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1 사계절 1318 문고 104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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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문학의 대표적 작가인 이금이 작가의 신작이 독자들을 찾아왔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란 제목의 장편소설이다(전2권 구성). 이금이 작가의 첫 번째 역사소설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금이 작가의 청소년소설들이 주로 지금의 청소년들의 고민을 주로 다루고 있었다. 이제 소설의 무대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 들려주는 이금이 작가의 소설, 과연 어떤 느낌일까 기대하며 읽게 된다.

 

소설은 두 여인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 여인은 일제강점기 조선 최고의 힘을 가진 윤형만 자작의 딸 윤채령. 또 한 여인은 윤채령의 여덟 살 생일선물로 팔려온 김수남이다. 우리 민족에게 여전히 회복되지 않는 상처를 안겨준 일제강점기 시대를 살아가는 두 여인. 전혀 다른 신분, 상반된 운명의 두 여인 앞에 펼쳐지는 인생 스토리가 소설을 덮는 마지막까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특히, 뒤바뀐 신분, 이름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마지막까지 읽어야만 한다.

 

적지 않은 분량의 소설을 읽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부분들은 수남의 성장하는 모습이다. 비록 힘겹지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이 멋지다. 소설의 제목,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는 수남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한 첫 번째 순간의 대사다. 윤형만 자작은 딸과 함께 성장하며 딸을 수발들어 줄 여자아이를 딸의 여덟 번째 생일 선물로 계획한다. 애초 팔려가기로 예정되어 있던 아이가 함께 가길 꺼리던 순간 그곳에 있던 수남의 당돌한 대사가 바로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다.

 

비록 채령의 장난감, 놀잇거리로 팔려가게 된 선택이지만, 수남의 삶은 스스로 선택하는 삶이다. 채령의 장난감, 채령의 종의 신분이지만, 수남은 자신의 삶을 준비하고 개척해 나간다. 한글을 익히고, 일본어, 영어, 중국어, 그리고 미국의 대학생활까지 배움의 지평을 넓혀나간다. 그 지리적 무대 역시 시골마을에서 경성으로 일본, 중국, 미국 등 삶의 지평도 확장된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개쳑해 나가는 수남의 모습이 멋지다. 그렇기에 나중의 결말은 더욱 허탈하고 안타깝지만 말이다.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고, 희생을 강요당하는 삶을 당연히 여기던 모습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개척해 나가는 수남의 당찬 모습이 소설 전체 가운데 가장 멋지고 인상적이었다. 소설 말미에선 이런 모습이 갑자기 사라져 혼란스럽기도 하였지만.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채령이 겪는 험난한 순간들이다. 결코 인생에 어려움이라곤 만나지 않을 것 같은 신분. 순항하는 인생이 당연하게 여겨질 채령이지만, 그런 채령에게 닥친 험난한 순간들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발견하는 채령의 인간적 연약함은 채령을 비난하기보다는 응원하게 만든다.

 

이 부분을 통해, 어쩌면 작가는 비난이 당연한 누군가의 삶 역시 들여다보면, 눈물이 있고 아픔이 있음을 말하려던 것은 아닐까 싶다. 물론, 이런 채령을 향한 응원은 책의 말미에서는 다시 사라지게 되지만 말이다.

 

아울러, 수남이 자작의 딸 대역을 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통해서는 또 다른 질문들도 만나게 된다. 친일세력을 향한 비난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과연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자작의 딸이고, 자작의 아들이라면 그 혜택을 당연하단 듯 누리지는 않았을까? 아니, 그런 혜택을 누리기를 꿈꾸지는 않았을까? 이런 질문들 말이다. 누구도 자신할 수 없으리라.

 

그럼에도 친일의 행위가 정당화 되고, 친일의 담보로 누리는 혜택을 당연시해서도, 그리고 부러워해서도 안 됨을 소설은 말한다. 바로 강휘의 모습을 통해. 강휘의 방황과 선택, 그리고 그 선택, 사명을 향한 삶의 투신이야말로 여전히 우리가 지향해야 하며,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게 한다.

 

소설을 맛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사랑이다. 채령을 향한 준페이의 사랑과 헌신, 그 순애보가 참 아름답다. 물론, 그 결말은 광기로 끝맺지만 말이다. 수남과 강휘의 애틋한 사랑, 열매 맺음, 그리고 안타까운 결말 역시 소설의 한 축이 되기에 충분하다.

 

아무튼 이금이 작가가 처음 선보이는 역사장편소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파란만장한 두 여인의 삶, 그리고 시대적 아픔이 아프고 또 먹먹하다. 뒤바뀐 운명을 살아가야했던 설정은 소설을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게 만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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