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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립 마을의 몹시 집요한 개퍼들 ㅣ 담푸스 저학년 동화 3
조지 손더스 지음, 레인 스미스 그림 / 담푸스 / 2016년 4월
평점 :
프립 마을에는 개퍼들이 있습니다. 개퍼가 뭐냐 하면, 상상속의 생명체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작가의 상상으로 탄생한 동화 속에서는 실재 존재하는 생명체입니다. 밤송이보다 조금 큰 녀석들인데, 감자 눈처럼 눈이 많고, 마치 복어가 화났을 때 모습 같기도 하네요. 이 녀석들은 염소를 너무 좋아해서 염소에게 달라붙습니다. 물론 염소는 싫어하고요. 요 녀석들이 달라붙어 있으면 힘들어 살이 빠지거든요. 젖도 나오지 않고. 그래서 바닷가 프립 마을 사람들(사실 아이들만 이 일을 해요.)은 이 개퍼들을 염소에게서 떼어내 바닷물에 던져 버리죠. 그러면 이 녀석들은 다시 육지로 올라와 염소들에게 달라붙고요. 그러니, 프립 마을 아이들은 언제나 개퍼들을 때어내는 일을 반복해야만 합니다.
『프립 마을의 몹시 집요한 개퍼들』이란 제목의 동화는 이처럼 개퍼들로 인해 생기는 이야기입니다. 바닷가 마을 프립 마을, 그곳에 있는 낡은 판잣집 세 채의 사람들이 개퍼들로 인해 겪게 되는 이야기죠.
세 집은 모두 염소를 기르는데, 각기 열 마리쯤 기르고 있어요. 그리고 개퍼들은 천오백 마리 정도에요. 그러니, 염소 한 마리당 50마리 가량의 개퍼들이 붙어 있는 거죠. 보통 염소는 개퍼 60마리 정도는 그럭저럭 견딘다고 해요. 그런데, 개퍼들이 육지로 올라오며, 세 집 가운데 주인공 케이퍼블네 집이 제일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요. 이제 개퍼들은 케이퍼블네 집으로만 가죠. 이런 상황에서 케이퍼블은 혼자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어 두 집에 도움을 청합니다. 하지만, 두 집은 꿈쩍하지 않아요. 과연 케이퍼블은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이 동화는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무엇보다, 케이퍼블이 동네의 두 집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두 집 사람들은 거절하는데. 이 때, 이들이 말하는 논리들은 일면 맞는 말이기도 해요. “자신의 삶은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좋다. 개퍼들을 다 처리했을 때엔 오히려 큰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넌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라.” 등등 이런 이웃의 논리는 하나하나만 생각하면 맞아요. 하지만, 그런 접근은 옳지 않다는 것이 진실이죠. 왜냐하면, 이 말들은 이웃의 힘겨움,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접근이기에 공허한 소리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맞다 할지라도 타인의 아픔과 힘겨움을 돌아보지 못하는 목소리는 공허한 울림, 거짓 소리에 불과하죠.
개퍼들에게서 해방된 두 집은 이제 바다에서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지려고 집을 옮겨요. 자신들의 집 터 안에서 말이죠. 그런데, 케이퍼블은 간단하게 문제 해결을 합니다. 염소들을 팔아버려요. 그리곤 바닷가 마을답게 낚시를 하죠. 이제 개퍼들이 다른 집으로 향하겠죠?
이에 두 집은 서로 바닷가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집을 옮기다 보니 결국엔 늪 한 가운데에 집이 빠지게 됩니다. 이 두 집은 ‘나만 아니면 돼!’란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요. 그런데, 문제는 그 피해가 결국에는 자신들에게로 향하게 된다는 겁니다. 세상은 홀로 살 수 없어요. 그렇기에 ‘나만 아니면 돼!’가 지금 당장은 나에게 어려움을 주지 않을지 몰라도, 결국엔 더 큰 어려움으로 나에게 돌아올 수 있음을 생각해 보게 되네요.
케이퍼블 아빠의 모습도 생각해보게 되요. 물론, 동네 사람들의 모습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고요. 아빠는 시종일관 한결같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음식도 모두 흰색만 먹죠. 다른 것으로 바뀌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요. 이런 모습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모습, 관습과 전통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여기는 우리들의 모습을 꼬집고 있어요. 바닷가에서 살면서도 예전부터 염소를 길러왔기에 염소를 기르는 것이 옳고, 낚시를 하는 것을 그르다는 생각을 갖는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은가요? 그럼에도 이들은 그걸 몰라요. 전통과 관습에 파묻혀서 말이죠. 그런데, 이 모습, 어쩜 우리에게도 있지 않을까요?
아울러서 모두가 행하는 것, 모두가 내는 소리라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님도 생각하게 합니다. 케이퍼블이 염소를 팔고 낚시를 하려 할 때, 사람들은 그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하죠. 모두가 한 목소리로요. 하지만, 그 때, 케이퍼블은 돌아가신 엄마가 하셨던 말을 떠올려요.
많은 사람들이 목청을 높여서 같은 이야기를 말한다고 해서, 그게 꼭 맞는 말은 아니란다.(45쪽)
맞아요. 모두가 같은 소리를 낸다고 해서 그것이 꼭 맞는 말은 아니죠. 그런데, 우린 이런 실수를 종종 범하곤 하죠. 다수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 착각하곤 하거든요. 때론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 때도 있음을 생각해보게 되네요.
위기에 처하게 된 두 집 사람들은 나중에는 케이퍼블에게 도움을 요청해요. 물론, 케이퍼블은 자신이 당했던 것을 생각하며 문을 꽝 닫아버리죠. 하지만, 케이퍼블의 마음은 전혀 통쾌하지 않아요.
얼마 지나지 않아 케이퍼블은 깨달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캄캄한 어둠 속 지붕 위에서 벌벌 떨고 있는데 혼자만 따뜻한 집에서 잘 차린 저녁을 먹는 게 그다지 즐겁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죠.(70쪽)
케이퍼블의 시선은 이제 자신의 삶으로만 향하지 않아요. 밖으로 향하게 되죠. 그리곤 타인들의 아픔을 보게 되죠. 이렇게 동화는 우리의 시선이 향해야 할 방향을 가르쳐 줍니다. 어쩌면 개퍼들은 이 마을에 내린 축복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개퍼들을 통해, 마을은 이제 참 이웃을 갖게 되니까요. 개퍼들을 통해, 공동체성을 회복하게 되었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순 방향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니까요.
오늘 우리 삶 속에도 이런 개퍼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문제는 그 개퍼들을 저주로 만들어 더욱 세상을 어두움으로 몰아갈지, 아님 축복으로 만들어 세상을 더욱 밝고 아름답고 따뜻하게 만들어 가는지에 달려 있지 않을까요? 『프립 마을의 몹시 집요한 개퍼들』, 참 좋은 동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