 이들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자신도 모르게 친일을 한 일들이 우리 각자의 선조들에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소극적 친일이나 타의에 의한 친일, 무의식적 친일을 말하지 않는다. 자발적이고 적극적 친일, 의도적 친일을 행한 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그 출발이 억압에 의한 시작일 수도 있겠다. 또는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켜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서의 친일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결국엔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친일의 행위를 한 이들, 그들의 잘못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친일의 행위를 하여 쌓은 것들이 해방이후에도 여전히 그들과 그 후손들에게 대물림 되었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일제의 하수인으로 활동한 것들이 문제가 되기는커녕 해방이후 정부에 의해 그 활동들을 경력으로 높게 평가받아 친일의 덕을 보며 탄탄대로를 걸었고, 결코 허물어지지 않을 그들만의 성을 쌓은 자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금수저 인생이 아닌 서러움과 부러움 때문에 화가 나는 것 아니냐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친일에 대한 묵인은 공의의 상실이기 때문에 그렇다. 무엇보다 친일로 축적한 것이 금수저가 되어 대물림 되는 사회라면 이는 우리 사회에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기에 그렇다.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조명하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많은 경우 독립운동을 하느라 힘겹게 된 삶의 무게가 그 후손들에게 대물림 된 경우를 왕왕 보게 된다. 옳은 일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이 보상받기는커녕 가난의 굴레를 여전히 쓰고 있는 사회.

 

이는 암암리 우리들에게 옳을 일을 하면 망하고, 조국이건 뭐건 상관치 않고 센 놈 편에 붙으면 대를 이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게 된다. 그렇기에 친일의 역사를 바르게 청산하는 일은 괜스레 과거를 끄집어내어 평지풍파를 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라, 공의를 바로 세워나가는 것이며,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세워나가는 일인 게다.

 

또 하나 화가 나는 것은 친일을 행한 이들과 그 후손들의 반응이다. 친일을 하였음에도 해방 후 국가유공자 대접을 받았던 몰염치한 모습. 친일의 역사를 도리어 왜곡하여 민족주의자라는 둥, 초기의 독립행위를 들어 독립운동가라는 둥, 겉으로 드러난 친일은 실제 독립을 위한 위장이었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왜곡과 망발을 일삼는 파렴치한 모습을 책 속에서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정말 몰염치한 인생들이며, 파렴치한 인생들이다.

 

물론, 어느 친일파의 후손처럼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선조의 잘못을 후손이 사죄하고 용서를 비는 것은 마땅한 모습이 아닐까. 심지어 그 친일의 행위로 얻은 이점들을 자손들이 누렸을 때엔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가슴 한편 훈훈해지며 희망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여기 적힌 44인 가운데는 친일의 행위를 본인 스스로 사죄하며, 진실한 참회를 행했던 분들도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극히 적지만 말이다. 아울러 그 후손이 자신 아버지의 친일행적을 사죄한 경우도 있고. 이처럼 잘못에 대해 시인함과 역사 앞에 사죄하는 행위가 역사 청산이다. 이러한 사죄와 역사 청산이 이루어질 때, 우린 친일의 과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친일파를 향한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드는 또 하나의 생각은 독립운동가나 민족주의자로 시작하여 친일로 끝을 맺은 이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물론, 그 당시의 시대상이 그들을 그렇게 몰아세웠을 수 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의기를 지켜내지 못하고, 도리어 변절하여 더욱 일제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였던 행위들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아울러 이런 모습은 오늘 우리를 돌아보게도 한다. 아무리 옳은 일을 했던 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바로 서야 진짜다. 끝까지 바로 서지 못한다면, 그전에 보였던 그 어떤 모습도 허상에 불과하게 된다. 나의 삶도 끝까지 바로 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나 역사 앞에 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면. 이를 위해 꼭 한 번 읽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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