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준열의 시대 - 박인환 全시집
박인환 지음, 민윤기 엮음, 이충재 해설 / 스타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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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박인환 시인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떠오른 시가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과 같은 시가 아닐까 싶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로 시작하는 「목마와 숙녀」. 버지니아 울프가 누군지 잘 모름에도, 왠지 그 이름이 친숙한 이유는 박인환 시인의 시 덕분일 것이다. 뿐 아니라, 너무나도 익숙한 「목마와 숙녀」의 첫 구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박인환 시인은 술과 떼어놓을 수 없는 등가공식이 형성되곤 한다.

 

「세월이 가면」 역시 마찬가지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느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냅킨에 끼적이며 써내려간 시가 바로 「세월이 가면」이었고, 이 시는 즉각 곡조가 붙어 노래가 되었다는 전설(?)적인 내용들. 그렇게 하여 ‘노래가 된 시’의 주인공인 시인 박인환.

 

아마도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박인환에 대한 이미지는 술이 떠나지 않는다. 게다가 시인의 마지막 역시 술로 인한 것이기에 이런 이미지는 더욱 굳건해지게 된다. 술은 많은 경우 감상적이고, 센티멘탈리즘과 연결되기 십상이다. 더 나아가 허무주의로 빠지기도 쉽고. 그래서일까? 그동안 박인환 시인에 대한 평가는 이런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감상적이며, 허무적이고, 센티멘탈리즘과 서정적인 것이 주를 이루는.

 

하지만, 이 시집 『검은 준열의 시대』를 엮은 엮은이, 그리고 시집에 대해 해설을 쓴 이들은 모두 말한다. 이런 시인에 대한 평가는 재평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그런 시만으로 시인을 평가하기에는 다른 내용의 시들이 많다는 것. 특히, 이 시집에서 1부에 해당하는 내용들은 많은 경우 사회주의에 매료되어 적은 시들이기에 그렇다. 당시 주류를 이루던 시인들이 비판하였던 것처럼 박인환 시인이 감상적이지마는 않았다는 말이다.

 

이처럼 시인의 모든 시들을 망라하여 엮어 놓은 이 시집은 그 동안 평가되어온 모습이 전부가 아님을 우리에게 보여주기에 반갑다. 하지만, 솔직히 더 반가운 것은 굉장히 친근한 시인 가운데 한 분임에도 그 시를 제대로 접한 적이 없다는 개인적 이유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인의 모든 시를 단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음이 반갑고 고맙다. 좋은 선물을 받은 느낌을 갖게 하는 시집이다.

 

솔직히 시인의 시들 가운데 잘 이해되지 않는 시들이 많았다. 아울러 그동안 시인을 매도한 평가들이라는 감상적, 허무적 경향의 시들이 적지 않음도 발견하게 된다. 아울러 서구에 경도된 모습 역시 시인의 시를 접하면서 들었던 생각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기에 그동안 시인에 대한 평가가 단순한 매도만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울러, 그런 내용들 자체가 사실은 매도의 대상이 아님도 기억해야 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그의 사회주의 성향의 시들을 통해, 시인이 어느 한쪽으로만 평가되는 것은 지양해야 하고 재평가되어야 함은 분명하게 여겨진다. 물론, 이런 시들이 반공주의로 전향하게 되긴 하지만 말이다. 아울러 사회주의 성향에서 반공주의로 전향하는 것 역시 단순한 이념의 전환만으로 볼 것은 아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개인적으로 이 시집의 제목에 그 답이 담겨 있다 여겨진다. ‘준열’ 그렇다. 시인은 삶의 힘겨운 가운데 준열하게 살아가려 몸부림 친 것은 아닐까? 단지 그런 몸부림이 때론 사회주의 내용으로, 때론 반공적인 내용으로 표출된 것은 아닐까?

 

참, 이 시집의 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시집을 시작하기에 앞서 엮은이가 시인에 대해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마치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답사여행과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이런 설명을 통해, 시인의 삶을 어느 정도 엿보고 시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 책이 전해주는 큰 선물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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