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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집 7 ㅣ 안데르센 동화집 7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빌헬름 페데르센 외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만큼 세계의 많은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준 작가도 드물 겁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으며 자랐던 기억입니다. 「성냥팔이 소녀」, 「인어공주」, 「미운 오리새끼」, 「벌거벗은 임금님」, 「장난감 병정」, 「백조 왕자」, 「엄지공주」, 「빨간 구두」, 「눈의 여왕」등등 참 많은 동화들을 읽고 자랐죠(솔직히 어떤 것들은 내가 어린 시절 읽었던 건지, 아님 딸아이에게 읽어준 건지 혼돈스러운 것들도 있어요. 아마 둘 다이겠죠.^^).
이렇게 어린 시절 함께 성장하였던 안데르센 동화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금번 시공주니어에서 햇살과나무꾼의 번역으로 원작에 충실한 안데르센 동화집이 나왔거든요. 총 7권으로 출간된 이 동화집은 안데르센이 직접 자신의 200여 동화 가운데 156편을 뽑은 단편 모음집 『동화와 이야기』를 우리말로 옮긴 겁니다. 여기에 마치 천일야화와 유사한 느낌의 「그림 없는 그림책」(다락방에 사는 가난한 화가를 찾아온 달님이 자신이 세상 곳곳에서 본 것들을 매일 밤 이야기해주는 연작 단편동화로 33번째 밤까지 이어지고 있네요.)이 더해져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만난 책은 마지막 7권이랍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놀란 점은 부끄럽지만 7권에 실린 동화(22편 수록) 가운데 정확하게 아는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답니다. 참 많이 알고 있다고 여겼던 안데르센의 동화를 이렇게나 모르고 있다니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그동안 안데르센 작품의 극히 일부만을 맛봤던 거죠. 게다가 읽은 작품들 역시 어린이들에게 맞춰 각색되거나 편집된 내용들일 테고요. 그렇기에 원작 그대로 번역된 작품을 읽을 수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가요.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조금 읽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에요. 내용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자답게(?) 이미 자극적인 전개에 익숙해져 있었던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한 편 한 편 꼼꼼하게 읽어가다 보면, 잔잔함 가운데 깊은 맛이 나는 것을 느끼게 되요. 이것이 고전의 힘이 아닐까 싶고요. 역시 고전은 고전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요.
아울러 안데르센의 동화들이 결코 어린이들만을 대상으로 쓰인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요. 어쩌면 어른들이 읽어야 할 동화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어른들이 읽어야 어쩌면 동화의 참 의미를 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물론, 이런 생각도 잘못일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어쩌면 어른들보다 더 이야기의 참 맛을 느낄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뛰어나거든요. 무엇보다 더 맑고요.).
이 책에만 22편이나 되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에 안데르센이 전해주는 참 많은 메시지들을 만나게 되요. 「엉겅퀴가 겪은 일」, 「전원사와 주인 가족」등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작가란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작은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감동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해요. 「춤추어라, 춤추어라, 나의 인형아!」를 읽고는 역시 아이들의 시선과 어른의 시선은 다르다는 생각을 해보게 됐어요. 아울러, 혹 부모 된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나의 시선을 강요하는 부모는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보게 되고요. 평생 치통을 알았다는 안데르센의 자아가 투영되어 있다는 「치통 아줌마」를 읽고는 안데르센 같은 위대한 작가에게도 창작의 고통은 힘겨웠나 보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하찮은 시인이에요! 아니, 전 아무것도 아니에요. 시인도 아니에요. 그냥 발작하듯이 시를 짓는 것뿐이라고요. 치통처럼 그냥 발작하듯이요.”
왠지, 작가의 창작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나요?
「요하네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서는 도전하지도 않고 주저앉아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도 발견하기도 되고요. 「그림 없는 그림책」의 <열여섯번째 밤>을 읽고는 작품이 전해주는 페이소스에 한동안 그 안타까움과 슬픔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더라고요.
「나무의 요정 드리아스」, 「바다 속의 거대한 뱀」, 「증조 할아버지」등에서는 낡은 시대(신화가 가득한 시대)와 새 시대(진보의 삶, 발전하는 과학)의 대립. 그리고 그 안에서 공존을 모색하는 작가의 마음을 느껴볼 수 있었고요. 과학과 신화의 공존. 구시대와 새시대의 갈등과 공존 등을 발견하게 되요. 아마도 안데르센은 새 시대를 배척하진 않는 것처럼 느껴져요. 새 시대의 진보, 과학과 산업, 그 문명이 허락하는 편리가 분명 있음을 인정하는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 신화를 넣어요. 나무의 요정이 등장하기도 하고, 인어가 등장하기도 하죠. 그런 가운데 작가는 이런 과학과 산업을 자칫 신봉하며 참된 신화와의 균형이 깨뜨려진다면, 자칫 문명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한다면, 이것들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뱀”이 될 것이며, 또한 드리아스 요정을 죽이는 괴물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해요. 어쩜 오늘 우리 시대가 귀 기울여야 할 메시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당시에는 이런 경계보다는 오히려 신봉의 분위기가 만연했을 텐데 말이에요. 역시 위대한 작가는 글뿐 아니라 시대를 바라보는 통찰력도 갖추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참 여러 가지 내용들을 생각해보게 되지만, 무엇보다 안데르센이 말하는 희망은 빠뜨릴 수 없을 것 같아요. 안데르센은 「행운은 한낱 나뭇조각에도」에서 말해요. 신은 갓난아기를 보내실 때 행운의 선물도 함께 보내주신데요. 그리고 이 선물을 사람들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곳에 두신데요. 하지만 언젠가는 그 선물을 반드시 발견하게 하신데요. 그러니 지금 당장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이 행운의 선물을 발견함으로 밝은 세상을 맞게 된다는 거죠. 어쩌면 이런 주제야말로 안데르센 이야기의 큰 축이자, 그가 오랜 세월 사랑받게 되는 비결이 아닐까요? 「그림 없는 그림책」의 <스물여섯 번째 밤>에서처럼, 어쩌면 오늘 우리의 삶이 지금 당장은 좁고 갑갑한 굴뚝을 헤매는 상황일 수 있겠죠. 하지만, 결국에는 그 상황을 견뎌내고 나아가 환한 세상, 맑은 공기를 만끽할 날이 주어지겠죠. 이런 내용의 동화들은 여느 성직자의 설교보다도 더 큰 힘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마치, 이야기를 통해 한스가 다시 일어나는 것처럼 말이에요(「앉은뱅이」). 비록 지금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할지라도, 안데르센이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의 삶이 다시 일어서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면 좋겠네요.