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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 강소천 동화집 ㅣ 아동문학 보석바구니 7
강소천 지음 / 재미마주 / 2016년 2월
평점 :
강소천 전집 10권 가운데 7번째 책은 『무지개』란 제목의 동화집으로 동화집으로는 6번째 책이다. 5번째 동화집인 『종소리』와 마찬가지로 대한기독교서회에서 1957년 12월 20일 발간되었다. 60년가량이 지나 다시 복각 발간된 『무지개』를 만나봤다. 역시 앞에서 만났던 동시집과 동화집1-5권처럼 당시 디자인을 그대로 살려 발행되었다(이런 예스러운 느낌이 참 좋다.). 이 책에는 도합 11편의 동화가 실려 있다.
첫 번째 동화인 「잃어버린 나」는 여태껏 강소천 선생님의 짧은 동화들과는 달리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동화다(중장편 정도). 「잃어버린 나」의 주인공 영철은 어느 날 자신을 잃어버린다. 갑자기 겉모습이 다른 아이의 것이 되어 버린 것. 이로 인해 집에도 갈 수 없고 엄마 아빠를 만날 수도 없다. 친구들도 만날 수 없고. 자신을 증명해줄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영철은 자신을 알았던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은 영철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아니, 그 시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시선을 통해, 영철 자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런 피드백을 통해, 영철은 자신의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반성하고 더 멋진 아이로 돌아가길 꿈꾼다. 과연 영철은 자신의 원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이 중편동화는 판타지라고 할 수 있겠다(강소천 동화 가운데는 판타지가 상당히 많다. 요즘 흔히 말하는 판타지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런데, 다시 본 모습을 되찾게 되는 장면이 재미나다. 알고 보니 이 모든 것이 꿈이었던 것. 어느 동화작가는 본래의 장면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꿈으로 처리하는 것이야말로 식상하고 무책임한 글쓰기라고 평하기도 했는데, 강소천 선생님이 그런가 보다.^^ 사실, 강소천 동화에서 현실로의 회귀가 이처럼 꿈으로 처리되는 동화들이 상당히 많다. 어쩌면 강소천 동화에서 이런 모습을 자주 보여줬기에 어느 동화작가 평처럼 식상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본다. 그만큼 강소천 동화는 우리의 동화사에서 큰 획을 그었으니 말이다.
이번 동화집 『무지개』의 또 하나의 재미라면, 등장인물 가운데 춘식이란 아이가 절대적으로 많다는 점이다(바로 직전 동화집인 『종소리』에서는 두 편의 주인공이 춘식이다.). 아울러 역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전쟁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여럿 등장하고 있으며, 힘겹고 고단한 삶을 오롯이 보여주는 동화들도 많다. 물론, 그런 힘겨움을 딛고 희망을 그려내고 있지만 말이다.
동화집의 제목이기도 한 「무지개」 역시 그러하다. 고아인 춘식이는(여기도 주인공이 춘식이다.) 고아원을 자주 찾아오는 흠 아저씨(언제나 흠~이란 추임새를 넣으며 이야기하기에)를 통해 그림을 배우고 그림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실상 춘식이가 배우고 사랑하며 그리워하는 것은 그림만이 아닌 누군가를 향한 정(情)이다. 정에 굶주려 있는 춘식이의 모습은 독자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모두 사랑에 굶주려 그래요. 어디 자기들의 몸을 내맡길 사람을 찾고 있어요. 잘 먹고 잘 입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정말 따뜻한 손, 부드러운 손, 자기들을 어루만져 주는, 그런 사랑의 손을 찾고 있는 거예요. 춘식이는 그 손과 그 품을 찾아 떠난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서로 어긋났구먼요.(142쪽)
가난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동화들도 많다. 「맨발」은 해진 고무신을 신고 소풍을 가야만 하는 가난의 모습을 그려낸다. 「눈 내리는 밤」은 마치 『성냥팔이 소녀』를 떠올리게 하는데, 신문팔이 춘식이의 고단한 삶이 물씬 묻어난다. 사변으로 헤어진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눈 내리는 밤 백화점 한 쪽에서 깜빡 잠든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나 기쁨을 누리다 현실로 돌아오는 장면은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조판소에서 생긴 일」도 그렇다(여기도 주인공이 춘식이다.). 고아인 춘식이는 조판소에서 일을 하게 되지만, 선임 아이들의 무시 속에서 일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처럼 많은 동화에서 가난의 힘겨움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가난을 딛고 날아오르는 모습도 선물한다. 해진 고무신을 신고 소풍을 가는 식이는 나비가 되어 날아가게 되고(역시 판타지적 요소다.), 신문팔이 춘식이는 비록 꿈이지만 헤어진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조판소에서 일하는 춘식이는 활자들의 합창을 통해, 어려움이 해결되기도 한다. 이처럼 강소천 선생님은 당 시대의 힘겨움을 어루만지며 희망을 살며시 선물한다. 이것이야말로 문자가 갖는 힘이 아닐까? 이런 문자의 힘은 그 시대만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힘이 된다. 오늘 역시 힘겨운 시대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