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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의 도시 ㅣ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3
문지혁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교수를 꿈꾸고 있는 유학생 오지웅은 어느 날 아내가 센트럴파크에서 강간당했음을 듣게 된다(실제로는 강간 미수 사건이다.). 그리고 며칠 후 아내가 실종됐다. 과연 아내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오지웅은 아내를 찾는 과정 가운데서 감춰둔 자신의 옛 부끄러운 죄와 조우하게 된다.
신진작가들의 중편소설로 구성되고 있는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 13번째 책으로 출간된 『P의 도시』는 사라진 아내를 찾게 되는 과정을 통해, 무엇보다 죄와 징벌, 그리고 용서와 고통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각 장마다 화자가 바뀐다. 1장 Professor(교수)에서는 교수를 꿈꾸는 오지웅의 관점에서, 2장 Partner(파트너)에서는 유학생 오지웅의 아내인 강미혜의 관점에서, 3장 Pursuit(추적)에서는 다시 오지웅의 관점에서, 4장 Punishment(징벌)에서는 누나 한수진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미국으로 넘어와 원수 오지웅의 아내 강미혜와 사랑에 빠진 한평화의 관점에서, 마지막 5장 Paster(목사)에서는 이 모든 인물들과 연관되어 있는 이희광의 관점에서 사건들을 풀어나간다.
그러니, 작가의 말에서처럼 이들 등장인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커다란 그림을 이루고 있는 퍼즐조각이다.
다 쓰고 나서 돌아보니, 어쩌면 이 소설은 어느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도시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 등장하는 누군가들은 그저 하나의 부분(part)이고 관점(perspective)이며 사방으로 흩어진 퍼즐(puzzle)일 뿐, 이들이 모여 만드는 도시라는 이름의 거대한 모자이크는 여전히 미완성이다.(작가의 말 중에서, 174쪽)
이렇게 각자의 관점에서 풀어놓는 이야기들 하나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오지웅의 아내 강미혜의 실종 사건이 어떻게 시작 되었으며,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리고 그 사건 이면에 감춰진 진실은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퍼즐들을 맞춰가며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고통’이 가득한 도시임을 이야기하고 싶었단다. 그럼, 그 고통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겪는 고통들을 통해 살펴본다면, 누군가는 자신 안에 꼭꼭 감춰둔 부끄러운 죄 때문일 수도 있겠다. 또한 누군가가 겪는 고통은 그를 향한 타인의 원한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겠다. 또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에서 고통이 시작될 수도 있겠고, 또 어떤 이는 그저 운명의 장난처럼 불행이 몰아닥쳐 고통 한가운데 떨어질 수도 있겠다.
그럼, 이러한 고통들로 맞춰진 모자이크 안에서 우린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걸까? 작가는 “거대한 모자이크는 여전히 미완성”이라 말한다. 왜?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고통을 떠날 수 없는 고통의 도시이기 때문일까? 물론, 그렇겠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리 삶의 거대한 모자이크가 여전히 미완성인 이유는 다름 아닌 용서의 부재 때문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감춰진 불행과 아픔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그들 안에 감춰진 다양한 형태의 죄에 대한 각자의 대응을 보여준다. 특히, 이 모든 사건의 실제적 범인 한평화 그는 용서란 모르는 복수의 화신이다. 용서는 약자들의 변명일 뿐이라는 그의 관점이 또 다른 고통들을 양산하고 있다.
아울러, 자신이 마치 세상 사람들에게 고통을 전해주기 위해 신이 선택한 사자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이희광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행하는 것 역시 자신에게 닥친 불행, 그리고 그 가해자를 향한 진정한 용서가 없었기 때문 아닐까? 그랬기에 자신의 기준에서 상대의 죄를 판단하고, 그 죄에 따른 고통을 자신이 부여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각자의 ‘P의 도시’는 어떤가? 여전히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정죄하며, 누군가가 고통에 빠지길 바라고 살고 있진 않은지. 용서, 솔직히 말만 쉽다. 누군가를 향한 용서는 결코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기에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P의 도시’는 고통이 가득하다. 어쩜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