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아이, 쿠르트
오이 미에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수요일의 아이, 쿠르트』란 제목의 동화집을 만났다. 동화집 속에 담겨진 6편의 동화들 모두 좋은 동화집이지만, 더욱 독특한 점은 작가에 대한 점이다. 작가 오이 미에코는 실상 니키 에쓰코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고 한다. 1957년 『고양이는 알고 있다』라는 작품으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1981년 단편 「빨간 고양이」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일본 추리소설의 한 획을 그은 작가다.

 

이처럼 추리소설 작가의 동화집이라니 독특하다. 하지만 실상 작가는 동화작가로 등단하였다. 미야자와 겐지(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원작인 「은하철도의 밤」으로 유명하다.) 영향을 받아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백여 편의 동화를 발표했는데, 이 가운데 본명인 오이 미에코란 이름으로 출간된 유일한 동화집이 『수요일의 아이, 쿠르트』라고 한다(본명으로 많은 동화를 써 발표했지만, 동화집으로 나온 것이 유일하다는 의미 같다.).

 

그럼 『수요일의 아이, 쿠르트』에 실려 있는 여섯 편의 동화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수요일의 아이, 쿠르트」는 주인공 ‘나’가 경험한 신비한 이야기를 전한다. ‘나’는 어느 날 하늘색 코트를 입은 남자아이를 보게 된다. 그 후 주인공에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갑자기 우산이 사라졌다 며칠 후 나타나기도 하고, 쓰고 있던 베레모가 사라졌다 며칠 후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바로 쿠르트란 아이의 장난 탓이다. 쿠르트는 수요일에 태어나 수요일에 죽은 아이다(작가 역시 수요일에 태어났다고 한다.). 아직 피어보지 못한 어린아이의 영혼, 그 귀신의 장난을 통해, 주인공은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늘을 날기도 하고, 자신의 잃어버렸던 물건들을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는 즐거움을 맛보기도 한다.

 

「메모아르 미술관」은 신비한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이 그린(실제 그렸다기보다는 분명 그린 느낌을 갖는) 그림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그림들은 메모아르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그림들은 다름 아닌 ‘내’가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추억의 편린들이다. 어쩌면 우리 역시 이런 ‘메모아르 미술관’에 전시될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살아가는 순간들이 그려지고 남게 된다고 할 때, 우리의 삶이 보다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까? 내 인생의 그림이 분노 가득 미움 가득한 그림보다는 따스하고 훈훈한 느낌의 그림이 될 수 있다면. 눈살 찌푸리고 한숨짓게 할 그림보다는 미소 짓게 하고 행복한 느낌을 갖게 하는 그림들을 삶의 순간마다 그릴 수 있다면 좋겠다.

 

「어느 물웅덩이의 일생」은 마치 권정생 작가의 『강아지 똥』을 떠올리게 하는 동화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 같고, 하찮은 물웅덩이에 고인 물에 불과하지만, 이 물에 달빛을 품을 수 있고, 그 아름다움을 누군가에게 비춰줄 수도 있을뿐더러 웅덩이의 물도, 하수도를 흐르는 더러운 물도 모두 수증기로 변하여 하늘로 오를 때는 순수하고 맑은 상태가 됨을 이야기하는 예쁜 동화다.

 

「신기한 국자 이야기」는 상당히 교훈적이고 우화적인 동화다. 나그네 대접하길 즐거워하고, 가난한 이들을 돌아봄을 기뻐하는 매플 영감은 어느 날 나그네 청년에게서 신비한 국자를 선물 받는다. 어느 물건이든 땅에 묻고 국자에 물을 담아 뿌려주면 다음날 그 물건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가 자라는 그런 마법의 국자. 이런 물건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우린 무엇을 묻을까? 누군가는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국자를 사용할 것이고, 누군가는 남들을 향해 더 많이 베풀기 위해 이 국자를 사용할 것이다. 전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동화 속의 못된 왕과 같은 사람이고, 후자를 꿈꾸는 사람은 동화 속의 멋진 매플 영감과 같은 사람이다. 동화는 끊임없이 우리가 후자, 즉 이타적인 삶을 꿈꾸는 인생이 되길 촉구한다.

 

「핏빛 구름」은 반전(反戰) 동화다. 실제 큰오빠가 전쟁에 나가 전사하는 아픔을 경험한 작가는 전쟁의 끔찍함을 잘 그려내고 있을뿐더러 전쟁에 대해, 국가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어느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지만, 국가의 결정에 전쟁으로 내몰린 국민들의 애환. 나라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치르지만 정작 그 나라를 구성하는 국민들을 불행과 슬픔으로 내몰면서 어찌 나라를 위한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대사는 전쟁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력을 드러낸다. 아울러 사랑하는 이를 지켜내기 위해 무찔러야만 할 상대에게도 사실은 지켜내야만 할 이들이 수백 수천이 있음을 기억하라는 대사는 깊은 울림을 준다. 동화 속에서 친구가 된 리리와 파켈 간에 이런 대사가 있다.

 

“리리, 지금의 난 이미 인간이 아니야. 악마야. 사람을 죽이려고 비행병이 된 건 아니지만, 같이 생활하는 전우가 눈앞에서 죽는 걸 보고 있으면, 어떻게 하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적을 죽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안 하게 돼.”

“뭘 위해서지, 파켈?”

“몰라. 나는 몰라. 아니... 그건 분명... 그건 리리를 지키기 위해서야. 리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난 흔쾌히 악마가 될 거야.”

“파켈, 카멜리아의 마을에도 리리는 있어. 수백 수천 명이나 되는 리리가.”(107-8쪽)

 

마지막 동화 「세상 온갖 것들이 담긴 병조림」 역시 아름답다. 철물상에 의탁하여 살아가던 마녀 할멈은 철물상 주인을 위해 수많은 병들 안에 세상의 온갖 것들을 하나하나 담는다. 뚜껑을 열면 그 안에 담겨진 것들을 가질 수 있는 그런 마법의 병들을. 철물상은 이제 부자 되었겠다고? 물론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철물상은 이것을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철물점에 물건을 사러 오는 고객들에게 무엇을 사든 병 하나씩을 준다. 각자의 필요에 따라.

 

이렇게 병이 줄어들 즈음 마지막 병은 가난한 소녀에게 돌아간다. 소녀는 이 병을 얻기 위해 자신이 그동안 모은 동전들을 사용한다. 왜? 그건 마을에 사는 부잣집 아들을 위해서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지만, 몸이 약해 집밖에 나가지 못하는 아이다. 이 아이는 소녀와 함께 상수리 숲에서 도토리를 줍는 신나는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 뒤로 몸이 약해져 일어나지 못하는 소년을 위해 소녀는 마법의 병을 얻는다. 이 병이 소년에게 희망이 되길 꿈꾸며. 그럼 마지막 병 안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그건 바로 상수리 숲이었다. 누군가를 향한 돌봄의 정신, 즐거운 시간의 기억이야말로 상수리 숲의 푸르름, 생명력이 되어 우리를 다시 회복케 한다는 내용이 아닐까.

 

이처럼 작가의 동화들은 모두 작은 것, 보잘 것 없는 것, 약자,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등에 관심한다. 동화가 갖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좋은 동화집이다. 작가의 또 다른 동화들도 만날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