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 (양장) - 빈부격차는 어떻게 미래 세대를 파괴하는가
로버트 D. 퍼트넘 지음, 정태식 옮김 / 페이퍼로드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작가의 이력을 보니, 작가는 현재 하버드 대학교 공공 정책 분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영국, 프랑스, 독일, 핀란드, 싱가포르, 아일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국제 지도자들의 정책 자문으로 활약한 바가 있으며, 영국의 <선데이타임즈>가 뽑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로도 뽑힌바가 있다고 한다.

 

이처럼 영향력 있는 학자가 내 놓은 『우리 아이들』이란 책은 한 마디로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금수저 흙수저 인생에 대한 경각심을 불어 넣어주고 있는 책이다. 인생의 출발부터 남들보다 월등하게 앞서 달려 나가는 인생. 아니 더 정확하게는 남들보다 월등하게 뒤처진 경주를 해야만 하는 인생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런 현상이 깊어지기만 하는 사회를 향한 우려를 책은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성장했던 고향 오하이오 주 포트클린턴의 1950년대 동창들의 상황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시에는 분명 가난하고 부유한 가정의 차이가 있었다 할지라도 이들 간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는 것. 무엇보다 이들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사회였으며, 또한 비록 가난한 집의 아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재능에 의해, 그리고 인생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주변의 여러 도움 들을 통해, 삶의 계층을 상승시킴으로 아메리칸 드림이 구현될 여지가 많았다고 한다. 우리말로 표현한다면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시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 시대는 개천에서 용 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 그렇기에 이 책의 부제는 「위기에 처한 아메리칸 드림(The American Dream In Crisis)」이다(한글 제목으로는 조금 다르게 「빈부격차는 어떻게 미래 세대를 파괴하는가」다.). 물론, 이 시대에도 개천에서 용 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이제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희박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부모 세대의 소득분배가 다음 세대에서의 기회분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부모 세대의 소득 수준에 따라 지금은 주거공간마저 구분되었으며, 다니는 학교도 다를뿐더러, 설령 같은 학교에 다닐지라도 선행학습 과정을 통한 특권을 누리는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나뉘게 됨으로 그들에게 임하는 교육기회가 절대적으로 차별화된다고 책은 말한다.

 

모든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감에 있어 동등한 기회가 부여되어야 마땅함에도 그러한 기회 자체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게 된다는 것. 여기에서 저자는 금수저보다는 흙수저에 더욱 관심을 기울인다. 물론 지금의 풍요로운 아이들이 과거의 풍요로운 아이들보다 더 많은 이점을 가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현재의 가난한 아이들이 가난한 과거의 아이들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서 살기 때문에 이러한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된단다.

 

이처럼 저자는 이러한 문제점을 이야기함에 지면의 대다수를 할애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읽어 나가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흙수저를 주는 부모이기에. 그럼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안은 무엇일까? 물론 저자는 대안을 6장(무엇을 해야 하는가?)에서 이야기한다. 소득이 하층에 속한 이들의 소득을 끌어올리는 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겠고,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에게 기회를 줄 사회적 장치, 정책들을 만들고 실행하는 것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저자가 말하는 대안은 도덕적 의무에 대해서다. 책 제목을 다시 보자. 『우리 아이들』이다. ‘내’ 아이들이 아닌 ‘우리’ 아이들. 바로 여기에 대안이 있다.

 

소득의 차이를 줄인다는 것은 사실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에 가난한 아이들을 바라보는 가진 자들의 시선이 ‘너네 아이들’이 아닌, ‘우리 아이들’을 회복하면 된다. 우리는 정말 소중한 것들을 가리킬 때 ‘우리’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우리 아들, 우리 딸, 우리 남편, 우리 아내, 우리 동네, 우리나라 등. 이 ‘우리’라는 표현 안에는 함께 연대하여 지켜내야 할 만큼 소중한 대상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비록 형제가 없는 혼자뿐이라 할지라도 내 부모라 하지 않고, 우리 부모님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겠다.

 

“얘가 우리 딸입니다.”라고 소개할 때, 이 아이는 내 딸아이지만, 너와 내가 우리의 딸로 여기며 함께 소중하게 지켜내야 할 대상임을 밝히는 것이리라. 이 ‘우리’가 살아날 때, 오늘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따뜻하고 살맛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이란 자각이 살아날 때, 가난하여 기회를 얻지 못하는 아이들을 향한 도덕적 의무를 다하게 될 것이다. 금수저도 흙수저도 모두 함께 기회를 얻어, 그 사람의 재능과 노력 여하에 따라 삶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사회가 우리 아이들 시대에는 꼭 이루어지길 소망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