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 이주홍 단편집 한빛문고 7
이주홍 지음, 박철민 그림 / 다림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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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파 이주홍 선생님의 단편 동화 네 편을 엮은 <이주홍 단편집> 『메아리』란 책을 만났습니다. 이 책에는 「메아리」, 「사랑하는 악마」, 「못나도 울 엄마」, 「연못가의 움막」 이렇게 네 편의 동화가 실려 있습니다. 네 편 모두 예스러운 느낌과 함께 때론 아련하게, 때론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동화들입니다.

 

「메아리」는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는 동화인데, 너무나 그 내용이 익숙해서 예전의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 배운 내용인가 싶기도 하네요. 외딴 산속 마을에 사는 아이 돌이의 외로움, 그리움 등을 물씬 느낄 수 있는 동화입니다. 얼마나 외로우면 메아리를 벗 삼아야만 할까요.

 

돌이의 집은 깊은 산중에 있었다.

깊은 산중 중에서도 더 깊은 산중.

더 깊은 산중 중에서도 더 더 깊은 산중의 중턱에 있는 외딴집이 돌이네가 사는 집이었다.(11쪽)

 

얼마나 그 외로움이 사무치기에 작가는 이토록 표현해야만 했을까요. 요즘이야 이처럼 깊은 산속에서 살아가는 ‘돌이’가 많진 않겠죠. 그럼에도 많은 이들 가운데 존재함에도 마치 존재치 않는 양 외로움으로 신음해야만 하는 아이들이 여전하기에 이 동화의 힘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발휘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내가 누군가에게 메아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랑하는 악마」에서 만나게 되는 깍쟁이 ‘야시’ 정미는 할머니와 갈등하는 여자아이랍니다. 이런 정미와 할머니의 갈등이 때론 우스우면서도, 그 화해의 모습은 참 감동적이네요. 이 동화는 향파 선생님의 후기 작품인 1982년 작품이라고 합니다. 많은 이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던 시기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 시기는 어쩌면 깍쟁이의 모습이 지혜롭게 느껴질 때가 아닐까요? 그렇기에 작가는 한글도 모르고 입만 열면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를 내뱉는 할머니를 깍쟁이 야시 정미와 갈등하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 깍쟁이 야시가 이기적인 모습을 버리고 할머니와 깊은 정을 통하는 모습을 통해, 당시보다 더욱 ‘나만’ 존재하는 시기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게 하네요. 아울러 할머니의 구수한 사투리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도 합니다.

 

「못나도 울 엄마」의 명희는 참 귀엽네요. 왜 그리 옛 어른들은 아이들을 주워왔다는 말들을 하곤 했나 몰라요. 요즘이야 이런 말 거의 하지 않지만, 요즘 아이들의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이런 소리 참 많이 들었을 거예요. 아무튼 이런 소리를 듣던 명희는 어느 날 정말 다리 밑에서 할머니를 만나는데, 할머니가 자신이 명희의 엄마라고 한답니다. 한 쪽 눈이 없고 한 쪽 팔이 불편한 누추한 차림새의 떡장수 할머니. 따라간 집은 쓰러져가는 판잣집. 그곳에서 불편한 모습의 할머니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명희의 모습이 참 귀엽고 예쁜 동화입니다. 물론 꿈이었지만, 명희처럼 우리 모두가 내 곁에 있는 이들의 아들이자 딸이며, 그분들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 아버지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이런 생각이 곧 이 험난한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아닐까 여겨지네요.

 

마지막 「연못가의 움막」에서는 못된 놀부 같은 아이가 등장합니다. 바로 태성이란 아이입니다. 태성은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연못가에 움막을 짓고 살고 있는 할머니를 골통먹이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할머니에게 뱀을 던지기도 하고, 신문지를 잘라 눈이 어두운 할머니에게 돈이라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죠. 이런 못된 녀석 태성이가 환상의 세계(동화 속에 실존하는 세계인지, 아님 태성의 꿈이나 환상처럼 착각인지는 조금 모호합니다.) 속에서 경험하는 일들로 인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마치 개과천선하는 모습으로 엄마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던 걸까요? 아파트 단지에서 이들과 대조되는 극빈자들의 모습을 무시하지 말라는 걸까요?(굳이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느낌의 움막을 표현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아님, 태성처럼 못되게 굴다가 언젠가 호되게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걸까요? 그것도 아님, 태성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며 착한(?) 아이로 돌아가는 모습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되길 바라는 것일까요?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바라기는 동화 속에 나오는 움막에서 사는 할머니처럼 이 땅의 절대적 빈곤자들이 그들의 힘겨움을 보상받는 판타지의 세계가 존재한다면 좋겠단 생각을 품게 하네요.

 

향파 선생님의 동화 네 편을 만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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