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어 수강일지
우마루내 지음 / 나무옆의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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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책 제목 모두 흥미를 끄는 소설을 만났다. 작가 우마루내의 『터키어 수강일지』란 소설이다. 우마루내란 이름이 왠지 외국작가 같다(처음 이 이름을 보며, 몽골작가인가 싶었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한국작가다. 이 책은 그녀의 첫 번째 소설이다. 그러니, 이제 막 작가의 길을 걷는, 또는 걷고자 하는 신참 작가의 소설임을 감안하고 책을 읽는다면 좋겠다. 다소 산만하며 다소 미숙하여 느껴질지라도, 장차 대문호가 될 작가의 첫 작품을 만났다는 신선함과 설렘, 그 즐거움을 누리자.

 

주인공 ‘나’는 15세 소녀다. 다소 독특한 코드를 갖고 있는 소녀다. 왜 독특하냐고? 그 나이에 꽂힌 남자가 다름 아닌 낚시가게 아저씨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낚시가게 아저씨의 펑퍼짐한 엉덩이에 빠졌다. 살짝 삐져나와 비치는 낡은 팬티에 설레는 소녀의 마음이라니. 이런 다소 독특한 소녀가 겪게 되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소설은 이야기한다.

 

주인공에게 또 하나 중요한 건 인터넷 카페 <존나 카와이한 그룹>이다. 카페 이름이 쪼까 거시기하다. ‘카와이’는 일본어로 귀엽다 사랑스럽다 작다 등의 의미란다. ‘존나’는 어떤 의미일까? 지금 여러분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존나’가 맞다.

 

여기서 잠깐! ‘존나’가 어떤 의미일까? 부정적 의미일까? 긍정적 의미일까? 아님, 아무런 의미 없는 추임새에 불과할까? 모두 맞다. 물론, 누군가는 청소년들이 입에 달고 있는 이 단어를 긍정적으로 사용할 때는 ‘졸라’, 부정적으로 사용할 때는 ‘존나’가 된다고 말하기도 하더라만. 사실, 이 안에는 모든 뉘앙스가 다 내포되어 있다.

 

그러니, <존나 카와이한 그룹>에서 사용하는 ‘존나 카와이하다’, 줄여서 ‘존카’ 또는 JK는 이런 다양한 의미를 모두 아우른다. 카페 회원들은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 소속감을 느낀다. 어쩌면 작가는 이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청소년시기에 친구들과 함께 같은 곳에 속하길 원하는 욕망. 그리고 그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아무런 의미 없는 말, 특정 언어를 함께 공유하고 뱉음으로 함께 한 곳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을 누리려는 몸부림. 이에 반하는 또 다른 욕구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표현하려는 갈망. 청소년 시기에 갖게 되는 이 두 감정 사이 갈등과 고민을 소설은 보여준다.

 

또래아이들과 어울리면서도 다소 색다른 고민을 안고 있는 주인공. 주인공은 어느 날 카페에서 자신의 고민을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에게 털어놓고 만다. 아뿔싸!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는 <존나 카와이한 그룹>에서 부정적 의미로 존카한 사람이다. 오지랖 넓게 낄 자리 안 낄 자리 가리지 않고 끼어드는 사람. 왠지, 질척거린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사람. 카페 내에서 암묵 중에 투명인간 취급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으니 이로 인해 또 다른 주인공의 고민이 시작된다.

 

결국 터키어 수강을 위해 간 ‘터키 문화원’에서 한스 요하힘 마르세유를 만나게 되고. 온라인상의 인물을 오프라인상에서 만나게 된 주인공. 과연 그 앞에 펼쳐질 시간들은 좋은 의미에서 존나 카와이 할 수 있을까?

 

작가는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우리 안에는 어딘가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음을 말하는 걸까? 다소 요상한 단어인 존나 카와이, 다소 익숙지 않은 언어 터키어를 등장시킴으로 소통의 다중성을 말하는 걸까? 남과 다른 생각, 열망에 대한 접근일까? 무엇이 되었든 상관없다. 단지, 내일도 우리의 삶이 존나 카와이 하길 바랄뿐. 좋은 의미에서 말이다.

 

그럼, 소설은 어떤가? 물론 존카하다. 무슨 의미냐고? 그건 독자마다 각자 다를 것이다. 단지, 작가는 이제 막 첫발을 떼어놓은 것뿐임을 기억하자. 앞으로 찍히게 될 작가의 발걸음이 위대한 발걸음이 되길, 건필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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