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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야방 : 권력의 기록 3 ㅣ 랑야방
하이옌 지음, 전정은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8월
평점 :
『랑야방』3권이 나왔다. 제법 기다릴 줄 알았더니, 2권 출간 후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출간되어 반가운 마음에 구입하여 단숨에 읽게 된다.
2권 마지막 장면에서 적염군의 부장이자 생존자 가운데 한 사람인 위쟁이 붙잡혔다. 위쟁을 끌어들인 것은 예왕의 함정임을 알지만, 정왕과 매장소는 위쟁을 구출할 계획을 세우게 되고 이제 그 계획을 실현하는 것부터 3권이 시작된다.
3권에서는 이제 매장소가 돕는 정왕이 드디어 황위 쟁탈 싸움의 승자로 등극하게 된다. 소설 『랑야방』에는 「권력의 기록」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은 권력을 좇는 피 말리는 암투를 그려내고 있다. 때론 모략과 암투가 난무하다. 그럼에도 이런 권력 다툼을 독자들은 오히려 응원하게 된다. 왜 그럴까? 단지 주인공들이어서? 아니다. 이들 정왕과 매장소가 추구하는 권력은 권력을 위한 권력이 아니다. 진정한 정치가 무엇인지를 아는 이들의 싸움이기에 그렇다.
이들 정왕과 매장소가 황위 쟁탈 싸움에서 승리하길 원하는 건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더러운 정치 싸움으로 쇠락해가는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충심에서 권력을 추구한다. 진실을 붙잡고, 진실만이 살아남는 깨끗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몸부림으로서의 권력추구다.
이런 진실의 핵심은 다름 아닌 적염군 반란 사건. 당시 태자였던 기왕의 가문과 적염군 원수였던 임섭(주인공 매장소의 아버지)의 가문, 그리고 적염군 전군을 반란군으로 몰아세워 전멸시켰던 사건.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매장소의 몸부림이다. 매장소가 바로 당시 촉망받던 소년장군이자, 정왕의 친구인 임수이기에.
이처럼 진실을 추구하는 권력은 아름답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보존을 위한 권력추구는 추하다. 사실 소설 속의 황제가 전형적으로 후자의 모습을 보인다. 소설 마지막 부분 황제와 매장소의 대화야말로 권력 앞에 서로 다른 자세를 보이고 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전하가 짐의 천하냐, 소경우(죽은 기왕, 황제의 아들)의 천하냐?”“천하는 모든 사람의 천하입니다.”
“백성이 없으면 천자가 무슨 소용이며, 사직이 없으면 황제가 무슨 소용입니까? 병사들이 전장에서 피로 목욕을 하며 싸울 때 폐하께서는 멀리 황궁에 앉아 조서만 내리시면서, 조금이라도 어기는 기미가 보이면 꺼리고 의심하며 무정하게 칼을 휘두르셨습니다. 폐하께서는 높디높은 권력만 마음에 두실 뿐, 단 한 번이라도 천하를 마음에 두신 적이 있으십니까?”(505쪽)
천하가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황제, 그리고 백성의 천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매장소. 과연 오늘 정치인들은 권력이 누구를 위한 것이라 생각할까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소설 모든 내용의 밑거름이 되는 적염군 반란 사건의 원인 또한 이 자리보존에 있다. 자신이 붙잡고 있는 권력을 잃고 싶지 않던 자들이 거짓 증거를 만들어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이들을 사지로 몰아세운다. 아울러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무엇보다 황제 역시 그런 자이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자신의 자리보존이 정치의 목적인 황제. 그래서 비록 일어나지 않은 모반이라 할지라도 모반의 가능성이 있는 자라면 비록 자신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미리 싹을 잘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천하 위에 군림하고 있기에 천하는 흔들리게 되는 것.
역심을 품기만 하면 언제든지 모반을 할 수 있다? 겨우 그것 때문에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았단 말이오? 천자의 의무는 만백성을 보살피는 것이고, 천자의 위엄은 인덕에서 나오는 것이오. 모반할 생각도 없는데 모반할까봐 의심하다니. 천자의 포용력이 겨우 그 정도인데 그 밑에 있는 신하들은 어떻겠소?(315쪽)
실제 모반해서가 아니라, 모반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제거하려는 의도와 시도. 이런 모습이 과연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걸까?
사지에서 다시 살아나 뼈를 다시 맞추고, 몸 껍데기를 벗겨내 새로운 모습, 연약한 병자의 몸으로 되살아난 매장소, 그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펼치는 권력 다툼을 그려내는 무협소설. 그 긴 여정을 마치며 소설의 여운에 잠시 젖어 본다. 작가 하이옌의 기존 작품들도 찾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