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이 온다
이정하 지음 / 문이당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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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최고의 ‘감성 시인’이라 불리는 이정하 시인이 12년 만에 새 시집을 냈다. 과연 어떤 시들을 만나게 될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시집을 펼친다. 역시 시인의 시들은 어느 메마른 가슴이라 하더라도 촉촉이 적시기에 부족함이 없다. 시인의 시를 통해 어느새 가슴은 다양한 감정으로 채워진다.

 

연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대지는 뜨겁게 달궈져 하루 종일 허덕이게 만드는 나날들이다. 이런 날씨라면 마땅히 누군가 곁에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힘겹다. 고 신영복 교수의 말처럼 누군가 내 곁에 있음이 축복이 아닌 저주로 느껴지는 계절이다. 이런 계절, 그 무더위의 허덕임 속에서도 시인의 시들은 가슴을 적신다.

 

지독한 무더위가 모든 감정을 태워버렸으리라 싶은 나날임에도 시인의 시는 가슴을 촉촉이 적시기도 하고, 가슴을 말랑말랑 어루만지기도 한다. 아무래도 ‘감성 시인’답게(?) 사랑에 대한 시들이 많다. 이 시들을 읊조리다보면, 시인의 감정이 금세 내 감정이 되곤 한다. 서로 다른 상황의 시들임에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게 시인이 가진 힘이다. 이정하 시인의 시들이 가진 가장 큰 힘은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공감은 삶에 기반한다. 시인은 삶의 모든 것들을 노래하기 때문에 독자 역시 공감하고 그 감정에 금세 물들게 된다. 아무래도 삶의 가장 큰 축이 사랑이기에 시인은 그토록 사랑을 노래하나보다. 그러니 그저 사랑에 대한 노래라기보다는 삶의 노래라 말하고 싶다.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사랑 노래가 너무 많아, 어느 것 하나 ‘이거다.’ 고를 수 없음이 도리어 흠 아닌 흠으로 느껴지는 시집. 그만큼 주옥같은 사랑 노래들이 가득한 시집이다. 그저 아무 곳이나 펼쳐 들고 시를 읊조리다보면 가슴은 금세 시인의 노래, 그 색깔로 물들게 된다.

 

그렇다고 사랑 노래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이번 시집에선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기억, 추억, 애절함 등을 담아낸 노래들도 여럿 눈에 띤다. 뿐 아니라 삶의 자세에 대한 노래도 몇몇 눈에 들어와 오히려 이 시 가운데 몇몇 적어 본다.

 

우린 삶의 막다른 길에 설 때마다 쉽게 상황을 리셋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한다. 다시 새로운 길을 발견하길 꿈꾸며 모색하기도 한다. 시인 역시 그랬을까?

 

삶이 말이야 / 단추 같은 것이라면 좋겠어 //

어쩌다 잘못 채워져 있을 때 / 다시 끌러 새로 채우면 되는

< 단추 > 일부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하지만, 삶은 그럴 수 없다. 그렇기에 시인은 “다시 채울 수 없다고 / 억지로 잡아떼지 마”라고 한다. 단추 잘못이 아니란다. 잘못 채운 자신을 탓해야 한단다. 대신 시인은 지금 가고 있는 그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갈 것을 촉구한다.

 

길이 끝나는 곳에 / 또 다른 길이 있다고 믿지 마라 //

강물도 흘러가다 멈추고 / 새들도 날아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

길이 끝나는 곳에는 / 끝만 있을 뿐 새로운 시작은 없다 //

지금 가는 길에 충실하지 않고선 / 또 다른 길은 영영 없다

< 지금 가는 길이 최선이다 > 전문

 

그렇다.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이 길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설령 또 다른 길에 들어섰을 때, 또 다른 어려움과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을 게다. 그러니, 지금 걷는 길에서 최선을 다하자.

 

바람이 분다는 것은 / 헤쳐 나가라는 뜻이다 /

누가 나가떨어지든 간에 / 한 판 붙어보라는 뜻이다 //

살다보니 바람 아닌 게 없더라 / 내 걸어온 모든 길이 바람길이더라

< 바람 속을 걷는 법5 > 일부

 

바람 아닌 게 없는 삶, 여전히 수많은 바람에 흔들리는 삶일 게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지 않기 소망해 본다. 시인의 말처럼 “바람이 분다는 것은 / 헤쳐 나가라는 뜻”이니 말이다. 오히려 당당히 날 뒤흔드는 바람과 한판 신나게 붙어봐야겠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인생의 봄이 살며시 찾아오지 않을까.

 

봄이 와서 꽃 피는 게 아니다/ 꽃 피어서 봄이 오는 것이다//

긴 겨울 찬바람 속/ 얼었다 녹았다 되풀이하면서도/

기어이 새움이 트고 꽃 핀 것은// 우물쭈물 눈치만 보고 있던/

봄을 데려오기 위함이다// 골방에 처박혀 울음만 삼키고 있는 자여,/

기다린다는 핑계로 문을 잠그지 마라/ 기별이 없으면 스스로 찾아 나서면 될 일,/

멱살을 잡고서라도 끌고 와야 할 누군가가/ 대문 밖 저 너머에 있다//

내가 먼저 꽃 피지 않으면/ 내가 먼저 문 열고 나서지 않으면/

봄은 오지 않는다/ 끝끝내 추운 겨울이다

< 봄을 맞는 자세2 > 전문

 

아름답고 감성 충만한 시뿐 아니라, 이처럼 멋진 삶의 자세 역시 노래하는 시인의 시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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