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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친구의 고백 ㅣ 소설Blue 5
미셸 쿠에바스 지음, 정회성 옮김 / 나무옆의자 / 2016년 6월
평점 :
여덟 살 자크 파피에는 고민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모든 사람들이 자크를 마치 없는 사람 취급합니다. 단, 쌍둥이 여동생이자 단짝인 플뢰르, 그리고 엄마 아빠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심지어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조차 자크를 싫어합니다. 자크가 스쿨버스에 미처 오르지 않았는데, 운전기사는 문을 닫아 버리곤 합니다. 수업시간에도 선생님이 질문한 문제를 알아 손을 들었는데도, 선생님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네.’ 말씀하시고요.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자크를 없는 사람 취급합니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답니다. 자크는 플뢰르의 ‘상상 친구’거든요. 자크는 오직 플뢰르의 눈에만 보입니다. 플뢰르가 만든 ‘상상’의 산물이니 말입니다. 이처럼 ‘상상친구’인 자크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풀어나가는 이야기의 방식이 참 기발하고 흥미롭습니다.
미셸 쿠에바스의 장편소설 『상상 친구의 고백』은 장편동화라고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네요. ‘상상 친구’인 자크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과정에 왠지 가슴을 아려 옵니다. 자신을 진짜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자크, 플뢰르의 쌍둥이 오빠인줄 알았던 자크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았을 때의 당혹감은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당혹감이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해집니다.
그럼, 자크는 진짜가 아닌 걸까요? 동화는 말합니다. 비록 상상 속에 존재하는 존재임에도 진짜라고 말입니다.
진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네가 ‘진짜’가 아닌 게 아니야.(95쪽)
자크는 자신이 ‘진짜’ 존재한다면, 누군가의 상상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존재, 자유로운 존재를 꿈꿉니다. 이렇게 자유를 찾는 자크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과연 자크는 자유를 찾게 될까요?
‘상상 친구’는 가상의 존재입니다. 상상이 만들어낸 허구입니다. 하지만, 실존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아이들의 상상이 있는 한 실존하는 존재입니다. 아니, 동화 속에 등장하는 ‘상상 친구’는 자신을 상상해 내는 누군가의 상상이 마르게 된다고 소멸되는 존재는 아닙니다. 다른 또 다른 누군가, ‘상상 친구’를 필요로 하고 상상하는 아이에게로 속하게 됩니다. 그래서 동화 속에는 ‘상상의 재배치 사무실’이 있답니다. 이곳에서 새롭게 어린이를 재배치 받아 새로운 아이의 ‘상상 친구’가 되는 거죠.
‘상상 친구’는 가상의 존재임에도 실존하는 존재이며, 아울러 인격이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상 친구’가 눈에 보이는 분들이라면 여전히 동심을 간직한 맑은 영혼이겠죠? 여러분들에게는 이런 상상 친구가 보이나요? 아쉽게도 전 안 보이네요.^^
자유를 찾아 여행을 떠난 자크는 결국엔 자유를 찾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는 자크가 처음 생각했던 자유는 아닙니다. 여전히 누군가의 상상에 의해 존재하는 그 한계성을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자크는 여전히 다른 누군가의 상상 친구로 남게 됩니다. 이렇게 여러 아이들의 상상 친구로 존재하면서 자크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합니다. 바로 이런 인정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거죠.
뿐 아니라 커가면서 상상력을 잃어가는 아이들도 자크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자크는 그토록 돌아가고 싶었던 플뢰르에게로 돌아갑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제 플뢰르는 ‘상상 친구’가 필요 없는 나이가 되었고, 플뢰르의 동생의 상상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자크는 알게 됩니다. 플뢰르가 여전히 자신을 기억하고 있음을 말입니다. 이 기억함이 동화를 한 없이 훈훈하고 따뜻하게 만듭니다.
이런 훈훈한 결말은 또한 우리에게 ‘기억’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합니다.
자신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사라지면 그 존재는 누구일까? 주변에 자신의 역할을 생각나게 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존재는 누구일까? 또 후회할 기억이 없거나 자신을 따뜻하게 하는 기억이 없다면 그 존재는 누구일까? 자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다면 그 존재는 무엇일까? 또 어떤 형태를 취할까?(234쪽)
오늘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아울러 우리가 어떻게 소멸되어지며, 또는 남게 되는지를. 그건 바로 ‘기억’을 통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행복한 기억들. 때론 아프지만 소중한 기억들. 이 기억을 통해 우린 누군가를 존재하게도 소멸시키기도 합니다. 오늘 우린 누굴 소멸시키고 있는지, 또 누굴 존재케 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상상 친구의 시점으로 접근함이 참 기발한 동화입니다. 이야기도 재미날뿐더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동화이기도 합니다. 예쁘고 멋진 문장도 많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